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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수 Sep 30. 2015

유기농 사나이의 비법

촌PD의 바라본세상 다섯번째 이야기

 “숲의 주인은 원래 동물들이야, 내가 여기서는 침입자가 되는 거거든 그래서 나는 밤에 웬만해선 불을 안 켜고 살라고 그래” 내가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에게서 들은 가장 인상적인 말이었다. 무릎이 툭 튀어나온 바지자락 끝엔 온통 흙이 싱그럽게 묻어있고 난닝구(러닝셔츠)에는 자연통풍 구멍이 숭숭 나있는 차림으로 우리 취재진을 맞아준 그분 바로 유기농 사나이 강원도 정선의 안중렬(당시 52세)씨다.  


 내가 안중렬씨를 처음 만난건 한창 다큐멘터리를 연출할 때, 강원도 정선에 가면 전기없이 사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급하게 정선으로 떠났다. 정선 가는 길은 한참 여름이 싱그러웠던 것으로 기억난다. 강원도 정선군은 오묘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런 느낌이었다. 세상과 격리된 것 같은 지형에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곳, 동강에서 피어오르는 새벽안개를 경험하고 나면 마치 그 옛날 속세를 피해 산으로 올라가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던 산적의 마을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이런 곳에 진짜 유기농 사나이가 있단다. 한전직원의 안내에 따라 우리가 올라간 곳은 오프로드 그 자체였다. 사륜구동 자동차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계곡까지 건너 더 이상 올라갈 엄두를 내지 못할 때, 산 중턱에 고추밭이 나타났다.     


  산중턱에 고추밭이라니... 작은 암자 지을 엄두도 나지 않는 곳에 갑자기 밭이 나타나 우리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진짜 길도 없는 곳을 헤치고 와서 돌아갈 걱정이 앞섰는데 그 곳에는 밭 이외에도 초가집까지 있었던 것이다. 갑작스런 손님의 방문에도 안중렬씨는 굵고 낮은 음성으로 무덤덤하게 우리를 맞이했다. 밤과 관련된 다큐를 제작한다는 말에 “밤은 깜깜한데 뭘 찍누”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별을 찍고 싶다고 대답하니 금방 여기서 보는 별의 운치에 대해 줄줄 얘기하신다. 좀 외로우셨던 모양이다.     


 이곳의 저녁준비는 특별하다. 약 천평 남짓한 콩밭의 울타리를 보수하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매일매일 울타리를 세우지만 다음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무너져있다. 멧돼지며 고라니가 허름한 울타리를 쉽게 부수기 때문이다. 한 가지 신기한 점은 야생동물이 와도 밭 전체를 헤치지는 않는다고 한다. 먹을만큼 먹고 사라진다는데 이곳 산골의 야생동물은 성격이 강원도를 닮았나보다. 검정 비닐로 둘러싸인 울타리를 치는 모습은 마치 소설 노인과 바다의 모습과 영락없이 닮았다. 검정 비닐파도에 이리저리 몸을 가누지 못하고 출렁이는 모습이 사실 본인에게는 굉장히 힘든 일인데 이를 바라보는 이에게는 애잔함과 코믹함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마력이 있다. 이렇게 울타리와의 전쟁을 끝내고나면 이내 저녁시간이다. 어두워지기 전에 빨리 불을 피우고 가마솥에 물을 끓여야한다. 왜냐하면 이곳의 여름밤은 굉장히 차갑기 때문이다.    


 모닥불이 빨갛게 익어가고 어둠이 내려앉으면 그때부터 온전한 밤의 세상이다. 불빛이라곤 집안에 피워놓은 화롯불과 촛불, 등잔불이 전부. 어두운 곳에서 각자의 불은 1미터 남짓한 공간을 군데군데 밝히고 있다. 그런데 전기불이 없으니 몇 가지 재미난 현상이 나타난다. 어두움 속에서 모두들 조용해진 것이다. 이곳에선 소곤소곤 얘기가 오간다. 배를 잡고 웃을 일에도 시끄럽게 웃는 법이 없다. 옆에서 방귀를 껴도 쿡쿡 거리는 웃음이 있을 뿐 결코 깔깔대지는 않는다. 그래서 천박한 웃음보다 품위 있는 양반의 웃음이 가득하다.    

 매번 왁자지껄한 도시의 밤을 경험한 나에게 완벽한 음소거의 밤은 생소함과 편안함을 가져다주었다. 평소 내가 해야할 일, 하고싶은 일, 못했던 일 이외의 생각들이 서로 자기가 먼저라고 고개를 비죽 내밀 때 보통은 알코올에 의존하기 일쑤였는데 이곳에서는 그런 괴로운 생각이 어둠속에 간단히 덮여버린다. 그런 어둠이 짙어지면 이내 이름 모를 새소리 장단이 불어오면서 이곳은 완벽한 ‘밤’이 된다.    

 

 이곳의 밤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달을 보면 달이 되고, 별을 보면 별을 헤며 시간을 보낸다. 끝없는 어둠속에 빛나는 별과 달, 거기에 새빨간 숯불이 운치를 더하면 마치 벌거벗은 느낌으로 나와 당신을 대한다. 그 느낌은 메이커 옷이 뭔지 모르던 어릴적 친구들과 마냥 즐겁게 뛰놀던 시절의 것과 거의 흡사하다. 그래서 1미터 남짓한 촛불아래서 심장을 꺼내놓고 함께한 동료들과 실컷 옛이야기를 떠들며 그 시간을 만끽했다.    

 사실 이곳도 한전에서 전기를 끌어다 놓았다. 하지만 일부러 불을 꺼놓는다고 한다. 이곳의 자연에 쉼을 주기위해 또 농사꾼의 생활주기를 지키려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 얼마나 자연적인 삶인가? 또한 이곳에서 자라나는 농작물은 그 어떤 비료도 농약도 치지 않는 자연 상태 그대로의 식물이라고 한다. 다만 씨를 뿌리고 울타리를 치고 손으로 잡초를 뽑으며 1년 수확을 기다린다고 한다. 즉 모든 것은 자연에게 맞춰져있었다.    


 요즘 유기농이 대세라고 한다. 보통 유기농이라 생각하면 먹을거리를 생각하는 경우가 참 많은데 신토불이라는 말처럼 우리의 몸과 마음이 유기농적인 삶을 살지 않는데 먹거리만 유기농을 섭취한다고 유기농 인간이 될 수 있을까? 나는 강원도 정선에서 배웠다. 건강한 삶을 위해 유기농의 개념을 먹는 것이 아닌 사는 것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을...  

                         (사진설명 : 정선 안중렬씨 댁에서 본 밤하늘 별이 간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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