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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미 Jun 28. 2022

일기 02.

2022.06.28 화요일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날 거야_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다.

말도 안 되게 일이 잘 풀리거나, 원하던 일을 성취하는 것, 갑자기 부자가 되는 것, 갑자기 그런 기회가 찾아오는 것, 운명적인 누군가가 내 인생에 들어오는 것 등.

애석하게도 스무 살 이후 내 인생에 내가 모르는 일을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래서 나이가 들면 재미 없어진다는 말을 하는 걸까?

직장 생활을 한 이후로는 꽤나 냉소적이게 됐다. 재미있는 일을 찾으려고 하는 것조차 내게는 굳이 분류하자면 "소비"인 것이다. 감정의 소비. 기대해봤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이게 의미가 있나 하고 나를 다그치는 횟수가 잦아졌다.

그러다 문득 산책 나간 저녁 무렵의 호수가 필요 이상으로 아름다울 때,

지긋지긋하단 말로는 지긋함을 다 담지 못할 만큼 지친 퇴근길, 지하철에서 저녁노을을 마주할 때,

가슴이 두근거려 눈물이 나오곤 한다.

-이렇게나 예쁜데, 이렇게나 예쁜데..

사실 뒤에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는 알 수 없다.

그냥 "이렇게나 예쁜데 도대체 내가 무슨.. "

이 정도 문맥이었던 것 같다.

그 순간만큼은 삶을 좀 더 살고 싶어졌다.

삶의 의지라는 것이 불빛이라면 그 순간만큼은 반짝였던 것 같다.

삶의 의지는 거창하고 영화 같은 일로 생기는 게 아니다.

어제와 전혀 다를 게 없어 지루한 내 일상 속에서도,

친구와 함께 마시는 커피 한잔 속에서도,

우연히 지나가는 길에 보게 된 낡은 간판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낯선 것보다는 익숙한 것에서 의도치 않게 찾아오는 이 의지를, 이젠 익숙하게 받아들이려 한다.

삶을 익숙하게 하는 건지, 불현듯 찾아오는 삶의 의지를 익숙하게 하려는 건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나는 일기를 쓴다.

무엇이든 익숙하게 하기 위한_ 더 나은 하루를 위한 노력을 해본다.

그래, 이게 영화 같은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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