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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톨 Mar 26. 2020

인생을 심리스하게 산다는 것

인생에서의 반복이 어떻게 삶을 구원하는가

약속이 없이 퇴근 후 바로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면 나만의 루틴이 있다. 퇴근하자마자 화장실로 직행해서 손을 씻고 렌즈를 빼고 화장을 지운다. 옷을 갈아입고 넷플릭스를 보면서 간단한 요기를 한다. 요가매트를 꺼내 스트레칭과 근력운동을 하고 시원한 물을 마신다. 씻을 때는 따뜻한 물이 나오는 데에 오래 걸리기 때문에, 효율성에 환장하는 나는 꼭 처음 나오는 찬물을 버리지 않고 물통에 받아서 가습기를 채운다. (나를 잘 아는 친구 하나는 이 얘기를 듣고 너답다며 한참 웃었다) 내가 쓰는 제품들을 일련의 순서에 따라 바른다. 스킨, 에센스, 수분크림. 머리를 말리며 미드 한 편을 보고, 자기 전엔 전자기기를 멀리하고 책을 읽는다.


생각보다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것은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피부가 예민한 편인 나는 오랜 시행 착오 끝에 간신히 나에게 맞는 루틴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꼭 쓰는 제품만 쓰는 편이다. 그래서 제품이 한 개 남았을 때 꼭 미리미리 쟁여 놓는다. 그뿐일까, 생수도 두 병 정도 남았을 때 미리 사둬야 한다. 빨래도 매주 해줘야 한다. 집에 오래 있지도 않는 것 같은데 머리카락은 왜 그리 많이 쌓이는지. 인생을 자연스럽게 굴리는 데에는 여러 자잘한 노력들이 들어간다.


출처 : Unsplash


솔기를 의미하는 심(seam)이 없다(less)는 의미에서 나온 심리스는 사실 요즘엔 그 의미보다 연결이 매끄럽다는 의미에서 쓰인다. 특히 UX에서, 매끄러운 진행단계를 의미할 때 그렇다.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어색함이나 부족함 없이 물 흐르듯 이어지는 경험을 뜻한다.


심리스한 삶을 위해서는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루틴이라기보단 나는 이를 리추얼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박사에 의하면 리추얼(ritual)이란 일상에서 반복되는 일정한 행동패턴을 의미한다. 습관과 비슷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습관과 달리, 리추얼에는 ‘의미부여’의 과정이 있다. 습관이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고 반복되는 행동패턴이라면, 리추얼에는 거기에 정서적인 반응이 동반된다. 내가 일련의 보습 제품을 사용하거나, 다리부터 시작하여 허리, 어깨, 목 스트레칭을 차례차례 체크해나갈 때면 느끼는 편안함이 나의 습관을 리추얼로 만든다는 것이다.



일상에서의 시시하고 사소한 반복되는 패턴들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자율주행모드처럼 별 생각 없이 행하던 행동들은 우리의 삶을 지탱해준다. 변화 없이, 부드럽게,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스텝들은 우리의 생각을 자유롭게 해주고 안정을 준다.


그래서 우리는 일상에서 건강하고 탄탄한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굳이 노력을 들이거나 기억해 내야지만 하는 행동들이 아니라 피부 안에 스며든 것처럼 애쓰지 않아도 하게 되는 좋은 습관들은 우리의 삶을 어느 정도는 '절전 모드'로 흘러가게 해준다. 퇴근하자마자 옷을 갈아입어 정리하고, 간단히 청소기를 돌리고, 운동을 하는 행위들이 쌓이다 보면 하루 이틀은 몰라도 1달, 1년이 지나면 부쩍 달라진 모습이 보이게 될 거라고 믿는다. 더 나은 모습으로, 그리고 더 행복한 모습으로.



참조 : <[김정운의 클로즈업] 행복의 리추얼(의례)을 개발하라>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nNewsNumb=200809100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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