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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gmin Kim Sep 02. 2016

<부산행>의 신파 논란에 관하여

영화 <부산행 TRAIN TO BUSAN, 2016>

 부산행 TRAIN TO BUSAN, 2016 / 감독 : 연상호 / 출연 : 공유, 정유미, 마동석 외



영화 <부산행>이 천만을 넘기고 1,200만을 향해 달려 나가고 있을 무렵, 동네 영화관에서 <부산행>의 상영관이 줄어든 것을 보니 더 이상 지체하면 안 되겠다 싶어 관람을 하고 나왔다. 재미있게 다 보고 나와서 평소 습관대로 영화 관련 앱을 켜서 나름의 별점을 매기고 다른 이들이 남긴 한줄평과 별점을 보고 있는데, 꽤나 많은 사람이 별점을 낮게 주거나 안 좋은 평가를 해놓은 것을 보게 되었다. 어떤 생각인지 읽어보니 대부분은 "한국영화 특유의 감성이 묻어 나왔다."라던가, "끝에 가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신파"라는 평가였다. 그때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한국영화 특유의 감성'은 무엇이며 '신파'의 경계는 어디까지길래 영화 자체의 평가가 저하될 수밖에 없는가?"라는 질문이었다.


먼저 '한국영화 특유의 감성'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했다. 대체 그 '감성'은 어떤 감성일까? 내 나름대로의 결론은, 배우 마동석이 분한 '상화'의 희생이라던가, 배우 공유가 분한 '석우'의 부성애를 지칭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상화'는 끔찍이도 부인인 '성경'을 아끼고 사랑하는 캐릭터로 묘사된다. 더더구나 '성경'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자신의 아이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인물이다. 어떤 맥락에서는 '석우'의 캐릭터도 같은 맥락이다. 무심한 아빠인 듯 하지만 결국은 그도 '수안'의 아버지이다. 그에게 부성애는 당연한 감정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랑'과 '부성애'의 감정이 '한국적인 감성'이라는 말로 모욕을 당해야 하는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야기'이다. 흔히 말하는 기-승-전-결이 분명하고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그 목적을 설명하는 방법이 되고, 일련의 사건들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한다. 이 이야기가 무너진 영화는 관객의 공감을 얻어 낼 수 없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축은 '인물'이다. 이야기는 인물의 갈등구조에서 비롯되고, 이 한 인물의 '이야기'와 인물과 인물 간의 '이야기'가 가장 큰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한다. 그 결과, 영화는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에 대한 당위성을 확보한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인물이 살아있지 않은 영화는 "왜?"라는 관객의 질문을 받아야만 한다.


인물은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이야기는 인물을 움직이게 한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각 인물이 어떤 감정으로, 또 어떤 목적으로 움직이는 지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른바, '입체적인 인물'을 만드는 것이다. 그저 이야기 속에서 소모되는 인물이 아니라, 인물이 이야기를 끌고 가기 위해 부여하는 'Character (성격, 특징)'를 뚜렷하게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신파'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보자. '신파'라는 장르는 "191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우리나라에서 유행하였던 연극 형태"라고 사전은 소개한다. 사전에서 지칭하는 말은, 일제시대에 우리나라에 유입된 하나의 연극 형태로서, 과장된 연기와 감성적인 감정을 주로 하는 연극의 갈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시대의 신파극은 주로 '오락극'의 성격을 뗬다. 그래서 '웃음'을 목적으로 극단적인 감정의 표현을 기본으로 과장된 연기를 주로 했을 것이다.


신파의 사전적 정의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신파극에 대한 설명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 한국현대문학대사전)


우리가 오늘날 '신파'라고 하면 이런 과장된 감정선과 과장된 연기를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부산행>에서 사람들이 신파라고 꼬집는 장면은 후반부의 결말에 다다랐을 때의 장면이다. (영화를 여전히 못 본 사람을 위해 스포일러를 자제하려고 하다 보니 표현의 한계가 생기는 점은 이해하길 바란다.) 이 장면에서 '석우'의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 몇 가지 장면이 들어가 있는데, 솔직히 말해 '당황스러운' 장면임에는 공감한다. 상당히 진지하고 가슴 아픈 장면에서 갑자기 스크린에 비치는 장면은 '애달픈' 장면이 아니라 '뮤직 비디오'의 일부 같은 느낌마저 들 정도로 그 장면은 위화감이 드는 장면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 장면이 '신파'라는 데에는 동의할 수 없다. 먼저, 절대 과장된 연기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과장된 감정이었는가? 아니 공유가 묘사한 그 순간의 감정은 오히려 과장된 게 아니라 타당한 연기였다. 문제는, 그 '장면'의 문제이다. '석우'가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데 그 장면이 조금 당황스럽게 하긴 하지만, 절대 과장된 감정선은 아니다.


우리는 '한국적 감성'과 '신파'라는 비난해 대해 앞서 말한 대로 '인물'을 생각해야 한다. '상화'는 와이프와 태어날 아기를 사랑하는 인물이다. 마동석이 '성경'을 구하러 그 지옥으로 뛰어드는 것은 결국 타당하다는 말이 된다. 물론, 어떤 극한의 위기 상황에서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해 몸을 사리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상화'는 그렇지 않은 인물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수안'을 멀리 있는 화장실까지 가도록 험악한 인상으로 이야기하다가도 '성경'에게 한없이 바보 같은 말투로 상황을 묻는 장면은 '상화'의 성격을 묘사하는 장면이다. 그런 그가 목숨을 걸고 열차를 가로지르고, 어떤 희생도 감수할 수 있다는 설정은 단순히 감성에 호소하는 것만은 아니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미드 <워킹 데드>에서 '릭'이 보여주는 '칼'에 대한 사랑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그런 '칼'에 대한 '릭'의 부성애와 사랑을 '한국적 감성'이라 치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렇게 치부하는 사람은 없다.)


'상화'는 와이프와 태어날 아기를 사랑하는 인물이다. 마동석이 '성경'을 구하러 그 지옥으로 뛰어드는 것은 결국 타당하다는 말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석우'의 행위들도 마찬가지다. '상화'가 열차가 가로지르는 동안 '석우'가 손가락만 빨고 있는 건 '석우'의 캐릭터와도 맞지 않다. 영화의 초반, '수안'의 생일을 잊지 않고 선물을 사 가는 장면에서 그가 아버지로서 수안을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그 선물이 전적으로 '옳은' 선물은 아니었지만) '석우'가 '수안'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행동들을 매도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상화'와 '석우'의 목표의식을 분명히 설정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는 왜 두 사람이 열차를 가로지르는지에 대해 공감하겠지만, 적지 않은 수가 그것에 대해 공감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설명이 충분하지 못했다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캐릭터가 충분히 입체적이지 못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것은 연기의 문제라기보다는 설명의 부재라고 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맥락에서 마지막 장면 또한 '석우'는 '수안'을 사랑하는 '아버지'이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석우'가 내린 결단을 단순히 '신파'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감독이 넣은 그 장면 자체가 신파도 아니다. '석우'의 부성애를 표현하기 위한 선택임을 고려한다면 나름대로의 설득력도 가진다. 하지만 '최선책'은 아니었던 것은 분명하다. 굳이 표현하자면 '편집상의 오류'라고 지칭할 수도 있겠다. 문제의 그 장면이 아니라, 극 속에 있었던 장면 중에서 '석우'의 부성애를 표현할 수 있는 장면을 골랐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그 장면을 뺄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장면은 '석우'의 부성애를 표현하기 위해 필요한 장면이었다. "눈물을 유도한다."라는 비난을 하는 것이라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클리세를 때려 넣어 눈물을 유도하는 그런 영화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마지막 장면 또한 '석우'는 '수안'을 사랑하는 '아버지'이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석우'가 내린 결단을 단순히 '신파'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모든 장면에서 인물들의 사정을 배제하고 단순히 '생존'이라는 이름 안에 모든 것을 욱여넣을 수는 없다. "왜 그토록 생존하기 위해 애를 쓰는가?"라는 질문을 받지 않으려면, 인물들이 생존하기 위한 타당성을 넣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단순히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라는 대답도 존재할 수 있지만 분명히 우리의 삶에서는 그런 단순한 이유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사랑을 위해, 누군가는 자식을 위해 살아야만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여담이지만, 단순히 생존만을 위해 살아남는 것은 '탑승객 몇'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심지어 '발암 덩어리'로 유명한 '용석(김의성 분)'의 생존 이유가 있는데.


영화를 보면서 비난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결국은 영화의 이야기 구조를 보지 못하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느 한 장면이 문제라면, 그 장면의 문제이지 영화 전체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장면 일색이라면 영화의 문제겠지만, 단 몇 장면으로 영화를 평가절하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야기와 인물, 그 두 가지를 본다면 <부산행>에 쏟아지는 비난들이 너무나 가혹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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