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간호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간호사 박도순 Dec 02. 2023

돌담을 쌓으며

간호일기

돌담을 쌓으며


무너진 다무락 아래, 비가 오면 물이 고이는 것이다. 마로니에나무 옆에 반달 모양 돌담을 쌓기로 하였다. 남편에게 도움을 청했다. 우리 집 마당에서는 돌이 자꾸 나온다. 땅 고르는 나를 바라보시더니, 지나가던 어르신이 한말씀 거드신다. 돌도 새끼를 낳능당께.


  사나흘 지나면 여기저기 다시 고개를 내미는 모난 돌, 둥근 돌. 태울 수 있는 것이라면 긁어모았다가 낙엽처럼 타는 냄새라도 맡으련만. 군데군데 무더기가 마이산 아가탑 정도는 될 것이다.

     

  모아진 돌을 큰 돌, 중간 돌, 작은 돌로 분류하였다. 마로니에나무를 축으로 나뭇가지 하나 세워 끈을 묶었다. 반원半圓을 그렸다. 중심에 먼저 큰 돌 하나를 놓았다. 경계가 될 만한 얼굴 넓은 돌이 필요했다.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남편 혼자 들 수 없는 무게를 지닌 돌은 함께 들어 날랐다.


  바닥부터 쌓기 시작했다. 이쪽을 고이면 저쪽이 기울고, 저쪽을 고이면 다시 이쪽이 기울었다. 납작한 돌을 주워 왔다. 그들은 큰 돌이 기울어져 생긴 공간을 메꾸었다. 어른처럼 흔들림 없이 의젓한 모습으로 서면 흐뭇했다. 풍파에 닳아 생긴 고운선과 문양이 드러날 때면 감탄까지 했다.     


  커피를 마시며 남편과 이야기 나누었다. 큰 돌이 세워지기 위해서는 더 큰 돌이 필요한 것이 아니군. 작은 돌들이 도와줘야 하다니, 이것은 새로운 발견이야. 더 작은 돌들은 중간 돌이 만나 생기는 바람길을 막아주는구나. 모양도 제각각. 그뿐인가. 어떤 것은 회색, 붉은 줄기 한 가닥 스친 흙색, 어떤 것은 검은색. 색색이 무한한 돌 세계라니.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네.     


  담을 쌓아가는 동안 내 안으로 들어오는 생각과 마주했다. 존재와 존재, 그들이 얽힌 관계 가운데에 서 있는 나. 크다고 오만할 것도, 작다고 위축될 것도 없는 것이다. 오만하여라 위축하여라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나는 큰 돌인양 오만했고 때로는 작은 돌인양 스스로 위축되었구나. 누군가의 면모를 돋보여 주기 위한 메꿈 돌이 된 적은 있었나. 허물어진 마음에 돌담을 쌓자. 작은 돌이 되자, 더 작은 돌이 되자. 중간 돌이 되자, 큰 돌을 세워야 한다면 기꺼이 밑장으로 들어가자.


@부남면, 2023


  아픈 허리 편다.

  하늘 한 번 본다.

  가을 바다처럼 푸르른데,

  낮달이 돛 달아

  저 홀로 아득하다.

.

.


매거진의 이전글 길에서 만난 사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