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끝에서 얻은 것
반복되는 하루를 사는 우리는
어쩌면 매일 똑같은 하루를
새로 선물 받는지도 모른다.
영화 <어바웃 타임> 중 이런 대사가 나온다. "반복되는 하루를 사는 우리는 어쩌면 매일 똑같은 하루를 새로 선물 받는지도 모른다."라고. 여행이라는 마법가루를 뿌리면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하루도 유한한 시간을 선물 받고 새롭게 해석된다. 마치 일출과 일몰은 매일 존재하지만, 여행의 끝을 향하고 있는 지금 이곳의 노을과 파도소리와 바람에 의미가 부여되고 이토록 소중한 것처럼 말이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양 어깨도 모자라 한 손에 캐리어와 짐가방 릉 3개씩 들고 다니는 기행을 펼치며 비행기를 오르락내리락 한지가 일 년 여가 흘렀다. 첫 여행 당시 아이는 기저귀를 떼지 못한 14개월 아가였다. 그때는 많이 컸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아가 아가 한 진짜 아가였네 싶어 놀랍다. 어떻게 이 애를 데리고 여행을 시작했을까, 대체 무슨 정신이었을까 싶다. 새삼 시어머니가 그렇게 말렸던 때가 생각나 피식 웃음이 났다.
어느새 아이는 3살이 되었고 (훗날 지금 모습을 보면 아가 아가 했네 싶을 수도 있지만) 엄마와 함께하는 여정 동안 기저귀도 뗐고 젖병도 뗐고 이젠 ‘What’s your name?, Thank you, Your welcome” 정도는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는 제법 어엿한 형아가 되었다.
매일이 ‘온전한 나’와 아이를 낳고 새롭게 부여받은 ‘엄마’라는 두 개의 자아를 두고 힘겹게 싸우며 고단한 하루하루를 보냈었는지도 모르겠다. 실은 여행도 그래서 시작했다. 매일 반복되는 홀로 벌이는 싸움 같은 거였다. 일과 여행과 육아가 반복되는 고된 일상이었지만 실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걸, 회사 일처럼 엑셀 파일로 눈에 띄게 그래프로 정리되지는 못하지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걸.
그리고 나 스스로를, 믿어보기로 했다.
내가 일구는 일상의 힘을 믿기로 했다.
(2020년 2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