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민주주의" 되새기는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 읽기
"대중이 요구하는 것은 강자의 승리와 약자의 소멸, 또는 무조건 항복이다. 약한 남자를 지배하기보다는 강한 남자에게 복종하려는 여자와 같이 대중은 탄원자보다는 지배자를 사랑하고, 자유를 부여받기보다는 어떤 적대자도 용서하지 않는 교리 쪽에 훨씬 더 만족을 느낀다. 대중은 수시로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쉽사리 버림받았다고 느낀다. 대중은 잘못된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들에 대한 정신적 폭행의 파렴치함도, 자기들의 인간적 자유에 대한 악랄한 억합도 깨닫지 못한다."
- ['나의 투쟁' / 히틀러]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 읽기 (임채광 지음, 세창출판사 · 2022)에서 다시 옮김
이 책에서 '자유'는 사회적 병리 현상의 배후를 추적하는 실마리 역할을 한다. 프롬이 이해한 '자유'란 본래 폭력으로부터의 자유, 폭력적 현실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폭력은 개인의 실존을 억합하고 존재 자체를 통제하며 파괴한다. 그는 인류가 해결해야 하는 가장 무거운 과제 중 하나는 폭력과의 싸움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그 싸움은 어디든 아직도 진행 중이다.
"우리가 깨닫고 있는 것과 무관하게 자기가 자기 자신이 아닌 것처럼 부끄러운 일이 없으며, 자신의 것을 생각하고 느끼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우리 각자에게 자부심과 행복을 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참된 나, 진실된 자아는 주어지는 것이 아닌 구하고 발견하고 느끼면서 만들어 가는 것이다. 프롬은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인격과 가치가 외부와 주변적 요인들로 인해 만들어지고 마치 선물과 같이 주어진 것이라고 강요하고 주입시키지만, 실상은 스스로 각성하고 깨닫고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보았다. 행복이라는 환상 역시 돈에 의해 결정되거나, 인격에 상품적 가치를 접목시키는 자본주의적 수량화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프롬은 이와 같이 자율적 판단과 각성 과정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소리에 따라 현실 속에서 실행으로 옮기는 자를 "혁명적 인간" 또는 "혁명가"라고 불렀다. 그렇지만 이들이 단순히 현실에 대한 "반항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자신의 부름에 귀 기울이는 자, 즉 혁명적 인간이란 현대 산업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에 대하여 견디지 못하는 자들이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사람이며, 인간성과 일체화되고 있는 사람이다. 그 성격 구조는 인간성과 동일시된다. 프롬은 삶의 친화감을 가진 인간, 기존 체제에 비판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시야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을 혁명가로 규정한다. 동시에 그들은 실천의 능력을 보유한 자이다. 즉, 인간에게 있어서 불복종의 능력을 보유하고 실천하는 자이다.
프롬이 말하는 규범적으로 바로 선 사회를 건설한다는 것은 현존하는 삶에 만족하지 않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들의 위대한 거부를 통해 이루어진다. 진실한 인간성이 사회적 규범이자 가치로 인정되는 사회, 그와 같은 사회가 건전한 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