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추장스러운 자존심은 이제 안녕!
주위의 시선을 신경 쓰면서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전전긍긍하던, 석 달은 전혀 나답지 않았다.
7년 전, 남편과 결혼을 하고 수중의 돈을 탈탈 털어, 전혀 연고가 없는 지역으로 이사를 갔고, 신생브랜드의 가맹점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우리는 근처 원룸에서 살았으며, 보증금 200만원에 벌벌 떨며 전입신고 확정일자를 받았었다.
그리고, 같이 장사를 하러 갔던 지인이, 정말 운이 나쁘게도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에 휘말리는 걸 목격한 후, 우리는 한 껏 몸을 사렸다. 업장을 운영하는 입장이었기에 배달료 천 원에도 고개를 숙였고 자존심이 짓밟혀 눈물을 흘리던 나날들이 있었다. 서비스업이었기에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장사하는 사람을 업신여기는 눈초리도 많았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돈'을 손해보지 않는다면 그 어떠한 것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7년을 살았다. 철저하게 모든 것의 기준은 '돈'이었다. 우리는 장사를 하는 사람이었기에 고고하게 자존심을 세우며 살 수 없었다. 대신, 그에 대한 보상심리로 내가 고객이 되었을 때,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면 화가 나서 참기 어려웠다.
이제 초심을 되찾기로 했다. 어차피 나의 '돈'에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그 어떠한 것도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기싸움은 배부르고 등이 따뜻한 사람들이나 벌일 수 있는 귀여운 사치에 불과했다.
우리가 요식업을 할 때, 밥을 제대로 못 먹는 것은 기본이었다. 업장의 간판 때문에 억울해도 섣불리 항의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 우리 가게에 해코지를 할까 언제나 몸을 사렸었다. 클레임에 시달리는 것 또한, 기본이었다.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는 선에서 일이 끝나는 것이면 언제나 다행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혹시나 배상을 해줘야 할 일이 생길까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주말이나 공휴일에 일하는 것도 당연했고, 하루에 13~14시간씩 서서 일하는 것도 당연했다. 여름철 실내온도가 40도를 육박해서 얼음조끼를 입고 일하기도 했고, 너무 더운 나머지 펑펑 울기도 했었다. 위생을 위해 겨울에 반팔을 입는 것도 기본이었고, 설거지를 하느라 손이 발갛게 얼고 물기가 발에 떨어져 동창을 달고 살기도 했다.
그랬다. 4년제 대학 졸업증은 나의 고달픈 현실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그렇게 고생을 해서 집을 사고 어느 정도 기반을 잡았더니, 이제 자존심이란 놈이 속에서 슬슬 올라와 꿈틀거렸나 보다. 생존에 하등 쓸데없이 거추장스러운 것이었는데, 나는 어느새 자존심에 사로 잡혀 남들 눈치나 보며 살고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어느 누구도, 어떠한 것도 상관없다. 내 '돈'이 손해를 보지 않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