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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엘리 Jul 31. 2021

치유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애쓰지 말고.


사실 요즘 약간의 멘붕 상태로 지내고 있는데, 예전 같았으면 이 상황에서 빠르게 헤어 나오려고 애썼겠지만 지금은 자연스레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어느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인지는 사실 잘 모른다. 그저 억지로 마음에 채찍질하는 상황도, 쓸데없는 에너지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가만히 있는 것뿐이다. 사람들은 우울하고 힘들 때 친구를 만나서 수다를 떨거나 술을 한 잔 기울이며 풀기도 하고, 재미있는 TV 프로그램을 보며 웃기도 하고, 노래방에 가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현재의 상황을 잘 이겨내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예전부터 난 우울할수록 더 깊은 우울함으로 빠져들어가 깊고 어두운 우물 속에서 눈물, 콧물 다 짜낸 후에야 헤엄쳐 나오곤 했다. 


20대 때까지만 해도 나름 핵인싸의 생활을 했기 때문에 밝고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있어 내가 조금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면 다들 술 한잔하면서 풀자고 했었는데, 그 시간만큼은 즐거웠지만 집에 돌아가는 길은 한없이 쓸쓸하고 허무했다. 오히려 타인들과 함께 즐거워했던 만큼 힘든 마음은 배가 되곤 했다. 그런 일들이 되풀이되며 내게는 다른 사람들과의 시간보다 혼자서 깨치고 나올 수 있는 힘이 생길 때까지 스스로를 쥐어짜는 것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고 자신을 채찍질하거나 원망하는 건 아니었다. 내 속에 쌓여있는 울분과 괴로움, 속상한 마음들을 털어내기 위해 가슴 깊은 곳에 흐르는 눈물부터 쏟아내려고 했다. 비단 쏟아낸 건 눈물뿐이 아니었지만.


혼자 술을 마시며 슬픈 영화를 보고, 우울한 노래를 듣고, 있는 눈물 없는 눈물 다 흘리고 나면 가슴이 뻥 뚫린 듯 개운했다. 그러고는 꿀잠까지 자고 나면 탈탈 털렸던 멘탈도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하게 돌아왔다.


임신 전까지만 해도 난 힘들 때마다 우울함을 극으로 몰아 탈출하는 방법을 써왔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많은 에너지를 육아에 쏟아서인지, 나이를 먹고 힘이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나라는 사람이 달라진 건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우울함을 우울함으로 극복할 자신이 없다. 오히려 극한의 우울함을 겪고 나면 탈진할 정도로 힘이 든다. 


결혼 후의 감정 소비는 남편, 육아로 인해 겪는 게 대부분이었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며 서로를 이해하게 되면서 크게 싸우는 일이 적어지다 보니 최근엔 감정적으로 힘든 일이 많지 않았다. 물론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이라는 것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거나 호들갑 떨지 않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


잔잔하고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지내던 어느 오후, 믿고 의지하던 지인과의 오해로 속이 상한 일이 생겼는데 그동안의 나와는 다르게 두통, 위통을 동반한 상처가 멘탈까지 완전히 붕괴시키며 아무것도 하지 못할 정도로 만들었다. 오랫동안 겪지 않았던 일이어서 그랬는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 속상한 마음이 커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다 귀찮았다. 그래서 최소한의 해야 할 일만 했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문득 속상했던 일이 생각나면 그냥 그런대로 시간을 보냈다. 여기에 쏟아낼 에너지도 없거니와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으로 가득 차 있는 마음을 치료한답시고 애를 쓰다 더 큰 상처를 내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이틀을 보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애를 쓰지 않아도 나는 스스로 회복하고 있었다. 나 자신에게 주었던 치유의 시간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억지로 애쓰는 것보다 훨씬 편하고 가벼운 마음이었다. 물론 전혀 찜찜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80%쯤 상처가 아물었을 때, 아직 남은 20%를 치유하기 위해 지인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마음이 통했는지 지인에게 메시지를 남기고 있는 중에 전화가 왔다. 오해를 풀고 서로에게 더 소중함도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다고 또 이런 일을 겪고 싶은 건 아니다. 소중한 사람과의 오해는 역시 상처니까.


어쨌든 이제는 지치거나 힘들 때 자신을 옭아매기보다는 스스로 치유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끔 이렇게 나도 모르게 받은 상처를 달래기 위한 자가 치유를 하는 건 어떨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애쓰지 않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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