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스페인, 서로의 시장을 향해 문을 여는 시대
한국과 스페인은 인구 규모나 1인당 GDP가 놀라울 만큼 비슷합니다. 그러나 양국의 교역 구조는 오랫동안 균형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2011년 유럽연합(EU)과 한국 간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이후 교역이 활발해졌지만, 여전히 스페인 입장에서는 ‘적자’ 상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2024년 기준으로 스페인의 대(對)한국 수출액은 약 18억 유로, 수입액은 37억 유로에 달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교역 규모가 회복세를 보였지만, 팬데믹 이전 수준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 사이 스페인 중소기업들이 한국 시장에 꾸준히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스페인 주한경제상무관 레나타 산체스 데 롤야노(Renata Sánchez de Lollano) 씨는 “한국 시장은 멀고 복잡하며 경쟁이 치열하지만, 신뢰를 쌓으면 매우 충성도 높은 파트너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한국어로, 한국 방식으로’ 접근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말을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있습니다.
2022년에 설립된 비건 식품 스타트업 Gimme Sabor는 불과 2년 만에 서울에 지사를 세우고, 7,500개 이상의 제품을 현지에 수입했습니다.
공동창립자 (Víctor García) 씨는 “처음 몇 달은 오롯이 시장을 이해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현지의 취향에 맞춰 제품을 조정하고, 한국 팀을 구성하며, 복잡한 수입 절차를 하나씩 해결해야 했습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그 결과 Gimme Sabor는 한국 시장을 발판으로 일본 시장에도 진출했습니다.
“한국은 매우 까다로운 시장이지만, 일단 문이 열리면 아시아로 향하는 관문이 됩니다.”
이 기업은 스페인 무역진흥청(ICEX)과 스페인 대사관의 지원을 받았으며, 한국 정부가 주관한 K-Startup Grand Challenge에서 유럽 기업 중 유일하게 수상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이를 통해 현지 인력 채용에 필요한 자금도 확보했습니다.
스페인 기업 Grupo Premo 역시 한국 시장에서 확실한 입지를 다졌습니다.
자동차 부품 전문기업인 프레모는 2014년 현대자동차, 기아, LG 등과의 협업을 위해 한국 지사를 설립했습니다. 현재 한국은 프레모의 전체 매출 중 약 **15%**를 차지하는 핵심 시장입니다.
프레모의 최고재무책임자(CFO) 페르난도 고메스(Fernando Gómez) 씨는 “한국에서는 기술력과 품질 인증이 가장 중요합니다. 신뢰를 얻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한 번 신뢰가 형성되면 관계는 매우 견고해집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한국 기업 문화는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중시하기 때문에, 일단 협력 관계가 자리 잡으면 매우 안정적인 비즈니스가 가능해집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한국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스페인 제품은 돼지고기와 올리브 오일입니다.
2024년 기준으로 스페인산 돼지고기 수출액은 3억 1천만 유로, 올리브 오일은 1억 4천5백만 유로에 달했습니다.
스페인 식품의 청정한 이미지와 높은 품질 덕분에, 한국의 프리미엄 식품 시장에서 꾸준히 점유율을 높이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 기업들도 스페인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 마드리드에서 열린 K-Expo Spain에서는 60개 이상의 한국 브랜드가 참가했습니다.
엔터테인먼트, 뷰티, IT, F&B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이 약 2억 2,600만 유로 규모의 비즈니스 미팅을 성사시켰습니다.
한국 콘텐츠 산업 진흥원(KOCCA)의 윤상음(YoonSang Eum) 수출본부장은 “한국 콘텐츠 산업의 성장에는 창의성뿐 아니라 2000년대부터 이어진 정부의 지속적인 투자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작은 프로젝트가 세계적 현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생태계가 조성되어 있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제는 K-pop과 드라마를 넘어 K-뷰티가 스페인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뷰티 브랜드 Beauty Play의 매니저 보미 류(Bomi Ryu) 씨는 “스페인 소비자들은 천연 성분, 지속가능성, 비건 제품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한국 브랜드들은 이런 트렌드에 매우 빠르게 대응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또한 틱톡, 유튜브,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판매의 핵심 채널로 자리 잡았다고 덧붙였습니다.
“요즘은 작은 브랜드라도 한 달 만에 이름을 알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빠르게 사라지기도 합니다.”
인내심을 가지십시오.
한국 시장은 단기간에 결과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지속적인 방문과 관계 유지, 그리고 신뢰의 축적이 핵심입니다.
디지털 전략이 필수입니다.
온라인 쇼핑과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중요한 시장입니다. 명확한 브랜드 콘셉트와 콘텐츠 전략 없이는 존재감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공공 지원을 활용하십시오.
스페인 무역진흥청(ICEX)과 상무관실은 시장 조사, 미팅 주선, 규제 검증 등 다양한 지원을 제공합니다.
양국의 교역 규모는 아직 크지 않지만, 그 흐름은 점점 더 입체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신뢰와 기술로, 스페인은 감성과 문화로 서로의 시장에 스며들고 있습니다.
한국이 아시아의 관문이라면, 스페인은 유럽의 창입니다.
서로의 문을 두드리는 이 교차의 시대가, 새로운 글로벌 비즈니스의 지도를 그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