brunch

매거진 간호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간호사 박도순 Oct 09. 2022

옹이구녁

간호일기

옹이구녁


“병원에서 수술했어요. 그 전에 한 달 정도 입원했고요, 지금은 못 걸어 다녀요. 겨우 일어나서 앉는 정도라니까요. 퇴원하고 와서 서너 차례 의원까지 택시 타고 다니면서 치료받았는데, 진료소가 퍼뜩 생각나더라고요. 소장님이 우리 집에 오셔서 소독 좀 해줄 수 있죠?” 전화를 끊고 왕진 가방을 챙겼다. 소독포와 글러브, 드레싱 키트와 메디폼, 포비돈 스틱스왑과 거즈를 넣었다. 늦은 오후, 가정방문 길에 나섰다. 김씨는 새우처럼 웅크린 채 벽 쪽으로 돌아 누워계셨다. 인사를 나누고 이렇게 되기까지 과정을 더 들을 수 있었다.


  보호자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붙인 반창고를 떼어냈다. 진물에 젖은 누런 거즈도 걷어냈다. 환부를 조심스레 열었다. 순간, 아, 이 정도라면! 병원으로 가서 치료해야 맞을 것 같은데. 이를 어쩌나. 매우 난감했다. 천골 꼬리뼈 둘레를 감싼 욕창은 생각보다 깊고 넓었다. 고향마을 둥구나무 몸통 어딘가 꺼멓게 구멍 뚫린 옹이 생각이 났다. 비릿한 냄새는 콧길을 지나 비강 점막으로 스며들었다.


  김씨는 고혈압, 고지혈증 투약 관리 중이어서 심뇌혈관질환관리대상자로 등록되어 있다. 걷는 것이 불편하여서 네발 전동차로 보건진료소에 오시곤 하였다. 이처럼 누워계신 줄은 몰랐다. 소독 키트에 생리식염수를 붓고 포타딘액을 희석하였다. 조심스럽게 세척을 시작하였다. 탄력 잃은 피부는 헐거워져 생기조차 잃어가고 있었다. 김씨는 소독약이 닿아도 따갑지 않다고 하셨다. 아픈 줄도, 차가운 줄도 모르겠다고 하셨다. 부인은 옆에 앉아 “어느 세월에 새살이 찰꼬. 어느 천년에 저 옹이구녁에 새살이 차느냔 말이오?”하시며 혀를 찼다. 남편에 대한 염려와 돌봄으로 지친 고단함이었으리라.


  시간이 필요해서 그렇지, 분명 좋아질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격려하였다. 부채질로 일어난 더운 바람이 방 안의 공기를 흔들었다. 환부가 어느 정도 마른 후 메디폼을 덮고는 드레싱을 마무리하였다. 농촌 간호 현장에서 욕창(Bed sore)은 그리 흔한 사례는 아니다. 그러나 일단 대상자가 생기면 간호 과정은 인내를 필요로 한다. 첫 면담부터 무거운 마음으로 다가가게 된다. 환자의 건강 상태, 감각 기능, 식이 영양 수준, 폐 기능, 인지 기능 등 완치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이다.


  잠재적 피부 손상을 염두에 두고 예방과 감염 조기 증상을 발견하는 일은 그래서 더 중요하다. 손상이 진행되고 있는, 혹은 이미 손상된 부위에 가해지는 압력을 분산하기 위하여 공기침요나 쿠션 등 사용을 권장하고, 적어도 2시간에 한 번 정도 체위 변경을 권하는 것은 욕창 간호의 오래된 ‘국룰’이다.


  두 달 가까이 방문간호를 수행하는 동안, 김씨를 위한 자녀들의 응원에 감동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비록 몸은 멀리 있으나, 마실 거리와 먹거리가 거의 날마다 택배로 배달되었다. 드레싱 교환에 필요한 위생 소모품도 넉넉하게 날아왔다. 사랑은 도대체 얼마나 위대한 명약인지. 괴사 부위에는 머루 알갱이 같은 새살이 송알송알 차올랐다. 손바닥만 한 상처가 오백 원 동전만큼 작아졌다. 분비물도 차차 감소하였다. 하루 한 번 이상 드레싱이 2∼3일에 한 번으로 줄어들었다. 상처에서 고름이나 피가 나오거나, 역겨운 냄새가 나면 즉시 전화하라고 보호자에게 교육하였다.


  환자는 매번 웃으면서 말씀하시는데, 보이지 않게 지쳐가는 것은 나였다. 이학적 지표를 확인할 길 없는 업무 한계 앞에서 나는 끈적한 겁이 나기도 했다. 눈으로 보기에 환부가 나아지고 있다고 판단될 때에는 슴슴한 용기가 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감정일 뿐 근거에 기반한 이성은 아니어서 마음 한쪽이 불편했다. 방문을 마치고 진료소로 돌아오면 거즈를 덧대고 누운 김씨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다른 부위에 또 생기면 안 될 텐데, 별일 없이 잘 나아야 할 텐데. 정말 잘 나아야할 텐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묵언 기도는 점점 길어져 갔다.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는 이유는 다양하다. 경제적인 문제,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의 부재, 환자를 둘러업고 병원에 데리고 갈 가족의 부재, 치료자를 만나기 위하여 병자를 침상째 들고 지붕에 올라가 기왓장을 걷어낸 친구들, 그런 우정의 부재. 김씨에게 이 모든 이유는 이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병원 침대가 아닌 안방 바닥에 누워계신다.


  부끄러운 부위를 민망한 듯 열어주실 때마다 멋쩍게 웃는 김씨. 그의 미소에는 나의 힘든 일을 은근한 보람으로 바꾸어주는 매력이 담겨있다. 거울에 비춰보지 않고는 결코 볼 수 없는 당신의 환부. 그곳을 보게 된다면 무슨 생각을 하실까. 완치되었다며 그간의 수고를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시원한 날이 왔으면 좋겠다. 비바람에 가지가 꺾이고, 부러져도 새순을 밀어 올리는 고목처럼, 순탄치 못한 김씨의 삶이 그러했을지라도 옹이구녁 흉터는 연한 분홍꽃으로 피어나리라. 대문 옆, 마당 한쪽으로 삭은 나무 화분에 심은 대국(大菊), 암팡지게 가을을 움켜쥐고 있다.

.

.

@무주읍, 2022


매거진의 이전글 밥 동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