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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남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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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정결핍 May 18. 2024

남의 일기 10

미니멀리스트 지향 맥시멀리스트

누군가 나에게 ‘맥시멀 리스트냐, 미니멀 리스트냐’ 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코 ‘맥시멀 리스트’ 라고 할 수 있다.


한 번 들인 물건을 잘 버리지 않으려는 습성도 있고

심지어 회사 다니면서 스트레스 받을 때 마다,

새로운 취미용품을 구매해두고 아직 ‘언박싱’ 조차 안 한 것들도 있다.


내 생활이 맥시멀이라고 해서, 취향까지 맥시멀일까 했는데

그건 또 아닌 듯 싶다.


TV나 친구들의 집에 방문했을 때, 내가 더 대단하고 좋아보인다고 생각하는 집은

물건은 많지 않지만, 본인의 분위기에 잘 맞는 것들을 퍼즐처럼 모아둔 집이었다.

어떤 물건 하나도 허투루 본인의 공간에 들이지 않았다는 것이 눈으로 보여지는.


나는 요즘 집을 비우기 위해 집에서 안 쓰는 물건을 채소마켓에 판매 중이다.

채소마켓에 올려둔 제품들만 모아놓은 종이봉투가 있는데,

하나 씩 비워질때마다 후련한 기분이 든다.

(채소마켓은 중고마켓 중에서도 중고마켓으로 염가 수준이라 돈은 안 되지만.)


이번 생일에 받은 달 모양 무드등과 캐릭터얼굴 모양 가방도 팔기는 좀 그래서 동생에게 줬다.

달 모양 무드등은 동생한테 보여줬는데 나보다 더 눈이 반짝거리길래 줬고,

캐릭터얼굴 모양 가방은 동생 직장동료분 어린 자녀에게 대신 전달을 부탁했다.


채소마켓에 올릴 물건을 선별하며 나는 생각보다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확하게는 내가 골라서 구매한 소품이 아니면 ‘잘 손이 가지 않는다.‘ 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


예전 같으면, ‘그래도 선물 받은건데’ 라며 고마운 마음으로 어떻게든 예쁘게 꾸몄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짐’으로 와닿으리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차라리 나보다 더 필요한 사람들에게 커피 한 잔 값에 팔거나 (편의점~개인카페 가격)

더 간절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낫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


며칠 전, 동생 집에 놀러갔는데 달 모양 무드등이 딱 어울리게 잘 놓여있었다.

동생 집은 맥시멀 중 맥시멀 리스트지만, 그게 또 예쁘게 잘 어울리는 집이다.

그리고 캐릭터얼굴 모양 가방은 이미 적임자를 찾았고, 기뻐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또, 선물받았지만 책장에 굴러다니던 애니메이션 캐릭터 인형도 채소마켓에 올렸는데

그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을 모으는 중인 분에게 잘 양도되어, 함께 잘 어우러져있는 예쁜 후기사진도 받았다.


이렇게 나에게는 짐이 되었을 물건들이 더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서 사랑받는 모습을 보면

뭐든지, 자기에게 어울리는 자리가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것이 물건이든 사람이든

나에게는 처치곤란인 것이, 누군가에게는 반갑고 고마운 선물이 된다는 것을.


그렇게 비워진 장식장에 내가 좋아하는 향기나는 제품들을 채웠다.

다음 집은 좀 더 넓은 곳으로 가고 싶다.

더 채우기 위해서가 아닌, 좀 더 비워져 보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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