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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성 Mar 22. 2016

히말라야를 달리는 낡은 버스

지구를 거닐다_20150728

승강장에 버스가 들어서는 순간 한숨이 절로 나왔다. 맥그로드간즈에서 11시간 걸리는 마날리까지 타고 가야할 버스가 아니길 빌었다. 안타깝게도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우리나라 시내 버스보다 좁은 좌석에 뒤로 젖혀지지 않는 의자, 지금 당장 폐차장에 보내지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는 버스였다. 와이퍼의 성능이 한참 떨어져 기사 아저씨는 중간 중간 시야를 가리는 빗물을 신문지로 닦아냈다.


키가 큰 남편의 무릎이 채 펴지지 않는 공간이라, 우리는 앞자리 승객이 내리는 틈을 타 잽싸게 엉덩이를 들이 밀었다. 겨우 맡은 자리를 뺏길까봐 애써 엉덩이를 무겁게 했다. 마을이 나올 때면 시내 버스처럼 사람이 내리고 타기를 반복했다. 버스는 거의 내내 만석이었고, 험한 비포장길을 달리면서도 자리가 없어 서서 가는 사람도 더럿 있었다.


히말라야의 구불 구불한 산자락을 넘어가는 버스의 창 너머 풍경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다만 기사 아저씨는 이 풍경 대신 앞만 보고 운전하시기를 간절히 바랐다. 버스가 지나가는 도로 바로 옆은 경사가 급한 낭떠러지라, 급커브를 돌 때마다 정신이 아찔해져 양주 한 모금을 들이키고야 겨우 잠이 들었다는 누군가의 후기가 떠올랐다. 불행히도 우리에겐 술이 없었다.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뒷 자리에 계신 티벳 승려의 불심이 깊기를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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