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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화 Jan 06. 2021

시골의 개들 1.

전원주택에 산다.

"룡이는 좋겠네. 시골에 살면서 잔디밭에서 마음껏 자유롭게 뛰어놀고, 아파트 사는 애들처럼 갇혀 살지 않아서."

시골에서 강아지랑 같이 산다고 하면 열에 아홉은 이런 반응이다. 나도 이럴 줄 알았다. 우리 강아지가 도시에서보다 자유롭게 뛰어놀고 아파트에서 사는 애들보다는 자유로운 삶을 살 것이라고 기대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강아지에게 더 위험한 곳은 도시보다 시골이다. 개통령 강형욱이, 수레이너 설채현이 아무리 방송에서 떠들어댄다고 할지라도 그 말이 들리는 곳은 적어도 시골은 아니다.

처음 이사를 하고 마주친 갈등은 반려견에 대한 다른 시선들이었다. 물론 아직도 식용견 농장이 있고, 개장수들이 있고, 복날이면 개를 먹지 말자며 캠페인에 나서고, 심심치 않게 동물 학대에 대한 뉴스가 있고, 심지어 자기가 키우는 반려견을 학대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분명 정신이 이상한 놈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생각을 했다. 상식 밖의 일들을 저지르는 인간들은 분명 어딘가 이상한 티가 날 것이라고 믿었다. 단박에 보이진 않아도 뭔가 눈빛이 다르다든가, 이유를 모를 싸한 분위기를 풍긴다든가, 어쨌든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특이점들이 분명 하나는 있을 것이라고. 그렇지 않다면 세상이 너무 무섭단 말이다. 너무나 멀쩡하고 보통의 상식을 갖고, 같은 세상에서 함께 하는 그저 평범한 인간이 할 짓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룡이는 이 동네에서 들개의 자견으로 태어났다. 룡이의 엄마도 태생이 들개였는지 아니면 유기견이었는지 모르겠다. 여차여차하여 룡이는 내게 심각하게 다친 상태로 오게 됐다. 다친 지 일주일 째 당시 룡이를 보호하고 있던 분은 많이 나아졌다고는 했으나 애의 표정은 도저히 두, 세 달 된 강아지의 표정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고 아픈 다리는 여전히 땅을 딛지 못하는 상태였다. 병원이라도 데려가 보겠다며 데려왔는데 수의사의 진단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골반은 탈골된 상태였고 대퇴부는 두 군데가 골절이 됐고, 응급으로 수술이 들어가야 될 부상인데 오래 방치되어 부러진 뼈는 많이 벌어져 있어 곧 근육을 찢고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여서 이대로 두면 결국에는 괴사에 이르러 다리를 절단해야 될 지경이라고 했다. 보호자가 없는 들개니 그냥 죽는 수 밖에는 없을 터였다. 고민할 필요없이 바로 다음 날 응급으로 수술을 했다. 수술 후 한 달 이상의 깁스로 다친 다리는 근육 손실이 심했다. 정상이 되긴 힘들 것 같고 회복이 잘 되어도 다리를 절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룡이는 지금  수의사 선생님도 놀랄만큼 건강하고 근육 밸런스도 좋다. 그리고 이 아이를 데려오지 않았으면 어쨌을 뻔 했을까 싶을 정도로 사랑스럽다. 룡이의 사연을 아는 동네의 몇몇 분들은 산책하는 룡이를 볼 때마다 아주 개가 다 됐네, 주인을 잘 만나서 살았네 등등 버티고 살아준 룡이에 대해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 이런 얘기들을 들을 때마다 나도 어깨가 으쓱 할 정도로 뿌듯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딱 여기까지다. 그들이 보는 룡이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여기까지다. 그들이 내게 준 워딩 그대로 옮기자면 '가치없는 들개가 좋은 주인을 만나서'이고 그들이 하는 말의 방점은 '가치없는'이다.


"개를 왜 집안에서 키워? 냄새나고, 더럽게."

"개가 답답하겠네 줄 좀 풀고 막 뛰어다니게 해."

"개한테 뭔 돈을 그렇게 들여? 아주 혈통 좋은 비싼 개도 아닌데."

"개를 안에서 키우니까 털도 안 나고 추위에 약하지 밖에서 춥게 키워야 털이 빡빡하게 나는 거야."

"사람이 먹을 걸 개한테 먹이네."

심지어

"색깔이 아주 맛있게 생겼다. 약해 먹기 좋은 개네."

친절하고 정 많은 시골 사람들이 처음에는 나를 좋게 보고 나를 칭찬하느라 상대를 지나치게 비하하는 화법을 쓰는 줄 알았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를 칭찬하고자 할 때 비교가 되는 대상을 필요 이상으로 저평가 하듯 얘기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으니 그런 화법이려니 했으나 이후 듣는 얘기들로 보면 그들 말의 방점은 '좋은 주인'이 아니라 '가치없는 들개'에 찍혔다는 건 너무나 자명하다. 


만일 내게 살고 있는 집을 포함해 제주 오름 정도되는 사유지가 있다면. 그래서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내 개를 위협할 다른 동물들의 출현이 차단이 되고, 내 개가 내 땅을 벗어날 수 없을 정도의 튼튼한 울타리와 설사 내 땅을 벗어났다 할 지라도 주변에 달리는 자동차라든 내 개를 해할 개장수 혹은 원주민 천적이 없다는 가정과 내 개가 콜백이 무조건 되는 개라면 그때서야 개는 자유롭게 멋대로 뛰어 다닐 수 있는 조건이 겨우 만족되지 않을까 싶다.

시골이 개에게도 보호자에게도 자유롭고 편하고 여러가지로 좋을 것이라는 생각은 판타지에 불과하다.


초여름 무렵 에스메랄다의 배가 불러 온 것을 봤다. 배를 보니 이제 곧 아기들이 나올 듯 했고, 다리는 짧은데 배는 불러 언덕을 오르면 배가 땅에 닿아 쓸리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에스메랄다는 집 밖에서 묶여 사는 이웃집 강아지의 밥을 먹기도 했고, 어쩌다 우리집까지 올 때는 내가 밥을 챙겨 주기도 했다. 단지 내에서는 안정적으로 먹이를 해결할 수 있으니 사람의 출입이 드문 장소만 찾는다면 아마도 단지 내에서 아기들을 낳을 듯 보였다. 배부른 에스메랄다를 보면서 걱정이 든 사람은 나 뿐만은 아니었다. 여러가지 이유로 에스메랄다의 출산을 걱정하는 소리들이 들렸으나 공통적으로는 부디 건강하게 출산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고 반려인 동지인 이웃에게 소식을 들은 바 에스메랄다는 다섯 마리의 강아지를 낳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많이도 낳았네, 애들이 젖은 잘 먹고 있어요? 지나다가 우연히 본 반려인 동지의 말로는 몸을 푼 곳은 공사가 중지된 땅에 있는 컨테이너 밑이라고 했다. 뭘 갖다주고 싶은데 잔뜩 예민해져있는 상태라 근처에만 가도 화들짝 놀라 나와 짖더라고. 그런데 몸을 보니 젖은 잘 먹이는 것 같다고. 우리의 생각은 우선은 뭘 챙겨 주러 근처를 가기보다 에스메랄다가 스스로 와 주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다. 동네로 오면 밥은 챙겨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 굶지는 않을 거라고. 그러면서 슬슬 강아지들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고민했다. 강아지들보다 에스메랄다가 더 걱정이긴 했다. 저렇게 돌아다니면 또 임신을 할 가능성도 높고 내가 데려다 키울 사정은 안 되지만 적어도 중성화는 시켜주는 게 여러모로 좋을 것 같았다. 사실 단지 내에 덩치 큰 떠돌이 개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는 것을 여러번 본 적이 있다. 산을 타고 다니는 것 같은데 겁이 나기도 했고 룡이이게 위협이 될 수도 있는 문제였다. 집 마당에 심심찮게 큰 개의 똥이 있는 걸 보면 우리가 자는 사이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것이 분명했다. 제발 음식물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거나 쓰레기 봉투를 내놓지 말아 달라고 잔소리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떠돌이 개의 출현 때문이기도 하다. 먹을 것을 찾아 모이는 애들이 발정 때라도 되면 암캐들의 임신과 출산을 반복적으로 보게 될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수순이기 때문이다. 이기적인 마음이지만 이런 모습들이 적어도 내 눈 앞에서는 자주 일어나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럽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면 내 눈에서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나는 이미 그 어린 것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얼마나 위험한 삶을 아슬아슬하게 살고 있으며 얼마나 허무하고 비극적으로 죽을 수 있는지를 봤기 때문에 더 그럴 수도 있다. 마음을 쓰지 않으려고 해도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고, 룡이의 산책 코스도 일부러 에스메랄다가 아기들과 함께 있는 은신처 근처로 잡아 혹시라도 에스메랄다와 아기들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랐지만 조심성 많은 에스메랄다가 내게 쉽게 모습을 보일 리가 없다.


"룡이맘님, 에스메랄다 애기들 중 몇 마리는 입양 될 것 같아요."  

반려인 동지의 카톡 메세지가 떴을 때는 운동 후 차가운 맥주 한 캔을 들이켜는 것 같았다. 그 시원함과 청량감.  몇 주간 가슴을 짓누르던 부담과 에스메랄다를 보면서 느꼈던 미안함. 룡이를 보면서 다시금 생겨나는 의무감과 이를 실행할 수 없는 현실적인 답답함이 한 방에 해결되는 소식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룡이 새벽 산책을 나갈 때 에스메랄다가 애기들 세 마리와 함께 단지에 모습을 드러냈더랬다. 얼마나 잘 먹였는지 포동포동한 녀석 셋과 아직은 젖이 늘어진 상태긴 했지만 컨디션이 좋아보였던 에스메랄다. 아기들은 호기심이 가득해서 통통볼처럼 제각각 튀어나갈듯 뛰어다니다가도 형제들끼리 만나 뒹굴며 놀았고 에스메랄다는 항상 그렇듯이 경계를 완전히 늦추지는 않은 채 거리를 두고 나와 약간 비껴 앉았다.  처음에는 룡이도 에스메랄다도 서로 경계했지만 지금은 서로 덤덤한 사이가 되었고, 룡이는 에스메랄다는 못 본 척 혹은 없는 척 했다. 산책 가방에서 간식거리를 꺼내 에스메랄다가 볼 수 있는 곳에 놓아주고 룡이 새벽 산책길을 나섰다.

아기들에게 이 동네 사람들은 소개해 주고 싶었으려나? 적어도 이 동네에 오면 먹을 거리는 있다는 걸 알려주려고 데리고 나왔으려나? 어떤 이유로든 에스메랄다는 우리 단지를 안전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괜시리 기분이 좋았다. 아기들이 다 좋은 집으로 입양이 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부디 단지 주변에서 안전하게 자라기를 바랐다.

며칠 뒤, 약 한 시간 가량 동네 주변 산책을 마치고 오는 길에 동네 청년의 1톤 트럭을 발견했다. 집으로 가는 도중 룡이 익숙한 듯 트럭으로 가서 냄새를 맡기 시작했고 이어 트럭 안에 꼬물거리는 에스메랄다의 아기들이 트럭을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룡이도 아기 강아지들의 움직임을 보고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멀찌기 트럭 쪽을 보는 에스메랄다도 보였다. 그리고 아기 강아지의 목덜미를 잡아 들고 내려오는 동네 청년의 모습도 보였다.

"강아지들 어디로 데려가시게요?"

입양이 될 것이라는 희소식을 들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마치 쓰레기를 수거하듯 아기들을 함부로 대하는 모습에 화가 좀 났다. 율의 흥분도 심해져서 안아야했다. 트럭 뒤에서 밖으로 나가려고 애를 쓰는 두 마리의 아기 강아지와 멀찌기서 트럭을 바라보는 에스메랄다와 태어난지 한 달이 갓 넘은 강아지 목덜미를 잡아들고 내려오려는 청년의 모습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 왔다. 룡이는 안긴 품안에서 도대체 흥분을 가라앉힐 줄을 몰랐고 자리를 뜨기에도 발이 떨어지지 않는 상황.

"동네에 들개들이 많으면 안 되는데 새끼를 또 낳아가지고. 데려가신다는 분이 계셔서 잡았는데 보니까 한 마리는 죽어 있고. 세 마리 밖에 못 잡았네."

"그럼 지금 얘들은 입양하신다는 분들께 데려다 주시는 거예요?"

"네. 잡아 오면 데려가신디고 해서."

일단은 다행이다.

"근데 아기들이 지금 막 뛰어내릴 것 같은데 이대로 차가 움직이면 위험하니까 제가 룡이 집에 데려다 놓고 빨리 와서 애기들 옮기는 거 도울게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아기를 빼앗기는 허탈함이었는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아기들이 버둥거리는 트럭만 바라보는 에스메랄다의 눈빛이 너무나도 슬퍼보였으나 에스메랄다 혼자 밖에서 아기들을 다 키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뿐더러 그 아기들이 건강하게 자라리라는 보장도 없는 환경이다. 엄마와 아기들의 이별이 순간은 안타깝지만 입양은 아기들에게도 에스메랄다에게도 좋은 일이다. 내가 입양처를 검증하고 보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어떤 가정으로 갈 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펫샵이 아닌 들개의 자견을 입양한다는 사람은 적어도 생명의 존엄함을 아는 사람일테니 도와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무려 10kg이 넘는 룡이를 안고 거의 뛰다시피 언덕을 오르고 올라 집까지 도착. 평소 같으면 빗기고, 닦이고, 산책 후 오른 열을 식히느라 쿨링 조끼를 입히고 간식 하나를 주는 산책 후의 일련의 과정들을 다 생략한 채 "룡아, 집에서 있어봐. 엄마 금방 올게." 하고서는 다시 후다닥 언덕을 뛰어내려갔다. 

룡이는 집 안에서 이게 무슨 황당한 일이냐는 듯 목 놓아 왈왈 짖어댔다. 


기다려 룡아, 일단은 아기들을 구하러 가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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