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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는외계인 Jul 18. 2020

내게도 반짝반짝 빛나던 순간이 있었다

애 낳고 일 그만뒀잖아, 그 흔한 말


시간이 흘러도 소중한 사람과 함께한
추억은 Facebook에 남아 회원님을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3년 전 올린 게시물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보세요.


페이스북에서 3년 전 오늘의 기록을 알려 온다.

"회원님, 시간이 흘러도 소중한 사람과 함께한 추억은 Facebook에 남아 회원님을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3년 전 올린 게시물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보세요."


포스팅에는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당시에 꿈꾸고 계획하고 있던 일들이 이뤄지고 함께하는 팀원들과 파트너들에게 감사하며 행복해하고 있었다. 불과 몇해 전이었다. 스물아홉 여사장이 여행시장을 바꾼다는 기사 속의 나는 사무실에서 노트북 앞에 앉아 자신 있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이어서 팀원들을 이끌고 필리핀 바다에서 야생 돌고래를 구하고, 히말라야에 올라 거리의 아이들을 구하는 프로젝트 소개도 빼먹지 않았다. 그리고 여행이 세상을 바꾸는 야심 찬 포부와 향후 사업계획으로 인터뷰는 마무리되었다.


그렇다.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것들이 있다. 힘들었지만 결코 힘들지 않았다.  꿈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빛나던 날들이었다. 내 인생의 반짝반짝 빛나던 순간이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어.
길을 잃은 기분이야.


동이 트지 않은 밤, 수유등에 기대어 아이를 품에 앉고 모유수유를 하면서 남편에게 말했다.

“있지. 전에는 내가 어딜 향하고 있는지 알았거든? 지금은 그냥 아무것도 모르겠어. 길을 잃은 기분이야."


스타트업. 매 순간 불안했고, 막막했고, 흔들렸고, 외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잠 설치도록 두근거리는 상상과 설레는 목표가 있어서 행복했다. 뿌연 안갯속을 걷는다 해도, 꿈이 있어서 무서울 게 없었다. 그 시절의 나는 그리고 우리는 모든 게 가능했고, 가능하지 않을 이유 따위는 없었다.


이십 대. 마음이 이끄는 대로 겁 없이 떠나고, 낯선 나라의 남루한 골목길을 정신없이 헤매고, 매력적인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며 또 다른 세상을 탐색했다. 내 안에 새로운 세계를, 넘치도록 가득 담아내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했다. 그저 오롯이 나로 존재하던 시절, 가진 게 별로 없어서 잃을 것도 없었기에 두려울 게 없었다.


내 인생의 반짝반짝 빛나던 순간


생각해본다. 나는 이제 무얼 할까. 무얼 할 수 있을까. 과거 영광들이 모두 사라지면? 내 삶엔 무엇이 남을까. 공부해서 대학 가고, 배낭여행에 해외봉사에 치열한 인턴생활에, 그리고 지독히도 외롭고 고된 창업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끊임없이 나라는 존재를 증명해내야만 하는 일종의 인생의 ‘퀘스트’ 같은 거였다. 그리고 치열하게 달려서 ‘결혼과 출산’이라는 단계에 도달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다음 퀘스트가 보이지 않는다. 설마 이게 끝은 아닐 텐데. 내 다음 퀘스트는 뭘까. 있긴 한 걸까.


애 낳고 일 그만뒀잖아,
그 흔한 말


엄마가, 이모가, 사촌언니가, 친구가 말하던 그 흔한 이야기. "애 낳고 일 그만뒀잖아.” 그 말이 그렇게 가슴을 후벼 파는 말인지,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기 전에는 몰랐다. 아이러니하게도 일을 너무 좋아하고 내 일이 없는 나를 상상하기 어렵지만, 어쩌면 그보다 진짜 나를 괴롭히는 것은 항상 무언가를 하던 내가 멈춰버리는 게 제일 두려운지도 모르겠다. 모두 다음 퀘스트를 받아 들고 다음 또 다음으로 나아가는데, 나만 이 궤도에서 이탈하게 될까 봐. 나도 그런 때가 있었지 하면서 추억만 곱씹을까 봐. 반짝반짝 빛나던 그 시절 그 마음을 영영 잊게 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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