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가 아닌 에세이를 쓰는 방법
에세이 초고를 쓰면서 망망대해에 떠있는 기분이었다. 그럴 때면 나의 좋은 친구를 떠올렸다.
01
나에게는 어떤 이야기도 판단 없이 들어주는 친구가 있다. 무슨 말을 해도 '네 말이 맞다.'라고 해주는 내 친구.
에세이를 쓰다 보면 얼마나 솔직하게 써야 할지, 얼마나 구체적으로 써야 할지도 가늠이 되지 않는다. 퇴고하며 많은 부분을 깎아냈지만 초고를 쓸 때는 검열 없이 쏟아내려고 했다.
초고를 쓰는 내내 나의 좋은 친구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마음으로 썼다. 친구를 떠올리며 어린 시절의 상처와 캐캐묵은 감정, 고군분투하며 살아온 이야기까지 모두 글로 털어냈다. 결국 무덤까지 가져갈 비밀 말고는 남김없이 쓸 수 있었다.
02
에세이는 일기와는 다르다.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지만 읽는 사람에게 가 닿아야 한다. 하지만 혼자 노트북 앞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면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럴 때도 한 명의 친구를 떠올렸다. 중학교 동창으로 20년의 시간을 서로 알아왔지만, 서로의 삶이 바쁠 때면 몇 년씩 연락하지 못하고 지낼 때도 있었다. 결혼하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네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 같아. 차분해졌다고 해야 할까? 단단해졌다고 해야 할까? 편안해졌다고 할까? 아무튼..... 훨씬 좋아 보여.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어떤 계기가 있었어?"
친구에게 내가 살아온 이야기와 무엇이 나를 변화로 이끌었는지 이야기 들려준다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글쓰기는 나만 들을 수 있는 혼잣말이 아니라 눈을 마주 보는 대화여야 한다. 친구를 앞에 두고 글을 쓴다는 마음가짐 덕분에 진솔하게 쓸 수 있었고 일기가 아닌 에세이를 쓸 수 있었다.
03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해도 내 이야기를 할 때면 듣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듣는 이가 지루하진 않을까? 듣는 이가 내 이야기를 궁금해할까?'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로 의문이 들곤 했다.
'내가 쓰는 글을 독자가 궁금해할까? 독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그럴 땐 이 말이 가장 도움이 됐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다른 이들이 힘든 시기를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 살펴보기 위해서이다." _(출처 실종)
내가 책을 읽는 이유도 똑같다. 현실이 시궁창 같을 때, 마음이 공허할 때, 엄마랑 싸웠을 때, 남편이랑 싸웠을 때, 한 치 앞을 모르겠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할지 길을 잃었을 때, 내 선택이 맞는지 헷갈릴 때. 인생의 모든 힘든 순간에 책 속을 파고들었고, 책을 덮고 일어날 때 나는 늘 웃고 있었다. 위로받았고 용기를 얻었고 삶을 기꺼이 이어갈 의지가 생겼다.
그렇기에 나도 쓸 수 있었다. 나와 비슷한 시기를 겪고 있을지도 모를, 나의 친구 같은 독자에게 이야기해 주는 마음으로 썼다.
글쓰기는 그 누구보다 나를 위한 일이다. 하지만 자기 안으로만 향하는 글은 독자에게 닿지 못한다.
글 쓰기 전, 시선과 마음을 내 안으로 돌려 충분히 들여다봐야 한다. 나를 탐구하고 내 삶을 돌아보며 사색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글을 쓸 때는 고개를 들고 가슴을 열고 내 앞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글은 앞을 향해 펼쳐져야 한다. 사랑을 품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작가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독자를 사랑하고
독자의 안녕을 빌어주는 것이다.
_엘런 질크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