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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화 Jan 04. 2021

좋은 계절이 왔다 3.

전원주택에 산다.

남편 퇴근 후 이 건에 대해 상의를 했다. 도심지였기는 했지만 이전에 살던 집은 집 옆이 과수원이었기 때문에 봄이면 거름 냄새가 많이 났었다. 어차피 한 철이었고 과수원 옆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사실 큰 불편도 없었다. 물론 처음에는 "동네에 큰 소가 똥을 싸고 갔나 봐."하면서 이상하지만 웃기다고는 했다. 하지만 과수원 풍경이 주는 목가적인 모습과 더불어 잠깐의 거름 냄새 외에는 정말로 불편하지 않았다. 살던 동네 역시 농촌 마을의 재개발 단지였기 때문에 주변에는 논밭도 많았고, 벌레도 많았고, 무슨 이유있지 재개발에서 제외된 오래된 농가 주택들이 있긴 했지만 어디에서도 쓰레기를 태운 연기 냄새를 맡아 본 적이 없었다.


"언니, 저희 집도 시골에서 농사 짓고 있지만 이제는 논도 못 태우고요, 쓰레기 태우는 건 생각도 못해요. 저희집 뿐만 아니라 저희 동네에서는 저 어렸을 때, 기억도 가물한데 여하튼 그때 빼고는 이제 그러면 큰일나요."

"이모네 화목 보일러 쓰다가 지자체 정책으로 지원금 받고 보일러 교체 작업 했어. 요즘에는 촌에서도 불 피우면 바로 소방차 오고, 벌금 물어."

"대한민국에서는 법이 엄해서 쓰레기 태우는 건 무조건 안 된다. 신고들어가면 벌금 물고 아주 골치 아프다."


남편이야 어차피 같은 편이니 우리 둘이 얘기를 해 봤자 같은 결론에서만 뱅뱅 돌 뿐이라 가족과 지인들의 의견도 들어 추려 보면 결국에는 어떤 경우에라도 소각 활동은 금지라는 결론들이었다.   

추가적으로 내가 하는 걱정과 고민이 너무 예민해서 오버하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공통적으로 "거기서 살 수 있겠니?"라는 답으로 돌아왔다.

사실 이번에 이 건 말고는 불만족스러운 것은 없다. 비록 대한민국 땅에서 짜장면과 치킨 배달이 안 되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오잉? 이럴수가.. 했지만 무언가 굉장히 아날로그 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밤이 되면 정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 때도 랜턴을 들지 않으면 내 발 밑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지만 우리 집에서는 스마트 폰 어플의 도움만 있으면 바로 계절의 별자리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스러웠다. 밤마다 사람이 악 쓰는 소리 같은 낯선 소리가 고라니의 울음 소리라는 걸 알았고, 심심찮게 로드킬 된 고라니 사체를 보면서도 혹시라도 도로로 튀어 나오는 철 없는 아기 고라니를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 도로를 달리는 뒷차의 압박에도 적정 속도 서행하며 운전을 했다. 이사 온 이후 밤 외출이라는 건 엄두가 내지 못하며 너는 벌써 노인의 일과를 사느냐는 지인들의 놀림에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니 아주 새 나라의 어른이야." 하는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니까 나는 시골 생활이, 전원 생활이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이렇게 되어버렸다. 그래, 모든 게 만족스러울 수는 없어. 오히려 모든 게 만족스럽다면 그게 비정상인 거지. 불만족이 99%라고 1%의 만족이 있다면 인간은 만족스러운 1%로 에너지를 삼아 살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수십 번을 해 보아도 불만족이란 그것이 타협될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인정하기 보다는 투쟁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결론에 닿았다. 그리고 이어 내가 직접 할 수 없는 것이라면 제 3의 힘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 맞다는 결정을 내렸다.


"단속 나간 공무원이랑 통화를 했는데 처음 걸렸을 경우는 특별히 신고자가 벌금을 원하지 않는 경우에는 주의 초치로 끝난다고 해. 소각 행위의 경우 원칙적으로는 다 불가인데 인도적으로 취사나 난방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봐 주기도 하나 봐. 우리도 처벌보다는 계도가 목적이니까 주의만 주고 끝나면 좋겠다고 했어."


방법을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은 신고였다. 뉴스나 기사를 통해 이웃끼리 갈등하고 이를 풀지 못해서 고소, 고발을 한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내가 이웃을 기관에 신고를 하는 일을 하게 될 줄이야. 거의 평생을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도 층간 소음이나 기타 이웃간의 분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남들은 이런 것들을 피해서 온다는 전원 주택에서 내가 그런 일의 주인공이 될 줄이야. 오롯한 삶을 찾아 간다는 전원에서 나의 일상이 방해를 받아 방해꾼을 신고하게 되는 일을 하게 될 줄이야. 남편과의 전화 통화를 하고 난 후 자연스럽게 그 집으로 눈이 갔다. 보기에는 그냥 다른 날들과 다름 없는 그런 모습.  역시 속이 타는 건 나 뿐이었고, 그들에게는 이웃의 신고도, 공무원의 계도도 그냥 일상 일 뿐인건가?


어쨌든 그 일이 있은 후 적어도 그 집의 쓰레기 소각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직접 해결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나를 도와 줄 힘이 있다는 현실에 안심이 되기도 했다. 도시적인 삶이랄까? 공동의 삶에서 꼭 지켜야 하는 기타의 규범들이 익숙해져 도시를 벗어난 삶은 마치 무방비로 내던저져서 나를 방어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무기도 없이 그저 멘탈 하나로 버텨야 하는가 싶었는데 그래도 상식적인 규범을 수호해 주는 존재들을 확인한 것 같은 든든함이 생긴 것 같았다. '그래, 내가 내는 세금이 이렇게 쓰이는 게 맞지. 나는 세금을 내는 시민으로 부당한 일로 겪는 불편은 당당히 도움을 요청하겠다.' 이런 생각도 들고. 뭐랄까 시민으로서 행복하게 살 권리를 보호받고 있는 느낌? 시골에서의 삶은 나의 노력에 공무원들의 노고까지 더해지면서 만족도는 높아져가고 있었다.


이어 여름이 왔고, 생전 처음 본 벌레들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다행히도 벌레들의 주 활동 시간과 소강 시간이 있다는 걸 알면서 차차 적응해 갔다, 좋아하는 꽃과 나무를 심어 꿈꾸던 정원을 만들어 가려는 나의 포부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잡초들과의 전쟁으로 첫 포문을 열었지만 이 또한 한 계절이라는 위안과 몸은 힘들지만 잡초를 뿌리째 뽑아내는 그 카타르시스가 묘한 즐거움이 되기도 했다. 그늘 하나 없는 시골의 뙤약볕이 동남아 휴양지에서 돈과 시간을 주고 만든 태닝보다 더 큰 효과를 주기도 했지만 냉장고에서 꺼내 쓰는 싸구려 시트팩의 진정 효과를 체험하는 기회라며 나의 즐거운 전원 생활을 이어졌다.

기후 재앙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비가 많은 해. 쏟아붓는 폭우에 대한 걱정으로 남편은 잠을 못 이루는 못한 날이 많았다. 새로 심은 나무가 아직 충분히 뿌리를 내기 전에 약해진 땅에서 버티지 못해 쓰러져버렸으나 다행히도 새벽에 발견해서 비를 쫄딱 맞으면서 새로 심은 사건도 있었고, 매일 발효되는 호우 경보와 주의보로 윗집 여자는 배수관에 쓰레기와 흙을 파내는 수고로 홍수를 대비하기도 했다. 새로 지어 처음 사는 집이 처음 맞는 유례없는 긴 장마를 잘 버텨 줄지 매일매일 집 안팎을 살피면서도 이게 내가 지은 내 집이니 할 수 있는 가진 자의 배 부른 근심으로 여름을 보냈다. 걱정 속에서도 충분하게 물을 먹어 단단하고 풍성한 잎 사이로 작은 꽃잎을 옹송옹송하게 피워낸, 마당 한 공간을 빽빽하게 채운 수국을 보면서 즐거웠다.  내손으로 일궈낸 것들의 성장을 보는 기쁨과 처음 겪는 일들에 대한 걱정이 뒤섞인 여름을 보낸 것 같다. 길고 지루한 우기였지만 순간순간 보이는 낯선 공간에서 보이는 설레는 경험들이 재밌었던 계절이 여름이었다.

폭우로 쓰러지고, 비가 오는데도 물 마름 현상으로 힘들었던 배롱나무가 핫핑크 꽃을 가득 피워낸 여름은 아름답고 만족스러웠다. 비록 이틀에 한 번 꼴로 내리는 비에 백일홍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오랜 개화 기간을 갖지는 못했지만 나무가 겪을 수 있는 모든 시련이랄 것을 이겨낸 배롱나무가 기특했다. 봄에 심은 허브들도 기대 이상으로 튼실했다. 작은 사이즈의 비닐 팟에 담긴 모종들을 심었지만 바닥을 타고 줄기를 뻗어 자라며 허브밭이라는 이름이 어울릴 공간을 기대하게 했다. 마당에 한 공간은 허브가 덤불이 되도록 손대지 않고 가득 키우고 싶었는데 그 소망이 멀지 않은 미래에는 완성이 될 것 같았다. 산책의 마지막 코스로 허브밭을 다니는 강아지 룡이는 산책 후에는 항상 로즈마리, 라벤더, 민트, 바질, 루꼴라 향이 섞인 냄새를 묻혀왔다. 쑥쑥 자라는 허브들을 보며 올해는 작황이 좋지 않았던 허브는 내년에는 방법을 다르게 키워볼 계획을 짰고, 남은 땅에는 다른 허브들도 심어 키울 생각을 했다. 그런 여름이 좋았다.


시골은 계절의 변화가 급변한다. 하루 사이로 일교차가 커지고, 나뭇잎들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날벌레들이 눈에 띄게 사라졌다. 이른 아침 창으로 들어오는 해의 길이가 짧아졌고, 새벽이면 엷은 안개가 보이기 시작했다.

룡이의 산책길에는 억새가 무성해지면서 길이 아름다워졌다. 들깨를 베고 난 땅의 냄새를 맡는 것을 룡이는 좋아했다. 행복했던 여름이 가고 아름다운 계절이 온 것이다.  여름내 계속 되던 비 대신 하늘은 오롯이 자기 모습으로 아름다웠다. 집에서 내려다 보는 논밭에서는 사람들의 부산한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룡이의 산책 전에는 사람들과 농기계의 작업이 없는 길을 미리 확인하고 산책 코스를 잡았다. 덕분에 동네를 더 구석구석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룡이도 달라져서 낯선 산책길이 좋은 지 신중하게 냄새를 맡느라 뛰기보다는 걷기를 좋아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소록소록 약하게 맡아지는 뭔가 다른 공기의 냄새. 매우 익숙하진 않지만 아주 낯설지만은 않은 시골의 냄새. 가끔, 살짝 맡으면 정겨운 냄새인데 오랫동안 맡으면 코가 맵고, 피곤해지는 그런 냄새가 간혹 나기 시작했다.


"일어나봐, 불이 난 것 같아. 산불 같아. 불이 꽤 커."

자려고 누운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다급하게 깨우는 남편의 소리에 잠이 깨긴 했으나 정신은 아직 차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불이 났다고? 대피를 해야지. 룡이는 안고 피하면 되는데 앵무새들은 케이지 채로 들어 날라야 하는데 차에 다 들어 가려나? 하는 걱정이 먼저 들면서 작년에 이 지역에서 산불이 크게 나서 주민들이 대피했다던 때가 생각이 났다. 같은 수영장에 다니는 할머니 한 분도 놀라서 대피를 했다가 이틀만엔가 집에 오셨다고 한 것 같기도 하고. 잠이 덜 깨 몸은 굼뜨고, 머릿속은 우왕좌왕 했다. 손을 더듬어 안경을 찾아 쓰고 남편이 보는 방향을 같이 보는데 그제서야 상황이 보였다. 논인지 밭인지를 태우고 있었다. 새벽 3시가 넘은 시간에. 룡이와 함께 자주 가던 산책길이다. 타오르는 불빛에 언뜻 보니 사람도 두어 명 서 있고, 동네는 조용했다. 우리처럼 자다 깨서 집에서 이 광경을 보는 사람들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불이 나서 난리가 난 그런 모습은 아니었다.

"화재가 난 건 아니고 뭘 태우나봐. 새벽에. 낮에 태우면 신고 당할까봐 그런가봐."

"작년에 산불도 저래서 났겠지? 불 피우지 말라고 방송하며 다니는 차들이 계속 있던데. 요즘이 불 놓는 때인가?"


이때가 시작이었는지 아니면 더 이른 시점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름다운 계절에 오전 중 대기질은 매우 좋지 못했다. 오전 11시가 지나야 타는 냄새와 연기들이 사라졌다. 룡이의 산책도 이 냄새와 연기가 가신 이후에야 가능했다. 이른 새벽이나 아침에 집을 나설 때면 불로 인한 연기들이 동네에 자욱했다. 물론 화목 보일러의 연기들도 일조를 했고 우기가 낀 여름이 지나고 젖었던 것들이 건조한 계절을 맞이하면서 잘 탈 수 있을 정도로 마를 때가 되자 이제 시작이다 싶게 여기저기서 뭐든 태우기 배틀이 붙기 시작한 듯 싶었다.  룡이를 데리고 산책을 가면 군데군데가 시커먼 논이 보이고, 집집마다 소각터가 하나씩은 있는 듯 빈땅이라면 어김없이 뭔가를 태운 흔적들이 보였다. 가을에서 겨울로 갈수록 오전 중 동네는 탄내와 연기가 가득했다. 우리가 처음 겪는 가을과 겨울의 시골의 이미지는 연기에 쌓인 불에 탄 동네였다.

처음에는 멋도 모르고 길 건너 집에서 연기가 뭉게뭉게 올라오면 아침밥을 짓는가 보다 했는데 지금이 아궁이에 불을 떼서 사는 시대도 아니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너무 바보 같은 낭만에 속아 동네에 대한 배신감이 들 정도였다. 아, 이런 똥멍충이. 그래도 바로 코 앞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길 건너 동네의 일이고, 농사 짓는 시골 마을이고, 하지 말라고 해도 노인네들 습관을 어떻게 단박에 바꿀 수는 없지 싶었다. 마침 길 건너 동네로 이사한 지인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니 그나마 내가 사는 단지는 원주민 동네가 아니라 나은 거란다. 자기는 여름이 지나고 나서부터는 하루 종일 문을 열 수가 없다고. 빨래를 집 안에서 말려도 냄새가 배서 집 안에서는 밖에서 들어 온 냄새를 없애느라 탈취제를 뿌리고, 향초를 태운다고. 연기에는 연기로, 불에는 불로, 냄새는 냄새로 싸우는구나 하면서 씁쓸하게 웃고 나오긴 했는데 나보다 더 안 좋은 환경에 있는 사람을 보니 고약하게도 위로가 좀 되는 듯 했다. 그렇게 시골이니까 그런가 보다 이건 지금은 힘들지만 적응해야지 어떨 것이냐 하며 마음을 다잡아 갔다. 친구들을 만나면 먼저 '나한테서 시골 냄새가 날 거야, 나는 시골 사니까.' 하며 먼저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남들에게는 로망이라고 하는 전원 생활이, 나는 쉽지 않은 시골살이가 그렇게 가까스로 적응이 되어 가고 있던 중이었다. 퇴근하는 신랑을 픽업해서 단지로 들어서려는 즈음에 하늘을 향해 곧게 오르는 검은 연기를 봤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구나. 그집이다. 시골 노인네들이 뭔가를 계속 태워대는 그 사이에 본인들도 뭘 더 보태보려는지 그집에 가까워 오니 뻘겋게 치솟는 불길도 보인다. 블럭을 쌓아서 화덕 비슷한 모양을 만들고 그 위에 이미 시커멓게 타 버린 가마솥 하나에 물을 끓이고 있는 건지 가마솥이 타지 말라고 물을 넣은 건지 모르겠지만 봄에 본 그 비슷한 건축 폐기물들이 땔감처럼 타고 있고 주변으로는 더 태워야 할 것들이 작은 더미를 이루고 있었다. 그 커플은 오랜만에 하는 불놀이에 신이 난 건지 타오르는 불꽃에 정신이 나간건지 불을 키우는데 여념이 없었다.


"지금 뭘 끓이세요?"

솔직히 화가 난다기보다 너무 궁금했다. 도대체 뭘 하는 건지.

"봄에 쓰레기 태운다고 누가 신고를 했는데 공무원이 솥을 걸고 태우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시골에 가서 15만 원을 주고 중고 솥을 사왔잖아요."

불법은 성실하다고 했던가? 불법은 기가 막히게 성실하다.   

"공무원이 솥을 걸고 태우라고 했다고요?"

이후 그 사람이 어떤 답을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다만 나는 여기서 더 이상 이 사람과의 대화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같은 시대를 함께 사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상식의 기준이 다르고 이해의 영역은 다르다는 것을 강력하게 체감했다. 대화나 설득의 의지가 있었다면 도대체 어떤 공무원이 그런 조언을 주느냐고 따져 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득 어떤 신고자(물론 우리 부부다)의 신고에 단속을 위해 출동한 담당 공무원은 주의를 주면서 우리에게 했던 말과 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어떤 소각도 하면 안 되지만 피치못할 경우 인도적 차원에서 취사와 난방의 목적이라면 경우에 따라 예외로 둘 수도 있다. 이 말을 그의 이해의 영역에서는 저런 해석이 나오지 않았을까라는 결론이 나면서 내가 적응해야 할 것은 여름이 지난 이후부터 뿜어대는 연기와 탄내도 아닌, 길 건너 사는 시골 노인네들의 오래된 생활 습관이 아닌, 앞집에 사는 자연 속에서 터프하게 살아 온 터라 아직 개화가 덜 된 이웃(未開人)과 함께 사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 버렸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되다니.


여러모로 좋은 계절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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