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죽 빼죽 새어나오는 지금의 목소리
레슨을 시작할 때, 특히 첫 레슨을 시작할 때. 자꾸만 어떤 완성된 이야기를, 뭔가 잘 짜이고 잘 정리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게 된다. 사람들이 주변에서 자꾸 그러하고 또 그러한 것이 당연한 사회에서 그것을 원하는 마음들이 보여서인지.
작년, 알렉산더 테크닉 삼 년 삼 개월의 교사 과정을 마치고 졸업식을 한 다음 날,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했던 줌 토크 영상을 봤다. 주제는 무려 'Freedom to choose'! 3년간 내가 배운 내용을 정리한 이야기였다. 요새 자꾸 말이 안 나오고 긴장을 하느라 자신감이 떨어져 새삼 잊혀지는 기억을 소환하고자 이 밤에 영상을 켰다. 하. 내가 한 내 이야기를 보며 눈물 콧물을 줄줄. 저 이야기를 준비할 때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었다. 마지막 학기를 보내며 예상치 못한 깨달음의 순간들이 마구마구 찾아왔고, 한 번도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나의 진지하고 난해하고 이상한 목소리를 어딘가에 내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어려웠던 것은, 그 이야기가 이제 막 시작된 이야기 었고, 나의 깨달음은 답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무언가. 지금 너무나 살아 움직이고 있어서 반짝반짝 빛나는 빛이 절로 삐죽 빼죽 새어 나오는. 너무 깜깜한 어둠 속이여서 더 눈이 부시는, 모르는 마음으로 따라가고 있는 어떤 흐름에 대한 이야기. 그래서 발표할 내용을 짜며 연습을 하다가도, 하루가 지나면 또 깨달음의 내용이 바뀌고, 다음 날에는 더 또 바뀌고, 그렇게 한 달간 나의 발표 이야기는 매일 같이 바뀌었더랬지. 뿌리째 바뀌고, 잎사귀들이 바뀌고, 꽃의 색깔이 변하고, 기둥이 변하고, 막 그랬지. 그래서 안 그래도 발표불안이 심한 나는,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었다. 왜 하필 졸업식 다음날 이걸 한다고 했나 후회도 했다. 방법은 모르겠고 그저 두고 지켜보았다. 내게 가장 살아있는 이야기가 나에게 이야기하게 두었다. 그간의 깨달음들이 뒤죽박죽 순서를 맞추어 서서히 줄이 맞추어졌다. 그렇지만 그러고도 모르겠었다. 답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지금 나와야 하는 목소리를 내보자, 조금 두렵더라도. 지금 내 심장에서 요동치는 삐죽 빼죽 새어 나오는 알 수 없는 빛, 그것이 이끄는 길을 걷는 지금, 나, 혼란하고 신비롭고 주저앉고 일어나는 이 순간들에 대해서.
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이 이상한 마음과 골치 아픈 몸을 가진 사람의 떨리는 목소리를 사람들이 이해할까? 하는 두려움으로 시작된 발표는 많은 사람들이 나보다 더 많이 울어주며 끝이 났다. 나의 이야기에 이어 예상치도 못한 그들의 이야기가 자꾸자꾸 나왔다. 늘 나와 겉돌던 선생님은 나를 처음으로 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오래 아팠던 사람들이, 저마다의 심장과 저마다의 빛과 어둠에 대한 작은 조각들을 나누어주었다.
요새 들어 어떤 이야기든 할 때마다 자꾸 다시 바들바들 떨리며 망해버리는 이유는, 내가 어둠도 빛도 없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기 때문인가. 내 안에 이해하기 쉬운 정돈된 답 같은 거는 여전히 없으니까. 전문직을 가지고 내가 배운 것을 나누는 데 있어서, 어느 정도 알아듣기 쉽게, 잘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겠지만은... 결국 나는 나처럼 생긴 길을 걸어야 한다. 내가 가진 것은 결국 여전히 잘 모르겠는 이 길 위에서 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이야기 밖에는 없다. 그날 내가 했던 이야기가 나에게 말을 해준다. 어둠 속에 얼마든지 숨어도 두려워해도 좋다고. 날 괴롭히는 나의 긴장은 적이 아니라, 그저 나에게 무엇이 일어나는지 말해주는 동지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엄청난 믿음은 필요 없다고. 밑져야 본전인 아주 작은 점과 같은 가능성의 구멍만 뚫자고. 빛이 서서히 스스로 스며들어 길이 보이기 시작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