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PD가 바라본 세상 두번째 이야기
인천공항에서 출발한지 약 9시간... 시트벨트 사인이 들어오고 무거운 머리를 돌려 지구 반대편 어딘가를 내려다봤다. 이게 왠일? 구름도 없는데 도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자욱한 사막의 모래바람 사이로 은빛 건물의 위용이 고고하게 드러나던 곳, 나의 첫 중동지역 방문에 카타르(Qatar)의 수도 도하(Doha)는 쉽게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지난 2012년 중동지역 최대 국영방송 알자지라(Aljazeera)의 주관으로 열리는 국제 다큐필름 페스티벌에 초대를 받아 이른 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도 숙소도 모두 공짜라는 말에 이미 적잖이 놀랐는데 도착 이후 이들의 환대는 말 그대로 서프라이즈였다. 우리나라 김포공항 정도 규모의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정적인 분위기는 우리의 것과 많이 닮았다. 이윽고 찾아낸 알자지라 부스, 이곳에서 간단한 본인 확인을 하니 우리를 바깥으로 에스코트 한다. 택시정도가 왔으려니 하고 둘러보니 B사의 고급 승용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난생 처음 타보는 고급세단의 뒷좌석에 올라앉아 바깥 경치를 보니 강렬한 태양에 약간의 기시감과 흥분됨을 느꼈다.
아파트 5층높이는 훌쩍 넘어 보이는 야자수 길을 지나고 나니 모래바람 저만치에 도시의 모습이 보였다. 마치 만화의 한 장면이라면 고고-라는 소리를 낼 정도의 웅장한 규모의 빌딩들... 아침시간 카타르의 모습은 오늘날 중동지역의 발전을 드러내듯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나중에 들은 사실이지만 이 건물들 중 상당수가 우리나라 기업들이 만들었다고 한다. 자부심을 느끼는 순간도 잠시, 에어컨 빵빵한 차에서 내리자 숨 막힐 듯한 더운 바람이 폐 속에 훅을 날렸다. 이런 모래바람을 맞으며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저 높은 빌딩들을 지어냈다고 하니 그분들의 노고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듯 했다.
S호텔에 멈춰선 차, 벨보이가 다가와 저 멀리서 찾아온 이방인에게 친절한 미소를 건낸다. 이후 안내받은 방은 스위트룸! 영화에서나 보던 그런 방을 선뜻내어준다. 뭔가 잘못된 것 같아 혹시 우리가 계산해야 하는건 아닌지... 조마조마하며 본 행사 사무국을 찾았다. 사무국장이라고 소개한 히잡을 쓴 여인은 연신 방문에 감사하다고 촌놈같이 굴던 나에게 편하게 쉬라는 제스처를 취해 보였다. 오 마이갓! 이곳은 그야말로 천국이 아닌가? 비행기도, 방도, 음식도 다 공짜~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전 세계에서 나처럼 초청받은 다큐PD가 200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말에 마치 요즘 개그콘서트의 ‘억수르’에서 나오듯 그들의 스케일에 적잖은 놀라움과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내 본 행사가 시작되고 4일간의 본격적인 다큐 페스티벌이 시작되었다. 전 세계에서 모인 다큐멘터리들이 일제히 얼굴을 내밀었는데, 우리나라의 행사 같으면 자신들의 자본을 들여 모신 외국의 손님들에게 이곳저곳 행사용으로 데리고 다니며 귀찮게 할법한데 여기는 자유롭게 자신이 보고 싶은 다큐멘터리를 관람하고 세계 각국에서 모인 다큐 감독끼리 자유로운 토론을 하란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분위기는 활발했고, 고급스러웠으며 자유로운 가운데 열정이 넘쳤다. 특히 식사시간에 많은 대화가 오갔는데 5~6인용 테이블에 자연스레 앉다보면 서로의 작품에 대해 혹은 인상 깊었던 작품에 대해 자유로운 대화가 오갔다.
(사진설명 : 행사장 및 호텔의 모습, 행사 포스터)
하루가 지난 점심때 나는 왜 이들이 이렇게 많은 돈을 들여 이런 행사를 진행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 행사의 슬로건은 바로 전쟁, 사랑 그리고 평화였다. 수많은 작품들을 접하고 나니 우리가 잘 모르던 혹은 외면했던 중동의 내전, 아프리카의 가난, 자본주의로 부터의 수탈 등 이곳의 아픔이 잘 묻어난 작품들이 많이 상영되고 있었다.
그중 인상 깊었던 몇 가지를 소개하면 먼저 신성한 지역의 돌이라며 팔레스타인 지역의 대리석을 채취해 가는 유대인 자본의 비정함을 다룬 다큐영화 “신성한 돌, Sacred Stone”, 미국군인의 실수로 죽어간 저널리스트의 문제를 다룬 영화 "Who permitted the engaged", 가난한 아프리카 어촌 마을을 더욱 피폐하게 만든 중국 원양어선의 쌍끌이 그물망 그리고 그 고기를 먹는 유럽인들을 대조적으로 보여준 영화 "Steeling from the Poor"등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아픔의 땅의 역사에 대한 영상 기록이 모두 모였던 것이다.
우리는 흔히 중동지역을 떠올리면 개그콘서트의 ‘억수르’같이 오일머니를 펑펑 쓰는 희화화 된 아랍왕자의 이야기 혹은 부르즈칼리파와 같은 빌딩이 우뚝 솟은 두바이의 현대적이고 세련된 모습을 떠오르기 쉬운데 그 모래바람과 같은 환상을 걷어내니 그 속에는 아픔의 땅의 역사가 있었다.
이런 아픔의 역사를 이곳 알자지라 국제 다큐페스티벌에서는 내전과 전쟁, 아프리카 지역의 가난 등 수많은 가슴앓이를 했을 이곳 사람들 모두의 인생을 카메라에 담아 두었다.
그곳에도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눈물은 끊임없이 슬펐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고아가 된 채 살고 있었다. 테러리스트는 말이 필요 없이 나쁜 사람들이지만 테러리스트로 오해받은 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도 나빠지고 있었다.
우리는 ‘비가시성’의 세상에 살고 있다. 마치 귀여운 병아리와 맛있는 치킨을 연결시키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가 보지 못하는 사실에 대해 철저히 외면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필자의 경우 지난 카타르에서의 경험을 통해 요즘 들려오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 기사를 접할 때마다 더욱 관심을 가지고 보는 것 같다. 우리도 한국전쟁이라는 참변을 겪으며 성장한 민족인 만큼 다른 민족의 아픔이라고 무감각해져선 안 되겠다.
글로벌 인재를 외치는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덕목은 영어가 아니라 ‘공감’이라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진설명 : 왼쪽부터 다큐멘터리 브로셔, 카타르의 야경, 피날레 시상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