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립 투 스페인>
* 이 글은 브런치 무비패스 영화초청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영화 <트립 투 스페인>은 두 중년의 수다 여행이다. 간혹 스페인의 풍경들이 나오지만, 내가 경험한 여행은 스페인이라는 공간이라기보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대화였다. 풍경을 담아내는 앵글들이 (익스트림 롱샷 등) 종종 나오지만, 그보다는 인물을 담아내는 바스트 샷이 주를 이룬다. 따라서 이 영화의 관건은 바스트 샷들의 리듬감이었을 텐데, 감독은 이를 적절히 수행하며 샷들을 지루하지 않게 배치해낸다.
그러나 이 영화의 미덕은 딱 거기까지다. 이 영화의 전반은 두 중년의 대화로 이루어진다. 유럽 문화와 할리우드 문화에 낯선 사람들은 이들이 끊임없이 던지는 농담과 성대모사 등에서 재미를 느끼기 어렵다. 이들의 유머는 지극히 그들만의 유머다. 주변 관객들의 졸고 있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보인 것은 당연한 결과다. 개그맨 문세윤의 주현 선생님 성대모사가 우리에게나 웃기지, 영국 사람들에게도 웃기겠는가.
알고 보니 이 영화가 <트립 투 잉글랜드>와 <트립 투 이탈리아>에 이은 세 번째 시리즈였다. 앞선 두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이것들도 <트립 투 스페인> 같은 연출로 이루어진 영화라면 이 영화에서 재미를 느끼기란 더욱 어렵다. 한 번은 이런 연출과 유머가 신선하고 재미있을 순 있지만, 반복된다면 그 신선함에서 오는 재미를 느끼기 어려울 테다. 이 영화는 지극히 이런 류의 연출과 유머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 매력적일 뿐이다. 이는 대중적으로 다가가기 어렵다.
이 영화도 서사를 지닌 영화답게, 위기와 절정 부분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것이 크게 부각되진 않는다. 비슷하지만 어딘가 다르다는 느낌이 드는 두 주인공의 아슬아슬한 장면도 있지만, 큰 긴장감을 주진 않는다. 가장 대비되는 것은 두 인물의 가정이다. 한 명은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고, 다른 한 명은 그렇지 않다. 또 어떤 인물은 일이 잘 풀리고, 다른 인물은 그렇지 않다. 이렇게 대비되는 부분들이 그들 대화 속에서 미묘한 긴장감을 일으키지만, 재미로 이어지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 영화가 세 번째나 만들어졌다는 것은 분명 그 매력이 있다는 이야기일 테다. 하지만 나는 감히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서만큼은 대중적으로 사랑받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한다. 위에 열거한 이유들 때문이다. 나영석표 힐링 예능 <숲속의 작은 집>이 그의 예능답지 않게 물을 먹고 있는데, 잘 알지도 못하는 두 중년의 힐링 여행이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얼만큼 다가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