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7년 10월 3일, 서울 강남구 증권가
"비트코인 5분 만에 30% 폭락! 일본 엔화화폐 '사쿠라코인' 급등 중!"
증권가 전광판이 피의 경고를 뿌렸다. 거리에는 삐걱대는 킥보드 배달원들이 투자자들의 주문을 쫓아 달렸다. 한 남자가 폭주하는 전자광고판 아래 서서 스마트워치를 내리쳤다.
"AI 예측 모델이 오늘이라고 했어."
이순신(51)의 목소리가 차갑게 굳었다. 허공을 가르는 홀로그램 차트 속에서, 그가 30년 전 IMF 당시 아버지의 자살 현장을 떠올리는 데는 0.5초도 걸리지 않았다.
[기획재정부 지하 전쟁 상황실]
"일본 핫머니 유입 속도가 인공지능 예측치를 120% 초과했습니다."
권율 차관(47)이 증강현실 지도에 붉은 경고 표식을 찍어넣었다. 서울 상공에 떠 있는 가상 화폐 거래량 그래프가 핏물처럼 번졌다.
"3시간 후 한국 블록체인 결제망 해킹 시도 감지."
원균 금융위원장(55)이 보고하자, 상황실의 메타버스 아바타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이순신이 양 손가락으로 홀로그램을 잡아 늘렸다. "이건 외환 전쟁이 아니다. 디지털 식민지 전쟁이다."
그의 눈동자에 반도체 공장 3D 설계도가 겹쳐 보였다. "일본이 노리는 건 우리의 양자암호통신 기술. 30년 전 반도체를 빼앗으려던 것과 똑같은 패턴이다."
[그날 밤 11시, 홍대 조각난 유리창 거리]
폭우가 쏟아지는 도심 한복판, 전력이 차단된 가로등 아래서만 간신히 빛나는 네온사인이 있었다.
'인천함: 1997~2027'
이순신이 젖은 양복 소매를 털며 들어간 곳은, 증강현실 바텐더가 칵테일을 만드는 게 아니라 실제 인간의 손이 셰이커를 흔드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위스키 한 잔. 이름 없는 걸로."
그가 내뱉은 말에, 카운터 너머 여자(36)가 입가에 칼날 같은 미소를 새겼다.
"이름 없는 술은 없어요. 특히 당신처럼 이름이 많은 분께선."
셰이커 소리가 폭우를 가르는 중, 여자는 유리잔을 내려놓았다.
"30년 주기 대공황 칵테일, '검은 목요일' 어때요? 1929, 1997, 2027의 공통분모를 넣었죠."
이순신이 숨을 멈췄다. 잔 속에서 위스키 얼음이 1997년 아버지의 장례식 날씨처럼 녹고 있었다.
"당신은—"
"초란이에요. 97년에 망한 중소기업 2세, 2027년에 칵테일바 주인." 그녀가 블랙홀 같은 눈으로 그를 찔러보았다. "그리고 당신이 방금 막 3차 방어선을 뚫린 걸 알고 있죠."
[기재부장관 휴대폰 - 암호화된 메시지]
From: 미확인 발신자
[도쿄증시, 한국계 AI 펀드 대량 매도 시작 5분 전]
이순신이 폰을 내던지려는 순간, 초란이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기다려요. 이건 일본이 당신을 유인하는 함정이에요."
그녀의 손가락이 칵테일 나폴레옹 위스키로 젖은 메모지를 훑었다.
'사쿠라코인 기반 스왑 거래 = 가상자산 유통의 70% 장악'
"30년 전엔 외환을 빼앗겼지만, 이번엔 데이터 주권을 지켜내세요."
초란의 목소리에 1997년 아버지의 마지막 편지가 겹쳐 들렸다.
('경제전쟁에선 이기는 법만 배워라, 패배의 쓴맛은 내가 다 먹을 테니.')
[다음 날 새벽 5시, 청와대 지하 벙커]
"모든 가상자산 거래소에 양자내성암호 적용을 지시하라."
이순신이 AI 비서의 반대 경고를 무시했다. "일본이 해킹한 데이터는 이미 가짜다. 역으로 사쿠라코인 기반 스왑 계약서를 유출시켜라."
권율이 경악했다. "그럼 우리도 타격을—"
"1997년에 배운 걸 잊었소? 방어만 하는 자는 반드시 진다."
전쟁 상황실의 홀로그램 지도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도쿄에서 날아온 공격 신호가 역으로 일본 본토를 삼키는 붉은 물결로 바뀌는 순간, 이순신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폭우 속에서도 한 강남역 노점상이 3D 프린터로 국기를 만드는 게 보였다.
'30년 전엔 무너졌지만, 이번엔—'
그의 스마트워치에 알림이 떴다.
_From: 초란
[도쿄의 그림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다음 목표는 당신의 가족이에요.]_
#1화 클라이막스: 시대를 관통하는 경고
이순신이 초란의 메시지를 지우지 않은 채 차에 올랐다. 비로 번진 창문에 아들 민준(17)의 전학 승인서 홀로그램이 겹쳐 보였다. '도쿄 국제학교'라는 글자가 스치자, 그의 손이 경련처럼 떨렸다.
"아버지의 선택을 반복할 순 없다."
그가 차 문을 열고 폭우 속으로 뛰어내릴 때, 뒤편 골목에서 일본제 스마트카의 레이저 조준기 빛이 그의 등뼈를 향해 깜빡였다.
#1화 엔딩: 되풀이되는 역사, 그러나—
다음 날 아침, 모든 언론이 속보를 날렸다.
[한국, 세계 최초 양자암호 기반 디지털 방어망 '거북선쉴드' 가동]
[일본 사쿠라코인 70% 폭락, 도쿄 증시 마비]
이순신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30년 전 아버지가 뛰어내린 빌딩 옥상에 새로 설치된 인공지능 감시 드론들이 해무를 뚫고 날아다니고 있었다.
'아버지. 이번엔... 공격이 최선의 방어임을 증명하겠습니다.'
그의 명함 뒤에 붙은 칵테일 냅킨 조각이 바람에 날렸다.
'1997→2027: 당신이 마지막 방어선입니다'
초란의 필체가 아스라이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