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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는외계인 Jun 12. 2020

집 같은 호텔이거나 호텔  같은 집이거나

가사분담의 끝은 어디인가

여행이 집보다 좋은 이유


여행, 아니 출장이다. 출장이 좋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청소’다. 누군가 내 방을 청소해준다는 호사스러운  일상만큼 감사한 게 없다. 집 떠나 객지 생활이 좋으면 얼마나 좋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근데 좋은 건 좋은 거다. 청소. 집이라면 하루에 3번은 돌렸을 청소기, 집에서 밥을 안 먹는다고 쳐도 아이 식판과 물컵은 닦아야 하고 (이상하게 나는 아이 식판 설거지가 세상만사 제일 귀찮다), 물티슈는 환경을 위해 안 쓰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손에서 떨어질 날 없이 수시로 닦아내게 된다.  

여행이 좋은 이유가... 청소?!


아침에 부스스 일어나 침대를 정리하지 못한 채 아이 수발을 들어도, 그 아이가 아침부터 어제 먹고 남겨둔 과자를 들고 엄마를 피해 도망 다니다가 과자 부스러기를 방바닥에 다 쏟아도, 결국 과자를 뺏기고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난 아이 발 밑에 각종 반찬과 밥풀이 요지경으로 덕지덕지 어질러져도 스트레스받지 않아도 된다. 잠깐 방을 비우고 아침 산책을 다녀오면 깨끗한 화이트 침대보가 반듯하게 정돈되어 있고, 방바닥은 반질반질 광이 나고, 아침밥 전쟁은 과거일 뿐 흔적조차 없어질 테니까.  



보이지 않는 손의 존재


한동안 우리 부부의 최대 이슈는 가사분담이었다. 맞벌이고 외벌이고 부부생활의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일 테다. 특히 출장에서 돌아오면 나는 집안일에 더욱 예민해지는 편이었는데, 누군가가 의 도움의 손길에 익숙해질 찰나 서울 집으로 돌아오면 ‘보이지 않는 손’의 부재가 초래하는 비주얼적 폭탄(=폭탄 맞은듯한 집안꼴)과 이로 인한 심리적 불안감(치우면서 치우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나에게 화가 치민다)에 휩싸이곤 했다. 가사분담에 있어서 애초부터 니일 내일 선 긋지 말고, 조금 덜 급한 사람이 배려하자 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 아주 초 초 초 새내기 부부였을 때 뱉은 말이었다. 주워 담고 싶다.) 


호텔에는 있는, 우리 집에는 없는 ‘보이지 않는 손’이 그리웠다.


근데 살다 보니 내가 그 더 급한 사람이고 심지어 손이 빠른 사람이었다. 청소기 돌리기 전에 걸레질 먼저 하고 설거지한 그릇을 뒤죽박죽 쌓아두는 그에게 직장상사처럼 왜 이렇게 일머리가 없냐고… 말이 혀끝까지 나왔다가 겨우 화를 삼킨 적인 한두 번이 아니다. 이제 와서 이건 네가 해, 저건 내가 할 테니라며 일목요연하게 집안일을 분담하기엔 뭔가 지는 기분도 들고, 합리적으로 보리지만 그렇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강한 확신과 이를 동반한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나를 히스테리 한 여자로 만들고 있었다. 이건 그의 삶의 방식, 그간 살아온 삶의 태도 근간을 바꿔야만 하는, 그런 문제다.  


밥을 먹으려면 요리를 해야 하고, 밥을 먹었으면 설거지를 해야 한다.
옷을 벗었으면 세탁기에 돌려야 하고,
건조기에서 나온 빨래는 개서 서랍장에 넣어야 하는 거다.  
이건 기본적인 삶의 질서다.  

시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


슬슬 시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 왜 이 남자를 이런 '기본적인 삶의 질서'를 가르치지 않고 제게 (남의 집 귀한 딸내미에게) 장가를 보내셨나요. 시어머니 시아버지의 지난 수년의 삶의 비추어보면 지금의 이 남자의 행동은 크게 이상하거나 나쁘거나 할 건 없다. 시아버지는 손에 비닐봉지 한번 안 드시고, 귀가 시간이 언제든 꼬박꼬박 집밥을 챙겨 드시며, 싱크대 앞에 서는 그림은 도저히 상상이 안 되는 그런 분이시다. 어머니는 남편이 언제고 때와 상관없이 식사를 요청하면 대령하시고,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안을 겸허히 받아들이시는 또 다른 방식의 평화주의 자시다. 애당초 남편을 탓할 일이 못된다. 늘 그의 어머니는 하나뿐인 아들 뒤치다꺼리를 해주셨을 테고, 배고프면 밥상에 밥이 올라오고 배부르면 기꺼이 쉬게 하셨을 테니까. 남편이 나쁜 게 아니라, 배운 적이 없는 거다(라고 생각하면 마음을 너그럽게 쓰고자 한다.) 



그 많던 알파걸, 슈퍼우먼 선배들도 나와 같았을까?


마치 내 속을 다 들여다보는 것 마냥, 친청엄마는 간간히 전화로 집안일은 청소 앱을 쓰라 하신다. 일하는 여자가 어떻게 어떻게 집안일도 다 하고 애도 신경 쓰냐며, 뭐가 중요한지 똑똑하게 굴라며 잔소리 아닌 잔소리에 빨래는 세탁기가 하고 건조기가 건조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하는데~ 요즘 때가 어느 때인데 뭐가 걱정이냐고 반색하지만, 속을 들킨 기분인 건 어쩔 수 없다. 동시에 딸로서 괜히 미안한 생각도 든다. 알파걸이 되라고, 글로벌 여성 리더가 되라고 그렇게 가르친 엄마였다. 딸이 결혼하고 육아하면서 사업도 줄이고 (물론 사업은 내가 줄인 게 아니다. 내가 부족해서 줄어든 거다. 결혼과 육아는 ‘그저’ 강력한 촉매제였을 뿐이다...) 집에서 살림하는 애엄마가 될까 봐 조바심이 났을 테다. 일하는 여성이 되긴 했는데, 어째 불완전한 기분이 든다. 그 많던 알파걸, 슈퍼우먼도 출근 전 청소기 돌리고, 퇴근 후 청소기 세탁기 돌렸을까. 


알파걸, 슈퍼우먼도 출근 전 청소기 돌리고,
퇴근 후 청소기 세탁기 돌렸을까. 



우습게도 '부부의 세계'란


남편은 지난 8년의 연애 생활에서도, 3년의 결혼생활에서도 내가 본 이들 가운데 가장 성실하고 차분한 성격의 소유자며 누구보다 내 지랄 맞은 뜻을 다 받아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함께한 11년 중, 9년은 두 번의 창업이면, 그 옆에 있던 사람은 말 다했다. 도 닦았다고 보면 된다. 근데 살아보니 흠이 있다면 샤워하고 벗은 옷을 화장실 앞에 두거나 같이 밥을 먹어도 밥그릇을 싱크대에 넣어두고 물 한번 적셔두는, 생활의 요령이 부족하거나 뭐 이런 정도? 젠장, 이게 나를 불같이 화 내게 할 줄이야. 결혼 전엔 몰랐다. 부부의 세계라는 게 이런 거다. 일상을 유지하게 하는 이런 사소함이 지옥과 천국을 왔다 갔다 하게 하는, 사람 되게 우스워지게 만드는 거다. 침착하자. 나는 그의 어머니가 아니다. 그와 함께 서로의 인생을 공유하는 동반자고 동거인이다.  그러니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당신의 엄마가 아니다.
부부는 서로의 인생을 공유하는, 라이프셰어 파트너다. 



남편 대신 세 살배기 아들을 제대로 가르치기로 했다!


변화가 필요하다. 누군가는 반반 육아에 대해서 말했고, 또 어디선가는 각종 회유와 술책에도 바뀌지 않는 가사분담에 대한 성토가 있었다.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으나, 나만의 그리고 그만의 맞춤 설루션이 필요하다 느껴졌다. 그래서 내린 결론 몇 가지. 다시 출장을 간다, 는 대안이 될 수 없을터. 그래서 나는 3살 배기 아들을 좀 더 격렬하게(?) 가르치기로 했다. 무얼? 생활의 기본기를! 음식은 항상 접시에 담아서 먹기. 다 먹은 그릇은 싱크대에 가져다 두기. 벗은 옷은 빨래통에 골인하기. 쉬는 앉아서 하기. 공룡 장난감은 공룡 장난감 통에, 자동차 장난감은 자동차 장난감 통에. 그림 그리고 색연필은 제자리에. 결과는? 


성공적! 아이는 아직 어리지만 (그리고 앞으로 어찌 될지 변수가 많겠지만) 정리정돈을 습관화하고 있다. 어젯밤엔 베란다에서 물감놀이 후 시키지 않아도 물통을 조심조심 화장실로 들로 가서 버리고 붓과 함께 깨끗이 물에 헹구고 잘 닦아 서랍장 3번째 서랍에 잘 가져다 둔다. 음식 있으면 바로 본인 접시부터 찾고 먹은 그릇은 어김없이 싱크대에 가져다 둔다. 누가 아직 아기라고 배려해 플라스틱 빨대를 주더라고 “괜찮아요”라며 빨대 없이 마실 줄 안다. 아이도 기특하지만 동시에 내가 아닌 다른 존재에게 살아가기 위한 기술을 가르친다는 게 새삼 값지고 나 자신이 대견하다.   

최소한 아들이 만나게 될 다음 세대 여성 중 한 명은 적어도
나와 같은 고민에서 조금은 더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문화다! 이게 바로 일타이피!


아! 진짜 중요한 것은, 아들이 하니까 남편이 따라 한다. 원래 부모에게 가장 무서운 것이 자식 눈이라고 하지 않던가. 조금 시시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아이가 하니 아빠도 안 할 수가 없는 거다. 물론, 여전히 내 성에 차지는 않는다. 그래도 일단 여기까지 온 게 어디인가. 우리 집은 세 식구. 셋 중에 2명이 움직이면 나머지 하나는 따라오리라. 그게 문화의 힘(?)이니까. 과반수로 밀어붙이다 보면 진정 빛을 발하는 순간이 오겠지. 최소한 아들이 만나게 될 다음 세대 여성 중 한 명은 적어도 나와 같은 고민에서 조금은 더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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