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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Jun 15. 2023

686세대, 애프터 은퇴

가장 찬란했던 세대의 은퇴기

92년도에 제가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벌써 30년 전이네요. 당시 대학가에는 학생운동이 남아있긴 했지만, 그 기운이 사그라지기 시작했던 시기였습니다. 90년을 기점으로 80년대 민주화 운동 열풍이 예전 같지 않았고, 학생들의 관심사도 다양해지기 시작했던 때였죠. 


제가 입학할 당시에 80년대 중후반 학번 복학생 선배들이 4학년 또는 대학원에 재학 중이었는데, 나이 차이가 있기도 했었지만, 좀 다른 기운이 느껴졌던 기억이 납니다. 공동체 의식이 강하기도 했고, 의리와 우정, 그리고 선배로서 책임의식이 강했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주관적일 수 있던 이런 느낌이 저만의 생각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인식이 생겼던 것은 '386 세대'라는 명칭이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386세대

인텔에서 만든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명칭이었던 '386 컴퓨터'가 한창 보급되었을 당시, 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 생 세대라는 의미로 '386세대'라는 표현이 90년도 후반부터 만들어져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저처럼 70년대생, 90년대 학번의 20대를 통칭해서 '297세대'라고 따로 표현하지 않듯이, 유독 386세대를 특별히 타이틀을 내건 것은 그 세대가 그만큼 상징적인 존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386세대는 1980년대 우리나라 독재 정부에 맞서 민주화를 쟁취한 학생운동의 중심에 있던 세대이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80년대 초 대학본고사 폐지와 대학졸업 정원제로 인해 대학 정원이 급증하면서, 본격적인 대학교육 대중화 시기에 대학생활을 하기 시작했죠. 베이비 부머의 중심 세대이기도 했던 이들은 1980년도에 61만 대학 정원이 85년도에는 136만 명으로 증가하면서 그 수혜를 톡톡히 받은 세대입니다.


850만 60년대생

이제는 세월이 흘러 586세대라는 표현이 더 일반적일 정도로, 60년대생은 사회의 주류로서 중장년 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이들이 우리나라 기업 임원의 72%와 국회의원의 44%를 차지할 정도이니, 마땅히 우리나라의 각 분야에서 중추 역할을 하고 있는 세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 같은 이들의 바로 뒷세대에게는 대부분 기회가 잘 온다고 느껴질 정도로, 586세대의 존재감이 강합니다. 아~! 꼬인 군번~~


통계청에서 확인한 60년대생 인구수는 약 850만 명입니다. 63년생이 올해 60세가 되니, 60년생부터 63년생은 이미 686세대에 진입한 것이죠. 앞으로 매년 80만 명이 넘는 분들이 60대에 접어들게 됩니다. 바야흐로 60년대생 은퇴자가 우리 사회에 몰려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고령화 사회의 한 단면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새로운 부류의 계층이 등장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입니다.


축복받은 세대?!

현재 65세 이상 우리나라 노인 인구가 930만 명입니다. 대다수의 노인분들은 전쟁을 겪은 30~40년대생이 주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만큼 물질적 궁핍과 전쟁의 공포, 희생과 인내를 평생 안고 사셨던 분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우리 인식에 자리 잡은 노인의 이미지는 보살핌과 케어의 대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이제 60대 반열에 들어가는 86세대는 어떨까요? 우리나라 1세대 대표 포털 및 게임회사 창업자들은 60년대생이 주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아직도 TV 채널에는 30년 넘게 연예계에서 롱~런 하는 분들도 60년대생이 적지 않습니다. 이런 특별한 분들이 아니더라도 60년대생의 인생을 크게 들여다보면 부러울 따름입니다.


우선 이분들이 어렵게 민주화 운동으로 대학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했음에도 90년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했을 당시에는 달러, 유가, 금리의 3저 호황으로 경제가 급성장하던 시기였습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좀 과장해서 이야기하면 직장을 골라서 가던 시기였었죠. 80년대 말 90년대 초에는 분당, 일산 등지에 주택 200만 호를 건설하면서 결혼 적령기에 있던 분들에게는 부동산 주택문제를 해결해주기도 했습니다. 97년 IMF 위기로 어려움을 겪었을 때는 사회초년생으로, 앞 세대 과장님, 부장님의 명퇴를 지켜보며, 향후 중간층 공백으로 고속 승진의 기회를 누리는 혜택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2000년대 초 IT 벤처 창업이 활발했을 당시에도 IT 첫 세대로서 네이버, 넥슨, 엔씨소프트, 다음, 카카오 등 새로운 재계 리더의 기틀을 이들이 잡았습니다. 2010년도에는 고임금과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사회 중추 역할을 했던 60년 대생들이 빠르게 중산층에 진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죠.


또한, 82년도에 국내 프로야구가 첫 출범하면서, 대중문화와 스포츠를 일상에서 즐기기 시작했던 때이기도 했구요. 마이클조던을 동경하며, 나이키를 구매하던 첫 세대이기도 합니다. PC와 모바일에 익숙하고 아이폰에 가장 먼저 접근한 디지털 프런티어 세대이기도 하죠. 아파트 가격이 지금처럼 폭등하기 한참 전에 부동산을 보유할 수 있었고, 높은 임금과 오랜 사회생활을 통해 자신의 취향과 문화생활도 병행할 수 있던 첫 세대이기도 합니다. 와인과 바이크, 골프 등 각종 스포츠나 동호회 활동도 적극적으로 참여한 세대라고 할 수 있죠.


686세대의 노후

곧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되는 우리나라의 노인 정책과 인프라 준비는 이런 관점에서 다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여전히 노인빈곤층이 심각한 사회입니다만, 한편으로는 다양한 부류의 시니어 계층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며, 각각의 대상자들에게 필요한 제도와 산업의 발전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물론 시니어에 대한 기준도 재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건강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노력이 꼭 필요합니다. 오래 사는 것보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하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 못지않게 함께 행복하게 오래 사는 것이 관건입니다. 행복의 핵심은 '좋은 인간관계'에 있다는 하버드대학의 오랜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은퇴와 함께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고, 한때 잘 나갔던 시절의 영광만 추억하곤 합니다. 사회생활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관계가 진짜인지 아닌지 구분도 필요합니다.


매년 80만 명 가까운 분들이 은퇴의 삶에 접어들게 될 것입니다. 특히나 사회의 중심에 있던 분들의 퇴장은 스스로 그 충격이 클 것입니다. 앞으로가 문제입니다. 남은 40년을 어떻게 보낼 것이지가 중요합니다. 그동안 어느 누구보다 축복받은 세대였지만, 이제는 어떻게 그 축복을 잘 활용하고 이어갈지 준비해야 합니다.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저도 그 답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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