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각자의 기준대로 그렇게 살아갈 뿐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어머니와 함께 신문배달을 하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운영하는 미용실에서 나오는 수입과 기초수급자로 받는 정부 지원금으로는 생활이 어려웠던 탓이다.
신문배달은 새벽 2시부터 시작해 6시가 조금 넘어서야 끝이 났다.
더군다나 학교에 밤10시까지 붙들려 있어야 했기에, 난 고작 세 시간 정도밖에 잠을 잘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학교에서 이러한 사정을 아는 사람은 담임 선생님뿐이었다.
해병대 출신의 담임 선생님은 학생 주임이자 가장 무서운 선생님이셨다.
‘정신봉’이라는 매를 항상 들고 다니셨던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조는 내 모습을 못 본 체 넘어가주시곤 하셨다.
그 당시 내게 가장 두려웠던 건 무엇이었을까.
내게 두려운 건 많은 이들이 예상하는 부족한 잠이나 선생님의 매가 아니었다.
사춘기의 나에게 가장 두려운 건 친구 중 누군가가 신문배달을 하는 사실을 알게되는 것이었다.
‘신문 돌리는 중 저 집에서 친구라도 나오면 어떻게 하지?’
‘담임선생님이 이 사실을 친구들에게 말하면 어떻게 하지?’
와 같은 두려움이 항상 나와 함께 했다.
자연스레 신문배달을 하다 조금씩 날이 밝아 오면 혹여나 누가 날 알아볼까 위축되어 주변을 더욱 살피곤 했다.
30대 후반에 접어선 지금의 기준으로는 신문배달은 절대 창피하거나 위축될 일이 아니다.
하지만 20년 전의 내겐 잠이 부족해서 피곤한 것보다 혹시 있을지 모를 친구들의 놀림이 더 중요한 문제였던 것이다.
난 놀림받기 싫어하는 그냥 평범한 10대였을 뿐이니까.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지금 가지고 있는 내 기준으로 남에게 쉽게 말을 내뱉곤 한다.
경험이 많은 회사 선배는 갓 들어온 신입사원에게 그것도 못하느냐고 호통을 치고, 많은 어른들이 이성문제로 고민하는 학생에게 이성문제는 힘든 일도 아니며 세상에는 더 힘든 일들이 차고 넘친다고 말을 건넨다.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청년에게 누군가는 현실적이지 않다며, 돈이 최고라고 강조하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그 시기가 있고,
그 시기에 맞는 각자의 기준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지금은 일에 익숙해진 회사 선배도 어리숙한 신입사원의 모습일 때가 있었을 게다.
누군가에게는 이성문제가 세상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
돈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결국 모든 기준은 다를 뿐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타인의 심정을 오롯이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자신이 겪었던 상황들이나 결과들을 기준 잡아 예상이나 조언 정도는 해 줄 수 있겠지만, 상대가 원치않는 괜한 어설픈 조언은 되려 독이 되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30대 후반인 내가 17살의 과거의 나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딱히 없다.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생각과 선택을 했을 테니 말이다.
우리는 충분히 최선의 생각과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니 우리 모두의 삶은 응원 받아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