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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소담 Apr 04. 2023

썩고, 사라지고, 없어지는 감각

살아있다는 감각을 되찾기 위해 오랜 여정을 걸어왔다. 무겁고, 무디고, 무엇도 잘 느껴지지 않는, 어떤 기력도 욕구도 없이 눈만 껌뻑이며, 이리로 밀면 슥- 저리로 밀면 축- 하고 살아지던 어떤 까만 터널을 오래 지날 때가 있었다. 어떨 때는 고삐가 나를 당기는대로, 경주마처럼 옆을 보지 않고, 넘어지지 않으려 힘을 잔뜩 주고, 어디에도 기댈 수 없이, 큰일이 날 것 처럼 결코 실수하지 않으려, 주어진 트랙을 미친 듯이 달렸던 때도 있었다. 모든 것을 잠시 다 내려놓는 일은 큰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무디고 메마른 땅 위에 서서 메고 있던 모든 무거운 짐을 더 이상 이고 질 힘이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가다간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어깨 위 모든 것을 철푸덕 떨어트리고는 잠시 주저 앉을 수 밖에 없는 때이기도 했던 것 같다.


주저 앉아 만난 나의 땅은 참으로 척박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하나도 모르는 아이처럼 막막했다. 어떤 기대도 할 수 없는 마음으로 3년 간 알렉산더 테크닉 학교를 다녔다. 오래 울었고, 오래 앓았다. 정신이 들면 그저 밥을 해서 먹고, 비바람 속을 1시간씩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고, 집에 돌아오면 누워서 미드를 보고, 기력이 닿으면 해가 질 때 쯤 바다로 나가 해가 지고 달이 바다 위에 노랗게 뜰 때까지 하염없이 앉아 하늘과 구름과 파도와 바다를 바라보았다.


몸과 마음을 만나는 시간이 늘어날 수록, 날카롭게 꼬인 몸은 최악의 사태를 면하긴 했으나,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그야말로 몸 자체가 끝이 보이지 않게 잔뜩 날카롭게 꼬인 거대한 덩어리 같은 느낌이 들었다. 꼬인 몸 때문에 잠들기는 커녕 침대에 누워있기가 힘들어 어둠 속에서 벌떡 일어나 새벽의 침묵을 쳐다보며 앉아 있는 날이 많았다. 감각이 무뎌져 괴로운 마음이 들지도 않고 그저 오래 눈을 꿈뻑였다. 한번씩 오랜 절망이 작은 화산처럼 터졌다. 스승님인 리챠드에게 흘러내리고 굳어버린 절망의 마그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럴 때 마다 리챠드는 아주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으로 나를, 나의 가능성을 완전히 믿었다. 어이가 없어 화가 나다가도 그 말갛고 단순한 믿음에 웃음이 났다. 그것이 나를 완전히 어딘가로 사라지지 않게 붙잡아 주었다. 가끔 완전한 절망이 더 쉬웠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손에 잡히지 않는 희망은 늘 나를 한번씩 미쳐 돌아버리게 했다. 봄이 올 듯 올 것만 같지만 결코 끝나지 않는 겨울이었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어떻게 생긴지 모르겠는 나를,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는 그 막연한 덩어리를 그저 멀뚱히 바라보고, 끝없이 애를 쓰며 벗어나고 싶은 나와 전쟁을 하고, 함께 드러눕고 미드를 보고, 농담 따먹기를 하며, 그러다 그렇게 생긴대로 사랑을 받으며 나에게 오는 매일의 시간을 살았다. 나를 둘러싼 사랑들은 작고 고요하고 가난하고 실없었다. 함께 차를 마시고, 춤을 추고,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추운 겨울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흙을 만지고, 감자를 심고, 말똥을 치우고, 비명을 지르고, 자전거를 타고, 화를 내고, 맛있는 것을 많이 만들어 먹는 사랑이었다. 그 작고 이상한 사랑들은 내게로 들어와 뿌리를 내리며 자라고 더욱 이상한 사랑이 되어 번져나갔다.


 그러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메말랐던 땅에 언제 나기 시작했는지 모를 각종 생명들이 내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비쩍 말랐는데 분명히 생명은 생명인 것 같은 이끼, 마구잡이로 자라났지만 그런대로 특색있는 잡초들, 아니 언제 피었는지 모를 작은 꽃들도 여럿 있고, 저 편에 있는 듯 없는 듯 잘 안 보이지만 분명히 흐르는 작은 개울, 가끔 달게 불어오는 바람, 텃밭 같은 듯하게 가꿔온 곳, 들어가 뭔가 적당히 불편한 포즈로 앉아 멍을 때릴 수 있는 집 같은 곳, 손님을 앉힐 작은 공간과 꺼내올 찻잔, 열심히 주워 모은 알 수 없는 모양의 돌들이 그럴 듯한 낮은 담장이 되어있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나는 학교를 졸업했고, 또 다시 3년이 흘렀다. 사랑은 나를 완전히 죽이지도 완전히 살리지도 않았지만, 내 몸의 구석 구석을 감싸 안아 나를 어딘가로 건져올렸다. 내가 선 땅은 여전히 분명 겨울인데 이상하게 또 봄이 와 있었다. 나는 여전히 반은 알겠고 반은 모르겠는 땅 위에 서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왔고, 어쨌든 지금 나를 살아있게 하는 일을 업으로 삼았다. 무성한 잡초와 초록잎이 울창하게 번져나갈 듯 하다가, 곧 또 모든 것이 시들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기도 했고, 담장은 별안간 위태롭게 높아지거나, 집은 나혼자 들어가기도 어렵게 아주 아주 작아지기도 했다. 화려한 꽃들이 온통 피었다가, 무언가가 썩어가는 듯한 냄새가 나기도 했다. 개울은 물이 넘쳐 모든 것으로 범람하기도 했고, 모든 땅을 흠뻑 적시다가, 어느 날은 마실 물도 없이 땅이 쩍쩍 갈라지기도 했다. 처음 보는 생명체들이 온통 현란한 색깔을 보이기도 했고, 알 수 없는 노랫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그 모든 것들을 보는 듯 보지 않는 듯 다시 바쁘게 돈을 벌고, 공부를 하고, 일을 하며.. 나는 땅을 저 뒤쪽 어딘가에 두고, 보려 하지 않으며 그저 마냥 주문을 외우듯이 기도를 하는 것도 같았다. 생이 살아나기를, 삶이 피어나기를, 어떤 힘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도 같았다.


며칠 전 표현예술교육 수업에서 식물들의 생애를 빠른 속도로 보여주는 영상을 보고, 그 중에 인상 깊었던 한 장면을 몸으로 따라해보는 작업을 했다. 나는 바닥으로 떨어진 나뭇잎이 앙상하고 검게 변해가다가 썩어 사라지는 장면을 선택하고는, 죽어 사라지는 낙엽처럼 바닥에 한참을 누워 있었다. 오래도록 나는 삶을 원하는 마음이 생겨나기를 간절히 바랐다. 자연스러운 생의 에너지라는 것은 마치 초록빛 새싹이 반짝,하고 그 경이를 땅 위로 밀어내는 것 처럼, 분명하고, 현현하고 생생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상상했었다. 썩고 사라지는 것이 되어 한참을 누워있다 보니 나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것 같았다. 희미하고, 어디로 무엇이 되는지 알 수 없는, 내가 아닌 것이 되어 버리는 느낌. 다시 땅이 되어 모든 것의 의미가 흐려지고 다시 모든 것이 되어버리는. 이것이 삶의 일부이구나. 마음 저편에서 늘 분명한 선과 색과 무게의, 초록의 생을 그리던 마음이 다리가 풀려 주저 앉는 것 같았다. 아 썩어 사라지는 것도, 그저 없어지는 것도, 현현하고 생생하고 분명하지 않은 내가 어딘가로 흩어져버리는 것도, 그것도 다 생이었구나. 오래도록 높이 들고 있었던, 어떤 무게가 툭하고 조금 바닥으로 떨어졌다. 죽음과 생 사이의 분명한 선을 긋고 그리 되찾고자 했던 생의 경계나 삶에의 의지는 동시에 흐리게 흩어져 사라지는 것이기도 했다. 내 땅은 온통 생명이지 않아도 되겠구나, 아니, 흐릿한 기도도 썩어가는 냄새도, 모두 다 살아있는 것이구나.


여전히 겨울인지 봄인지 알 수 없는 채로, 카페에 앉아 무엇을 쓰는지 잘 모르겠는 글을 휘적휘적 쓰다가, 일을 할 시간이 되어 노트북을 툭 접고는, 봄이 가득한 바람을 온몸으로 가로질러 집으로 걸어왔다. 갑자기 해가 지는 색깔이, 건물들과 사람들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나이기도 하고 모든 것이기도 했다. 보지 못했던 땅이 보이는 것도, 보고 있는데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것도 같았다. 바람과 봄과 나는 여기와 거기에 모든 곳에 사라지고 또 살아있었다. 잠시 이상하고 신기한 문이 열렸다. 문득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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