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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환과 섬유 린스

by 김선태 Mar 21. 2025

  대전 근교 장태산 휴양림! 친구들이 운영하는 회사 워크숍에 초대받아 유쾌한 불금을 보냈다. 한 녀석이 가져온 블루투스 스피커! 아가씨 주먹보다 작은 크기의 스피커! 우린 모두, 저리 작은 것이 성능은 죽이네! 라며 감탄사를 남발했다. 스피커에서는 안치환 가수 목소리와 비슷한 이름 모를 가수의 노래가 흘러나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나는 잔잔한 노래를 배경으로 '아내에 대한 처세술'을 설파하는 친구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블루투스 스피커 음향을 깊이 감상하던 한 녀석이 갑자기 스피커를 가리키며 말을 뱉는다. 여기서부터는 소리를 내서 읽어야 한다. (약간 혀가 꼬인 듯한 말투로) 어~~! 이제 알았다. 이거 안치(취)환 목소리가 아니네! 하는 게 아닌가. 조금 더 취한 친구가 이 말에, (혀가 더 꼬인 듯한 말투로 블루투스를 가리키며) 얘가 왜 취해야 하는데?라고 말해서 우린 모두 뒤집어졌다.


  우린 그렇게 밤을 보내고 새벽을 맞았다. 나는 다음날 부담될지 뻔히 알면서 신라면 블랙을 맛나게 먹고 잤다. 주변이 시끄러워 일어나니, 젊은 친구들이 부산하게 화장실을 들락날락했다. 난 서둘러 운전해서 집에 돌아왔다. 물론 아내에게 허락을 받은 외박이었지만, 내심 아내에게 미안했던 터라 아내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너무 피곤한 눈꺼풀이 날 괴롭혔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아침을 먹고 잠이 들었다. 점심쯤에 일어나, 아내가 해준 비빔국수를 먹고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또 엎어져 자면 아내에게 완전히 찍힐 게 뻔했다. 때마침 안방에서 아내의 명이 떨어졌는데, 여보! 세탁기! 전원, 헹굼, 물높이 3, 동작 순으로 눌러줘요. 그리고 섬유 린스 한 컵 넣으세요. 거기 보라색인가…. 있지요!라는 것이었다. 전날의 술이 나의 암기력을 떨어트린 것인지, 원래 머리가 나쁜 것인지, 외우는데 무지 어려웠다. 암튼, 다용도실 세탁기로 가서 아내의 명을 성실하고 완벽하게 수행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아내의 두 번째 명이 떨어졌다. 여보! 커튼 여름 걸로 바꿔야 하니깐…. 커튼 내리세요. 제가 빨래 널게요. 그러고 나서 한참 후, 아내가 나를 다급히 부르며, 여보! 섬유 린스 뭘 넣었어?라고, 묻는 게 아닌가. 나는 태연하게, 이거…. 보라색 넣었지!라고 말했다. 아내가 나를 무채색 시선으로 노려보더니, 내가 미쳐!. 어째 순탄하게 끝났다 했지. 불안해서 뭘 못 시키겠네! 하는 게 아닌가. 그랬다. 나는 넣은 것은 섬유 린스가 아니고, 세제였다. 덕분에 아내는 처음부터 빨래를 다시 했다. 어휴…. 그리고 아내는 부가적인 작업을 더 했다. 부족한 신랑을 위해서 세제와 섬유 린스 통에 글씨를 썼다. 나를 위해서….     

  오늘도 한 건의 사고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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