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산간 전문 라이프의 시작
3편: 다 사람 사는 곳이다
그즈음 나의 귀촌에 대한 열망도 점점 구체적으로 다듬어지기 시작했었다. 내가 눈여겨보는 장소로는 인천 앞바다의 한 작은 섬이 있었다. 페리(배)가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두 번 다니는 곳이었다. 그래 두 번이면... 충분하겠지.
그런데 지금에 와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귀촌할 장소를 이렇게 간단하게 정해서는 안된다. 귀촌을 단순히 '시골로의 이사'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나도 그런 마음이었으니까. 하지만 시골로 이사를 간다는 것은 도시 to 도시 이사와는 많은 부분 틀리다. 일단 시골집은 아파트처럼 쉽게 샀다 팔았다 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전원주택은 아파트처럼 공공의 디자인이 아니고 짓는 사람 각자의 개성이 깃드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 그런지 매매가 그리 활발하지 않다. 게다가 보통 시골에 새로 들어오는 사람은 기존 집을 사기보다는 새로 집을 짓는 걸 선호한다. 그러다 보니 어느 곳에 집을 사거나 혹은 새로 짓고 나면 그 집을 팔고 다시 나간다는 것이 매우 힘들다. 흔히들 부동산은 임자 만나야 팔린다고들 하는데 시골에서의 집 매매는 정말 임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장소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게다가 시골마을은 동네의 풍경도 중요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분위기도 매우 중요하다. 간혹 (이사 온) 외지인들에게 불친절하고 경계적인 곳이 있다. 이런 곳에 잘못 들어갔다가 말도 안 되는 텃세를 당하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소위 '끼인'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이런 걸 고려하지 못했다. 대신 나는 주제가 강력했다. 사실 우리가 인생에서 확실하게 원하는 것이 있다면 다른 부분들은 보통 알아서 따라오기 마련이다. 나의 로망과 콘셉트는 '낚시'였다. 그로써 많은 부분들이 주루룩 결정된다. 그래서 인천 앞바다의 그 섬은 내 생각엔 최적지였다.
그런데 내 나이 때문인지 주변에서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그런 곳에 들어가면 결혼은 포기하는 것이냐, 아니 결혼까진 했다고치자, 아이 교육은 어떻게 할 것이며, 애가 갑자기 아프기라도 하면 어쩔 것이냐는 미래적 걱정도 있었다.
"아니 그럼 섬사람들은 애 아프면 다 죽었나? 거기도 다 사람 사는 곳인데 방법이 있겠지!"
그러나 섬생활 15년 차인 지금 생각해도 병원은 문제긴 하다.
다행히 올해 10살인 아들은(그렇다, 나는 결국 결혼에도 성공했다) 건강하게 자라 주어서 병원에 갈 일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순전히 운이었다. 만일 아이가 병원을 자주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시골생활을 그만두었을 수도 있다. 그만큼 병원은 아직 시골엔 최대 약점이다.(건강할 때들 귀촌하자)
주말이면 생각했던 곳들을 직접 찾아가 봤다. 온라인에서 알 수 있는 정보는 한계가 있었다. 시골 부동산들은 전화해서 문의하면 보통
"오셔서 직접 보고 얘기하세요"
라고 얘기한다. 직접 찾아올 의지도 없다면 그만두라. 첫 번째 관문이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직접 찾아갔다. 느리고 수고스러웠지만 직접 발품 팔면서 정보를 수집하다 보니 도시에서 알아볼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었다. 사실 농사와 함께 민박도 수입원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당시의 온라인에서는 그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부동산을 통해 '농어촌민박'이라는 숙박 허가 개념을 알게 되었다. 농어촌민박을 위해 지어진 집들이 다수 매물로 나와있었기 때문이다. 농어촌민박은 쉽게 말해서 호텔이나 모텔과는 다르게 일반 가정집에서 소규모로 민박을 할 수 있는 허가였다. 우리나라 많은 수의 '펜션'들이 여기에 속한다. 실제로 현장에서 얻는 정보에 따라 생각도 조금씩 다듬어지기 시작했다. 이상과 현실의 적당한 타협도 있었다. 그리하여 두둥! 최종적으로 목적지가 바뀌게 되었다. 강화도에서 페리호를 타고 불과 10~15분이면 닿는 거리에 있는 섬. 석모도였다. 이곳은 페리호가 30분마다 다닌다! 브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