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는 구조조정에서의 하나의 결과물일 뿐
‘구조조정’. 듣기만 해도 강렬한 단어다. 그도 그럴 것이 구조조정은 대체로 기업의 부정적인 상황과 결부되어 언론에 보도된다. 산업이 하락세일 때, 기업의 실적이 좋지 않을 때 등, 벼랑 끝에서 구조조정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사실 구조조정은 말 그대로 구조를 조정한다는 것이지 반드시 누군가를 해고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 구조조정에 항상 클리셰처럼 따라붙는 것은 “OO명이 정리해고되었다”는 이야기.
이는 새로운 구조와 사업에 집중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인력 감축이 변화를 보여주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서가 아닐까. 사실 직장인들이 구조조정이라는 단어에 서늘함을 느끼는 이유는 바로 이 클리셰처럼 따라붙는 정리해고, 그래서 “어쩌면 내가 해고될 수 있겠다”는 두려움에서 오는 것일 거다.
구조조정이라는 공지(혹은 폭탄)를 맞은 우리 한국 지사의 풍경도 다르지 않았다. 나처럼 포지션이 사라진 사람들은 퇴사하라는 무언의 압박처럼 느꼈고, 배신감, 수치심, 좌절감, 여하간 이 세상의 모든 부정적인 말들은 모두 갖다붙여서야 겨우 그 기분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회사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 충격이었다. 코로나로 인한 매출 감소는 있었으나, 돌파구를 찾고 있었고 실적도 돌아오고 있었다(적어도 그런 조짐은 보였다). 게다가 1년 전, 즉 2019년부터 준비한 구조조정이라 했으니, 코로나가 원인일 수는 없었다.
우리 회사는 그럼 왜 갑자기 구조조정을 공표했을까?
“네트워크 조직(networked organization)”으로 변화하고 싶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우리 회사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해당 분야에서는 언제나 1위인 기업이다. 전통적인 기업들이 흔히 그렇듯, 세월이 흐르며 조직은 비대해졌고, 책임자가 많아지며 의사결정은 느려졌다. 위험 회피 성향이 나날이 강해졌으며, 국가 간 소통도 의외로 활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메타버스, NFT 같은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고,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해졌으며, 사람들의 관심사는 그 어느 시대보다 다채롭고 니치해졌다 (아무리 사소한 관심사라도 충족시켜주는 유튜브와 각종 OTT 서비스의 대두 덕분).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도 내 손 안에서 즉시 확인할 수 있어, 세계의 소위 '동시성'이 강해졌다.
이런 신세계에서 회사가 더욱 성장하려면, 예전보다 신속하고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조직이어야 했다. 바로 그 형태가 “네트워크 조직”이라는 것이 회사가 가져온 답이었다.
우리 회사에서의 “네트워크 조직”이란, 먼저 두꺼운 상하 관계를 절단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중간 관리자 자리가 거의 사라졌고, 개개인이 팀장 또는 경영진에 훨씬 신속하게 상황을 보고할 수 있게 되었다. 팀장 레벨까지 결재해야 하는 사안이 아니라면 개개인이 판단해서 업무를 진행한다. 결과적으로 조직의 판단이 전반적으로 빨라지게 된다.
또한, 이전에는 국가 단위로 팀을 구성했으나, 이제는 같은 비즈니스 유닛 안에서 업무 또는 브랜드를 기준으로 다국적 팀을 만들었다. 우리 회사에서는 지리적으로 인접한 국가들을 묶어 유럽 유닛, 아시아태평양 유닛처럼 ‘비즈니스 유닛(Business Unit)’을 만든다. 이전에는 같은 유닛에 있더라도 한국 마케팅팀, 싱가포르 마케팅팀이 있었는데, 이제는 하나의 마케팅팀에 한국, 일본, 중국, 싱가포르 등 다양한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함께 일하게 된다. 필연적으로 국가 간 소통이 원활해져 시야가 넓어지고 배움이 다양해진다.
마지막으로, 한 팀으로 묶여 있던 기존의 파트들을 업무 또는 브랜드 단위로 더욱 세세하게 나누어 각각을 독립적인 '팀'으로 분리했다. 이전에는 여러 파트가 하나의 거대한 팀이 되어, 상무급 팀장이 큰 권력을 갖고 파트 간 조율을 한다거나 지시를 내리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같은 팀이 아니다보니 협조 요청을 할 수 있을 뿐 지시를 내릴 수 없다. 이에 따라 중앙 집권적인 형태가 다소 해소되었으며, 이전 어느때보다 개개인의 협업 능력이 중요해졌다.
이 구조조정은 어느 한 세계적인 컨설팅 기업에 의뢰하여 진행되었다고 한다. 임원들은 근 1년간 이 업체의 브리핑을 받고, 여러 사례를 배우며, 우리 회사에게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여 추진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긴 기간 동안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았나.
하지만 직원들은 그 과정에 함께 있지 않았다. 어느 날 청천벽력과 같이 날아온 통보, 그리고 거기서 피어난 해고될 수 있겠다는 공포심은 그 어떤 장밋빛 미래도 보이지 않게 했다. 게다가 약 일주일 후면 내부, 외부(헤드헌터, 링크드인 등)에 동시에 채용 공고가 올라가기 때문에 빨리 지원 준비를 해야한다고 했다.
마음을 제대로 추스를 겨를도 없던 암흑같았던 시간. 그러나 “어디에든 소속되어 있지 않다”라는 것은 곧 “어디에나 갈 수 있다”는 의미와도 같기에, 오히려 잘 됐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지원할 수 있는 포지션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또, 기왕 낭떠러지까지 떠밀린 거, 날자고 생각했다. 더 높이 날아서 승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연차에 과장 승진이라면 특진에 해당했지만, 어쩐지 나는 자신이 있었다.
※Image source (이미지 출처)
Cover(커버): https://bit.ly/3JJcXJm (shade to the image/검게 만듦)
P1: [아하!경제뉴스] 구조조정은 무엇이고 왜 해야 하나요 https://bit.ly/3qEeybI
P2: 9 Types of Organizational Structure Every Company Should Consider https://bit.ly/3wD7wId
*영문 사이트에서 가져온 이미지이기에 영문 안내를 함께 표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