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담Adam Feb 15. 2024

영혼의 자국

혹은 공포의 자국

쿵!
거실 창에 둔탁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뭐야? 하며 달려가보니 유리에 흔적이 묻어있었다. 짧은 찰나에 나는 그것이 무슨 소리인지 곧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집 거실 유리에 비친 나무를 진짜로 착각한 새들이 가끔 브레이크 없는 충돌 사고를 낸다. 그런 경우 새들은 보통 즉사한다. 그런데 이번엔 뭔가 다르다. 곧이어 맹금류로 보이는 새 한 마리가 스윽 우리 유리창 앞으로 날아와 착륙했다. 이게 무슨일인가해서 창문 밖을 내다보던 나는 떨어져 축 늘어진 새의 주검을 움켜잡는 그 맹금류와 눈이 마주쳤다. 맹금류는 생각지 못한 관객의 존재에 놀랐다는 듯이 안 그래도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더니 서둘러 그 자리를 떴다. 물론 사냥감의 주검을 움켜쥔 채였다.  죽는 건 같았지만 이번엔 사냥의 현장이었다.


사냥감이 되었던 그 새는(어떤 새인지 확실하게 보진 못했다. 산비둘기로 추정 할 뿐) 우리 집 거실 창에 자신의 생의 마지막 자국을 남기고 갔다. 똥과 깃털이 뒤섞인 그 자국은 당시의 급박함을 말해주는 듯했다. 아마도 새는 공포를 느낄 정도의 시간 동안 쫓겨 다녔나 보다. 이틀쯤 지나고 나서야 나는 그 자국을 지웠다.  호스로 물을 뿌렸는데 잘 안 지워지는 것 같아서(걸레를 가지러 가기는 또 조금 귀찮아서) 창문 아래 있던 평평한 나뭇가지로 슥슥 문지르고 다시 호스로 물을 뿌려 마무리했다. 그때는 다 지워진 것 같았는데 유리에 물기가 모두 마르고 나자 희끄무레한 자국이 나타났다.



그 자국은 정교하게 새의 모양, 즉 머리와 날개 몸통의 정확한 모양을 담고 있었다. 불안해하며 뒤를 돌아보는 고개의 방향까지 담은듯했다.(사실은 유리창에 부딪히며 꺾인 목이었겠지만) 요 며칠 미세먼지가 심했는데 저 자국은 새의 몸에 앉아있던 미세먼지일까, 아니면 공포의 순간 새에게서 분비된 생물학적 유분 같은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급하게 부딪히며 새의 영혼이 유리창에 박제된 것일까. 유리창의 그 자국이 보일 때마다 나는 그때 그 사냥의 순간을 떠올린다.



그런데..그 생각 속에선 내가 사냥감이다.


작가의 이전글 이상한 나라 시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