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마이턴'을 통해 본 지상파 코미디 예능의 진화
웹예능에서 출발한 '상황극'의 확장과 리얼 버라이어티 시대의 한계 읽기
최근 SBS가 선보인 ‘마이턴’은 지상파로서는 새로운 도전이란 평을 받는다. 유튜브나 OTT에선 이미 많은 인기를 끌었던 '상황극'에 기반한 콘텐츠이지만, 지상파에서 이러한 형식을 만날 기회는 없었기 때문이다. 저항하기 어려운 웃음이 있지만, 한편으론 이 장르가 낯선 이들에겐 당혹감을 주기도 한다. 웹예능에서 출발한 상황극이 지상파로 확장되어 과는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선 과거의 '시트콤', 혹은 '코미디', 즉 '희극'이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맞춰 새로운 그릇을 찾아 진화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리얼 버라이어티 시대의 종언과 희극의 귀환
'마이턴'의 등장은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 시대가 한계를 맞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신호일 수 있다. 한동안 우리는 출연자의 실제 캐릭터에 의존하는 예능에 익숙해져 있었다. 알겠습니다. 리얼 버라이어티는 시청자들이 오랜 시간 방송을 보며 출연자의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구축될 때 힘을 발휘하는 장르다. 하지만 이제 시청자들은 한 프로그램에 꾸준히 시간을 쏟기 어려운 미디어 환경에 놓여있고, 이로 인해 캐릭터 구축이 어려워지면서 리얼 버라이어티 장르의 기반이 약해지고 있다. 런닝맨과 같은 장수 예능이 더 이상 나오기 어렵고, 유사한 출연진이 반복적으로 소비되는 모습은 실제 인물의 페르소나에 기반한 '리얼' 캐릭터 구축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마이턴’은 명백히 ‘극’의 형식을 취한다. 제작진은 이를 '페이크 리얼리티 예능'이라 칭했지만, 속마음 인터뷰와 같은 다큐멘터리적 장치를 배제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전통적인 '시트콤', 혹은 '코미디극'의 부활에 가까운 측면이 있다. 희극인들은 여기에서 주어진 상황을 기반으로, 정통 코미디의 연기를 수행한다. 자신의 페르소나가 일부 반영되긴 하지만, 상황 내에서 설정된 캐릭터란 제한이 있기 때문에 더 자유롭게 역할극을 수행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형식은 이미 OTT와 유튜브에서는 익숙한 문법이었다. 쿠팡플레이의 'SNL 코리아'나 유튜브의 여러 숏폼 예능들은 이미 ‘상황극’이라는 코미디의 본령을 충실히 수행하며 시트콤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마이턴’은 바로 이 흐름을 지상파의 문법으로 수용한 사례라고 볼 수 있었다. 시트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방송이라는 전통적 그릇을 떠나 뉴미디어 환경에 맞게 재탄생해왔던 것이다.
‘몰입의 붕괴’가 주는 새로운 웃음의 문법
‘마이턴’이 제시하는 웃음의 방식은 기존의 코미디와는 다른 지점에 있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재미는 잘 짜인 상황 자체가 아니라, 그 상황에 대한 ‘몰입이 깨지는’ 순간에서 터져 나온다. 제작진은 가상의 상황을 설정하고 출연자들이 그 안에서 각자의 역할을 연기하도록 한다. 하지만 진짜 웃음은 희극인들의 연기에 비희극인 출연자들이 몰입을 잃고 현실의 웃음을 터뜨리는 순간에 발생한다.
이러한 웃음의 메커니즘을 위해 ‘마이턴’은 의도적으로 희극인과 비희극인을 섞어 배치했다. 여기서 이수지와 같은 전문 희극인의 역할은 캐릭터를 완벽히 연기해 몰입을 강요하는 동시에, 다른 출연자들의 몰입을 ‘붕괴시킬 만큼’ 웃기는 것이다. 반면 배우와 같은 비희극인 출연자는 연기자로서 상황에 몰입하려 애쓰지만,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무너지는 ‘관객’의 역할을 대리한다. 이들의 무너짐은 시청자에게 ‘저 상황이 저렇게나 웃기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내며 웃음을 증폭시키는 장치로 작동한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 속, 콘텐츠 확장을 위한 전략적 선택
과거의 시트콤이 매일 저녁 시청자들을 만나며 연속성을 확보하는 ‘방송 중심적’ 콘텐츠였다면, ‘마이턴’은 철저히 현재의 미디어 환경에 맞춰 설계되었다. 이제 방송사는 젊은 층의 매일의 주목을 토대로 광고 수익을 거두기 어려운 환경에 놓였다.
‘마이턴’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프로젝트 기반'의 접근이란 전략을 선택했다. ‘트롯돌(트로트 아이돌)을 결성해 대상을 받는다’는 큰 줄기의 서사를 바탕으로, 회차별 에피소드를 쌓아가며 하나의 완결된 극을 만들어간다. 이러한 구조는 시즌이 종료된 후에도 ‘마이턴’이라는 세계관과 그 안에서 탄생한 캐릭터, 나아가 실제 음반을 낼 수도 있는 ‘트롯돌’이라는 결과물을 통해 콘텐츠의 생명력을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는 방송 시청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의 IP를 활용해 더 큰 파급력을 만들어내려는, 변화된 미디어 환경에 대한 지상파의 적응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지상파의 새로운 실험, 그 가능성과 과제
물론 ‘마이턴’은 아직 완성된 형태가 아닌, 진화 과정에 있는 실험이다. 웹예능의 문법에 익숙지 않은 지상파 시청자들에게는 여전히 진입 장벽이 높고, 때로는 과하거나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실험은 코미디라는 장르가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그릇을 찾아 나선 중요한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지상파라는 플랫폼이 가진 제약은 오히려 이 새로운 장르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동력이 될 수도 있다. 더 넓은 시청자층을 설득하기 위해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페이크 리얼리티 극’은 더욱 정교하고 보편적인 재미를 갖춘 장르로 다듬어질 가능성이 있다. ‘마이턴’의 도전이 과거의 시트콤이 주었던 일상의 즐거움을 오늘날의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되돌려주는 성공적인 진화의 첫걸음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