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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옹즈 Mar 07. 2023

27살, 누군가 내 머릿속의 생각을 멈춰주세요!!

강박증

꼬리에 꼬리를 무는 끊임없는 생각들과 잠들지 못했던 27살의 어느 밤이었다.


21살에 나는 왠지 모를 우울감에 8살이나 어린 동생과 함께 처음으로 정신과를 찾아갔지만, 문전박대당했다. 그 정신과의사 선생님은 날 보고 웃으시더니, "네가 우울하다면 우울한 거겠지." 라면서 우리 부모님의 연락처를 물어보셨다. 내가 정신과 문을 나서는 순간 우리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딸이 여기에 왔다는 걸 알리셨다.


어느덧, 27살이 된 나는 공무원 공부 2년 차에 접어들면서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도서관에서 지나가는 소방차나 엠뷸런스의 소리만 들어도 우리 집에 불이라도 난 것은 아닐까? 가족 중 누가 사고가 난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어 초조해지고 집에 가고 싶어졌다.


생각들은 온통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내 머릿속은 단 1분도 조용한 나날이 없었다.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을 때가 유일한 해방의 시간이었다. 원치 않았지만, 생각들은 끊임없이 수면 위로 떠올라 나를 잡아먹었고 나는 이런 수많은 생각들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임의로 먹고 있던 수면유도제도 더 이상 듣질 않았고, 뜨는 해를 보며 새우잠을 자기 일 수였다. 아무리, 몸이 피곤해도 잠이 오질 않았고, 머릿속은 온통 수많은 생각들로 끊임없이 가득 차 제발 그만 떠오르라고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더 이상 불면증으로 견딜 수가 없어져, 공부하던 도서관 근처의 정신과를 찾았다. 강박증이었다. 물론, 우울증도 있었고 그로 인해 불면증이 나타난 것뿐이었다. 공무원 공부는 당연히 제대로 될 리 없었다. 내가 치는 직렬은 1년에 1번뿐인 시험이었고, 이미 2번을 쳤다.


일반적인 사람도 수험공부를 하는 상황에선 불안감을 달고 산다. 그런데 불안이 높은 나의 경우는 그 상황을 더욱 견디기 어려웠다. 공부를 하면서도 그 치솟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끊임없이 책을 사고 필기구를 샀다. 공부를 하기 위해 산 것이 아니었다. 단지 책이나 필기도구를 사는 그 순간에 잠시나마 불안이 누그러졌던 것뿐이다.


집중력은 떨어지고 초조와 불안으로 머리는 터져 버릴 것 같았다. 끊임없이 공부법을 찾아 헤맸다. 내가 택한 공부법이 맞는 것인지, 혹시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점 알 수가 없었고, 불안에 사로 잡혀 방향을 잃어갔다. 3년째, 더 이상은 수험생활을 견디기도 어려웠다. 28살, 이 이상으로 나이가 들면, 취업도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친척 중에 사시 폐인을 눈으로 목격한 적도 있었기에 너무 겁이 났다.


점수가 오르는 느낌도 없었고, 공부가 잘 되고 있는 느낌도 없었고,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앞으로도 수험생활을 잘 헤쳐나갈 자신이 없었다. 더 이상의 공부는 시간낭비라 느껴, 단칼에 수험생활을 정리하고 취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대학생활동안 845점까지 받아뒀던 토익의 유효기간은 날아가버렸고, 무역영어 1급과 국제무역사 자격증도 취득한 지 시간이 오래되어 전공지식은 아득해졌다. 모든 취업준비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공무원 공부를 하면서 졸업학기를 마치던 25살에는 가스밸브가 잠겼는지, 창문이 제대로 잠겼는지 점검을 하느라 집을 빠져나오는데 1시간을 소비했었다. 눈으로 보고 또 봐도 분명히 가스밸브는 잠겨있었고, 창문은 제대로 닫힌 채 잠겨있었지만, 뇌에 확실히 인식이 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초등학교 때도,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공부에 대한 압박으로 볼펜을 엄청 사모은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엔, 그저 볼펜을 사면 그 볼펜을 쓰고 싶어 져서 공부에 동기부여가 되기에 많이 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저 너무 불안하고 스트레스 상태라 견딜 수가 없었기에, 공부와 관련된 물건을 삼으로써 불안을 일시적으로 해소한 것뿐이었다.


강박증이 발병한 건 타고난 성향도 있겠지만, 어린 시절부터 내게 주어진 가혹한 환경 탓도 있었다. 엄격한 아버지와 강압적이고 통제적인 성향의 어머니 밑에서 첫째 딸로 자라, 우리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공부를 해야 했다.


누구든 소싯적 우등생 한 번 해본 적 없었겠냐 마늘, 나도 그랬다. 4살 때부터 유치원, 피아노 학원, 속셈학원을 다녔다. 맞벌이에 주말부부인 어머니의 입장에선 내가 혼자 집에서 놀다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뒤떨어지는 게 불안하셨던 것이다.


사실은 학원에 다니기 싫었다. 놀고 싶었다. 친구집에서 자고 오고 싶었고,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뛰어다니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게 자유는 허락되지 않았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만 부모님께 열심히 들었다. 어느새 나에게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란, 모든 분야에서 현명한 결정을 내리고, 열과 성의를 다해 노력해서 사는, 능력이 있는 완벽한 존재일 것라는 이상만 쌓여갔다. 나에게 사람을 판단할 때의 잣대는 '공부를 잘하느냐'가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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