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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화 Oct 21. 2016

승마, 귀족 스포츠 맞습니다.

레이디 고다이바처럼.

매우 유명한 그림이다. 알몸의 레이디 고다이바가 말을 타고 마을을 도는 이야기를 담은 그림. 초콜릿 브랜드 'GODIVA'의 스토리텔링의 소재로도 많이 사용되고 개인적으로는 승마를 시작한 이후 승마 관련 커뮤니티에서 내가 사용하는 아이디이기도 하다. '레이디 고다이바처럼.'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을 정도로 유명한 그림이니까 굳이 설명이 필요 없겠다만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11세기경 영국 코벤트리의 영주 부인이었던 레이디 고다이바는 그녀의 남편인 레오프릭의 과도한 세금 징수로 주민들이 비탄에 빠지자 이를 항의했으나 그녀의 항의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그녀는 나체로 남편에게 시위를 했고 이를 알게 된 백성들은 그녀가 마을을 지나는 시간에는 집집마다 창을 닫아 레이디 고다이바가 타인의 시선에 의한 수치심을 느끼지 않게 했다고 한다. 


승마를 시작한 지 4년 정도가 됐다. 이후 다른 취미 활동은 일절 할 수 없을 정도로 승마에 빠져서 산다. 실력이 뛰어나서 보는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느끼게 할 정도도 아니고, 외모와 능력이 빼어난 말을 갖고 있지도 않다. 그렇다고 멋들어지게 차려 입고 우아한 폼을 뽐내는 것도 아니다. 승마장에 가면 말 등에 올라서 운동하는 시간은 약 40여 분.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은 말을 씻기거나, 똥을 치우거나, 간식을 주면서 털을 빗어주거나, 마구를 정리하거나, 그저 별 할 일없이 한가로운 말을 구경하는 게 대부분이다. 승마장에 가면 보통이 네 시간 정도. 하루 종일 있을 때도 있다. 

이러다 보니 운동복으로 입는 승마복은 말침, 말 땀, 말똥, 말털에 항상 더럽혀져 있고, 나 역시도 땀범벅이 되기 일쑤다. 당연히 냄새도 난다. 땀 냄새, 마방의 톱밥 냄새. 그리고 나는 느끼지 못하지만 아마도 말똥 냄새, 오줌 냄새도 날 것이다. 당연히 화장이나 머리 손질은 할 수도 없다. 머리는 매일 헝클어져서 모자 밑에 감춰져 있고, 화장은 해 봤자 땀으로 얼룩져 지저분해질 뿐이라 자외선 차단제 정도만 바르고, 말을 씻겨주고, 마방을 치우다 보면 기본적인 네일 케어도 마음을 먹어야 할 수 있다. 심지어 땀범벅에 먼지투성이가 될 것이 뻔하니 사진에서처럼 깨끗한 차림으로 마장에 간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고 고양이 세수에 양치만 할 뿐이다.

말을 타는 사람들이 주로 시간을 보내는 마장에서의 모습은 막일을 하는 그 모양새는 막일을 하는 사람과 별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마는 귀족 운동으로 불린다. 그리고 나는 승마는 귀족 운동이 맞다고 말한다. 

승마는 귀족 운동이다. 


귀족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는지 묻고 싶다. 그리고 그것을 승마와 연결시키면 또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지도 묻고 싶다. 이 글을 읽는 한반도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현재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한 인물과 사건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돈이 많아야 하고, 다른 이들과는 다른 특혜를 입고, 부정한 스포츠이며, 특별한 사람들이 그들만의 리그에서나 즐기는 사치스러운 취미. 그리고 귀족 스포츠라는 이미지가 연결이 될 것이고 그 말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귀족 스포츠의 의미는 이렇다. 

어떤 마장을 가서 어떤 코치에서 레슨을 받더라도 승마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듣는 이야기가 있다. 

'말은 살아있는 생명입니다.', '말을 편하게 해 주세요.', '말이 기승자에게 신뢰를 가질 수 있게 해 주세요.', '기승자는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들이다. 

승마가 귀족 스포츠라고 하는 말은 이와 같은 이야기들에 함축되어 있다. 


말은 태생이 초원에서 무리를 이루며 사는 초식 동물이다. 자연 상태에서 말은 먹이 사슬의 가장 밑에 위치한다. 무리를 이루어 리더의 지휘 통제 하에 움직인다. 말은 겁이 많다. 쫑긋한 큰 귀와 큰 눈은 굉장히 예민해서 작은 외부 반응에도 매우 예민하게 반응한다. 익숙한 장소에서라도 낯선 사물이 보이면 가까이 가려고 하지도 않을뿐더러 뒷걸음질을 치거나 후다닥 도망을 치기도 한다. 또한 무리 생활을 하는 동물로서의 본능이 있어 혼자 있는 것보다 동료와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고 혼자라고 느껴지면 불안해하기도 한다. 이런 본능으로 순간적으로 서열을 매기기도 한다. 말은 나와 상대가 있을 때 누가 위이고 누가 아래인지를 본능적으로 파악해낸다. 그리고 이런 말의 본능을 이용해 사람은 말을 부린다. 

다시 말해 승마는 리더가 되는 법을 배우는 스포츠이다.

승마가 유일하게 사람과 동물이 호흡을 맞추는 스포츠라는 말은 식상한 말이기도 하지만 승마 정신의 핵심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파트너십. 그리고 그 정수는 리더십니다. 

말과 사람이 한 몸이 되어 호흡을 맞추기 위해서 사람은 말에게 신뢰를 얻어야 하며, 사람이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말에게 배려와 존중을 주어야 한다. 따라서 승마 기술은 말에 대한 인간의 배려와 존중이 시작이며 좋은 파트너십의 완성은 말이 사람에게 주는 신뢰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레이디 고다이바는 그녀가 다스리는 마을의 주민들이 과도한 세금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봤다. 그리고 그들의 아픔을 공감한다. 그녀는 귀족이지만 그녀가 보살펴야 하는 주민들의 아픔에 동참하고 그들의 살이를 위해 수치심을 버렸다. 그리고 주민들은 그녀의 진심과 행동에 신뢰를 보내며 그녀가 기꺼이 내던진 수치심을 지켜준다. 나보다 힘이 약한 자를 위해 그들의 삶에 존경을 담아 기꺼이 내 힘을 쏟는 것. 그것은 결국 그들과 내가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다. 


내가 있는 마장에서는 어린이 승마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어린이들이 말 등에 올라가기 전 하는 일은 말과 함께 걷기다. 자기 몸보다 몇 배는 더 크고, 몇 배는 더 힘이 센 말을 끌기 위해서는 고삐를 부드럽게 잡고 말보다 앞장서서 먼저 걸어야 한다. 절대 말이 사람보다 앞서 나가서도 안 되고, 사람이 말을 끌었을 때 말이 사람의 리드를 거부하고 버텨서도 안 된다. 사람은 반드시 말에게 리더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며 이를 말에게 처음부터 주지시켜야 한다. 그리고 말 등에 올라타기 전에 말에게 먼저 인사를 한다. "안녕? 오늘 날 잘 태워줘." 그리고 말 등에 내려서도 인사를 한다. "날 잘 태워줘서 고마워." 그리고 운동장을 나가 말이 있던 곳으로 말을 리드해서 가는 것까지가 승마 레슨의 한 세트이다. 


귀족, 한 사회의 리더 그들에게서 나오는 리더로서의 품위는 사치스러운 겉모습이나 우연히 얻은 부모와 가문, 노력하지 않아도 얻게 되는 부정적인 특혜에서 오는 게 아니다. 약한 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 내 것을 기꺼이 나눌 수 있는 여유. 이후에 그들에게 선물처럼 돌아오는 민중의 신뢰와 믿음을 주는 민중에 대한 감사. 이런 것들이 이 시대의 리더들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정신인 것이다. 

지금은 이러한 리더십이 꼭 특별 계층에게만 필요한 시대가 아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한 정신. 배려와 존중. 그리고 신뢰. 승마의 기본이면서도 지향점이다. 

어제 일이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열흘만에 말 등에 올랐다. 개인적으로 내가 배울 게 많은 말이라는 로터스를 탔는데 영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레슨 중 들었던 코치의 잔소리를 되새겨가면서 마음에 들지 않은 이유를 분석해 봤다. 고삐의 연결이 불량하고, 자꾸 자세가 틀어지고, 유난히 박차를 서툴게 쓰기도 하지 않았는가 하는데 내 얘기를 가만히 듣던 코치가 한 마디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말이 운동을 즐거워하고 있지 않잖아요."

승마는 이런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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