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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W Jul 11. 2023

거인의 어깨 위에 선 영악한 난쟁이 대 작은 거인

[등촌광장] 7월

흔히들 아이작 뉴턴의 경구로 알려진 '거인의 어깨 위에 선 난쟁이'는 출처를 알기 힘든 오랜 경구이다. 뉴턴이 이 경구를 쓸 때 극히 미화되어 겸손함을 나타낸다고들 했지만, 기실, 뉴턴과 로버트 훅이 댓글 달듯 서신 교환하며 다투던 중에 나온 이야기라는 게 저간의 사정이다. 둘이 주고받은 말다툼의 강세는 '난쟁이'에 있었고 상대가 거인의 위세에 빌붙은 난쟁이에 불과하고 (훅의) 장애를 지칭한 인신공격이었다 하나 확인 되지 않으니 중의적인 함의로 봄직하다.


비근한 예로 우리 학계에도 거인 행세하는 영악한 난쟁이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실적은 좋은데 실력은 인터넷 댓글러 수준도 안 되는 자칭 석학’들이 좋은 예이다. ‘영악한 난쟁이’들이 석학 행세하는 분야와 그 산업은 결국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며’ 쇠락하기 마련이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국가 첨단전략산업에 집중 육성 전략이 진행되고 있지만, 격전 상황의 몇몇 분야 실상은 ‘초격차’가 아니라 ‘미미한 격차’로 계속 밀리는 중이다. 이게 다 기초 부족 탓이다. ‘영악한 난쟁이’로 기초가 깨져 그런 예가 종종 보이는 게 안타깝다.


‘우리가 여전히 훨씬 낫다’ 식의 ‘초격차’ 주장은 임란 직전의 조선 통신사를 연상케 한다. 2010년대 초중반 이후부터의 중국의 학계 연구 결과나 국가와 민간 투자 전략은 더 이상 후진적이라 할 수 없으며, 우리의 기술안보 구멍과도 직결돼 있었던 건 뼈 아프다.


특히, 이차전지는 ‘기초, 차세대, 생태계, 자원’의 사면에 ‘초가’가 울려 퍼지니 우리가 그나마 버티는 건 제조 생태계 강건성으로 제품화 능력이 나은 덕이지만, 80~90% 이상의 중국 삼원계 전구체에 의존한 양극활물질 산업과 더불어 기초 체력은 흔들린 지 오래다.


그나마 미국 IRA와 유럽 CRMA 등으로 세계적인 중국 전구체 제조사와의 합자사가 성사되며 급한 불은 껐다지만, 양극활물질 산업의 중국 종속은 자명하다. 특히 댓글 작업 수준으로 양극 활물질 산업에 외려 국뽕 마약 주사를 놓은 사짜 유튜버 해악이 조만간에 산업과 투자 시장 전반에 큰 악영향을 줄까 우려된다.


결국, 우리도 ‘길게, 멀리’ 가기 위한 기반은 기초와 차세대인데, 보완재인 차세대 알칼리 금속 이온 시스템인 소듐 이온 이차전지도 중국에 선점돼 뒤늦게 추격해야 할 상황이다. LFP 기반 리튬이온 이차전지도 차세대 양극활물질인 LXFP를 체계적인 전기화학 기반 연구로 결실을 맺었으니 이는 기초와 응용 연구가 무르익은 결과다. 하이 및 울트라 하이 니켈계 삼원계도 강력한 전방 생태계와 시장에 힘입어 우리를 고속 추격하고 있으며 물량전 측면에서의 ‘전해전술’도 우리가 대응하기 아주 어렵다.


‘영악한 난쟁이’들의 꾸며진 성과들이 산업 성과로 이어진 게 없었던 건 당연한지도 모른다. 최근 10여 년간 중국 산학에서 차세대로 집중해 온 것은 ‘알칼리 금속 이온 테크놀로지’였고, 우리가 집중해 온 것은 ’ 플렉시블 전지‘ 같은 후킹용 유행이었다. 이는 우리가 외려 기초 자체가 더 약해지는 우물에 빠지게 했다.


기초도 부족해진 건, 매체에선 세계적인 석학인양 칭송하는 이들이 기실 업계에서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거인 어깨 위에 선 영악한 난쟁이‘이라는 문제점에서도 기인한다. 이는 좋은 시절엔 덤이지만, 임박한 격전에 즈음하여 전력의 허수로 이어지게 한다.


‘노벨의 계절’이 다가올 때마다 피인용 지수가 높은 이들이 유력하다 하나, 노벨상은 ‘석학’이 아니라 세상을 바꾼 ’선학‘에게 주어진다는 점에서도 태생이 거인인 ’실력 있는 선학‘을 결국 영악한 난쟁이인 ’실적 좋고 실력 없는 가짜 석학‘이 이길 수 없고, 한 나라의 창의 과학기술 토대는 태생이 거인인 ’선학‘이 많이 나올 수 있는 정책적 토대가 필요함도 자명하다.


‘거인의 어깨에 서 거인 행세 하는 영악한 난쟁이’를 정부와 정권이 방치하며 모른 체하면 첨단 분야의 과학기술과 산업 격렬한 전장에서 종국에는 뒤쳐지게 되는데, 실제 그 일이 일어나고 있다. ’백 투 더 베이식‘ 자세로 지금부터라도 거인 행세하는 ‘영악한 난쟁이’를 가려내고, 자질 좋은 신진 및 중견 학자들이 우리 산업의 기초와 인력양성을 이끌고 갈 수 있도록 ‘작은 거인 육성’에 방점을 두는 국가전략이 필요한 때임을 명심해야 할 때다.


프로필 ▲(현) 서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 ▲(전) 차세대전지 성장동력 사업단 기술 총괄 간사 ▲산자부 지정 차세대전지이노베이션센터 센터장 ▲전자부품연구원 차세대전지연구센터 초대 센터장 ▲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과학기술교육분과 전문위원


등촌광장 7월 칼럼 (전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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