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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Aug 04. 2021

성장할 기회가 찾아온다는 건, 행운.

손카피의 콘텐츠 속 평생교육 2화



지난 주말, 집 근처에서 식사를 하다가 우연히 한 예능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가게 사장님이며 직원분들이며 TV에서 눈을 떼지 못한 것은 <골 때리는 그녀들>이었다. 지난 설 연휴에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방송됐다가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며 새롭게 정규 편성된 케이스였다. 그날 방송에선 월드컵 영웅이었던 황선홍, 이천수 선수가 여자 연예인들로 꾸려진 두 축구팀의 감독을 맡았다. 치열한 접전을 펼치고 있던 그때, 페널티킥 키커로 나선 개그우먼 김민경이 동점 골을 넣었다. 골을 넣자마자 경기 내내 그녀를 응원하던 황선홍 감독과 뜨겁게 포옹하는 모습이 클로즈업됐다. 예능을 그다지 즐겨보지 않는 나도 그 장면엔 오래 시선이 머물렀다.


출처: SBS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내게 ‘운동’이라는 것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헬스, 요가, 스쿼시, 자전거, 필라테스까지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지만, 특별히 재미를 붙인 운동은 없었다. 실력이 얼마나 더 늘었는지보다 근육이 얼마나 늘었는지, 체중이 얼마나 줄었는지가 더 중요했다. 그렇게 별다른 운동을 하지 않고 지내다가 작년에 새롭게 찾은 것이 테니스였다. 이미 주변에 꽤 많은 지인이 테니스를 취미로 즐기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다른 운동에 비해 금방 실력이 늘지 않을 거라고, 두 사람이 골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랠리’ 단계까지 가는 것도 꽤 많은 연습이 필요할 거라고 했다.


첫 레슨을 다녀온 나는 그들의 말을 곧바로 이해했다. 주말 하루 30분씩 배우는 것만으로는 턱도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조금씩 의욕이 불타오르던 그때, 코로나로 인해 레슨이 잠정적으로 중단됐다. 이렇게 또 운동 하나가 맥없이 끝나는 건가 싶었다.


출처: 언스플래시(@jojog1208)


그렇게 두 달 정도가 흘렀을까. 다시 레슨이 가능해지자, 나와 비슷한 시기에 테니스를 등록한 선배가 SNS에 테니스 일지를 올리기 시작했다. 레슨을 받는 날에도, 따로 코트를 빌려 연습하는 날에도 어김없이 영상을 찍어 그 과정과 결과를 짤막하게 기록했다. 오늘은 공을 치는 타이밍이 어땠는지, 또 자세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하나하나 바로 잡아가고 있었다. 차곡차곡 쌓여가는 영상을 보고 있자니 내 눈에도 늘어가는 실력이 보였고, 초보자가 뛰어넘기 가장 어렵다는 랠리의 벽도 어느새 훌쩍 넘어 있었다. 순간 내 속에 꺼져가던 작은 불씨 하나가 다시 피어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주, 나는 다시 테니스 라켓을 손에 들었다.


 출처: JTBC


능숙하진 않지만 제법 공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된 지금, 평일이든 주말이든 여건이 되면 자연스레 테니스 라켓을 챙겨 집을 나선다. 이유는 의외로 사소하다. 지난주보다 실력이 늘었다는 칭찬 한마디가 기분 좋아서. 저번보다 조금 더 수월하게 공을 받아내는 나 자신이 만족스러워서. 저마다 시작점은 달랐더라도 조금씩 늘어가는 서로의 실력을 알아봐 주는 데에서 오는 즐거움은 생각보다 크다. 식당에 있던 모두가 숨죽이고 몰입했던 <골 때리는 그녀들>도, 첫 방송부터 화제가 된 <뭉쳐야 시리즈>도 모두 이런 마음에서 보는 게 아닐까.


한 분야에서 이미 전문가로 인정받은 출연진들이 생전 처음 겪는 종목을 경험하며 조금씩 성장해가는 과정, 그 안에 숨겨진 감동의 순간이 우리 마음속 어딘가에 꺼져가던 불씨를 키워 줄 수 있기에. 나이와 관계없이, 또 직업과 관계없이 나의 새로운 성장기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행운일지도 모르겠다.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의 매거진 <라이프롱런>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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