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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qrie Dec 07. 2024

노들강변 봄버들

- 그 날, 여의도를 바라보며

[한강 노들섬 봄버들]



흘러간 유행가로 곧잘 들었던 '노들강변'이라는 곡의 유래와 가사의 의미를 최근에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일제 시대를 살아내던 재기넘치는 문화인의 지혜로운 저항과 예술적 표현의 산물이었다는 것이다.



노들강변 / 신불출 작사, 문호월 작곡 1934년


1. 노들강변 봄버들 휘휘 늘어진 가지에다가

무정세월 한 허리를 칭칭 동여 매어 볼까

에헤요 봄버들도 못 믿을 이로다

푸르른 저기 저 물만 흘러 흘러서 가노라


2. 노들강변 백사장 모래마다 밟은 자죽

만고풍상 비바람에 몇 번이나 지어갔나

에헤요 백사장도 못 믿을 이로다

푸르른 저기 저 물만 흘러 흘러 가노라


3. 노들강변 푸른 물 네가 무슨 망령으로

재자가인 아까운 몸 몇몇이나 데려갔나

에헤요 네가 진정 마음을 돌려서

이 세상 쌓인 한이나 두둥 싣고서 가거라



절마다 가사에 묻어나오는 감상이 남다른 점을 보게 됩니다. 무정세월(無情歲月), 만고풍상(萬古風霜), 재자가인(才子佳人) ... 시대 저항과 민초의 한(恨)이 그대로 담겨있다. 민요의 형식을 빌었지만  예술가가 표현할 수 있는 최대의 저항성과 예술성의 교차점으로써 작품이 되었다. 매사 그렇게 꾸려가도 모자람이 없을 수 있음에 재미와 의미 모두를 전달할 수 있는 지침처럼 느꼈습니다.


어느날의 거대한 개혁과 혁명은 그날 하루의 밭은 외침 하나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많고 많은 날의 들숨과 날숨이 섞이고 쌓여서 거대한 성처럼 되어 그렇게 닥쳐 오는 것입니다. 



'노들강변' 가사도 보기에 따라 심상치 않다. 3절은 "노들강변 푸른 물 네가 무삼 망령으로/ 재자가인(才子佳人) 아까운 몸 몇몇이나 데려갔나"이다. 일제 탄압으로 죽어간 독립투사에 대한 안타까움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노들강변'의 전체를 흐르는 정조는 바로 일제 탄압에 대한 민족적 저항과 한(恨)이었던 것이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8/15/2014081500017.html



※ 참고

 우리는 보통 '노들강변'이라고 하면 버드나무가 휘휘 늘어진 어느 강변을 연상하지 않습니까? '노들강변 봄버들 휘휘 늘어진 가지에~'의 민요가 그러한 인상을 주게 하지요. 아마도 '노들'이 '버들'을 연상시키나 봅니다. 그래서 어느 곳이든 이러한 풍경이 있는 강변이면 '노들강변'으로 생각하기 쉽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노들강변'은 보통명사가 아니라 고유명사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노들강변'은 서울의 '노량진' 나루터를 말합니다. 현재 서울의 흑석동에 있는 국립묘지 근처에 있던 나루터를 말합니다. 왜 그러냐구요? 다음 설명을 보시지요.  

  여러분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왜적과 싸우시던 '울돌목'을 아시겠지요? 이 '울돌목'은 한자어로 '명량(鳴梁)'이라고 하지요. 이 '명량'의 '명'은 '울 명'자이고요. '량'은 원래 '돌 량'입니다. 이 '돌'은 충청도 방언에 '똘, 또랑'으로도 사용하고 있지요.

  '노량'의 '량'도 '돌 량'입니다. 그래서 '露梁(이슬 노, 돌 량)'은 '노돌'이라 고 했지요. 그러던 것이 '노들'로 변화를 했습니다. 그래서 '노량'이 '노들'로 변하고 거기에 '강변'이 덧붙은 것입니다.  

  이 '노들강변'은 옛날에 서울과 남쪽 지방을 잇는 중요한 나루였습니다. 그래 서 이 '노들강변'은 애환이 많이 깃들여 있던 곳입니다.  


* 해설: 홍윤표(연세대 국문학과 교수), 편집: 강창석  http://kang.chungbuk.ac.kr/index.php?mid=eowon&page=14&document_srl=7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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