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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힘쓰며 터를 만들어 Mar 15. 2019

적당함의 기원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인 과유불급이란 말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 무엇의 정도가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상황에는 넘치는 것보다 약간 모자란 것이 더 나은 경우가 많다. 어둑해진 저녁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잔 생각나는 그런 날이면 나는 과유불급의 참뜻을 몸소 체험하고는 한다.

    한껏 부푼 맘으로 첫 잔을 맞이 할 때에는 그 특유의 향과 감각에 정신이 몰두된다. 코로 잔 언저리에 향을 맡고 짧게 한 모금 그리고 길게 쭈욱 한 모금 마신 후 날숨을 몰아내 쉬면 그날의 스트레스 기화돼 배출된다. 그러면 고단한 일상에 시달린 마음도 비로소야 편안함을 찾는다. 둘째 잔을 마실 때에는 내가 머무는 시공간과 계절 감정 따위가 더 선명히 느껴져 사색을 하거나 글을 쓰기 좋은 상태가 된다. 혼자 마실 경우 둘째 잔의 바닥이 보일랑 말랑 할 시점에서 늘 딜레마를 맞는다.

    한잔을 더 시키자니 돈도 아깝고 내일이 걱정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자리를 뜨자니 아쉽고 밤도 아직 이르다. 이성적으로는 여기서 계산서를 요청하는 게 맞지만 난 인간이기에 세 번이면 두 번 정도 한잔을 더 주문하고 후회를 하고는 한다. 벤담이 말한 실용적 가치가 그래프의 하향곡선을 타는 시점이다.
과하다는 것은 대상이 주체가 편하게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는 말인데 의 이럴 경우 주객전도 현상이 발생한다. 마땅히 내가 다스려야 할 대상이 반대로 나를 다스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가끔 술자리에서 인사불성이 되어 주사를 부리는 사람을 마주하거나 길거리에서 온몸을 고가의 명품으로만 휘감은 사람을 볼 때 불쾌한 감정을 느끼는 감정도 같은 이유이다.

    일상에서 대부분의 것들은 정확히 측량하기가 어렵다. 처해진 상황과 자리에 따라서 어쩔 수 없이 평소보다 덜하게 혹은 과하게 해야 할 때도 있지만 분명한 건 그 정도가 넘치면 행위 자체의 목적인 바로 ‘나’를 훼손시킨다는 사실이다. 때로는 ‘완벽히 채울 수 없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가볍게 자리를 떠나야 한다. 적당함은 나의 끝이 없는 욕심과 아쉬움 사이에 있다. 적당함의 재료는 여백이며 그 본질은’ 비움’에 근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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