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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깨비 Jun 05. 2018

선거 유세의 불편함

미래 없는 과거를 유세하다

아파트 단지 정문을 나서는데, 별안간 ‘아모르 파티’의 굉음이 들렸다. 여기저기서 기호 몇 번을 외치는 인파들이 횡단보도에 줄지어 있었고, 그 소리 역시 ‘아모르 파티’의 데시벨에 밀리지 않았다. 나무들 사이에 위태롭게 걸려 있는 현수막들. 그 아래에 또 다른 무리들이 커다란 피켓을 들고 이상한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저쪽에는 파란색 무리가, 이쪽에는 빨간색 무리가, 요쪽에는 노란색 무리가. 형형색색 현란한 색들이 나뒹굴고, 여기저기 도로 한복판을 점령한 차량 위에선 굉음들이 쏟아졌다. 피로가 몰려왔다.    


이곳을 빨리 벗어나겠다는 일념만으로 걸음을 재촉하는데, 세 걸음도 채 못가 서너 번 붙잡혔다. 내 손엔 어느덧 이름과 색만 다른 어떤 명함들이 몇 장 들려 있었다. 소통이니 섬김이니 하는 낯선 익숙함이 거기 있었다. 명함을 돌려 보니, 빼곡이 들어찬 검정 글씨들이 보였다. ‘무엇을 했고, 무엇을 했고, 무엇을 했다.’ ‘무엇을 하겠다.’는 미래는 보이지 않는, 과거의 영광들만이 거기 있었다. 당신이 서울대를 나왔건, 대통령 표창을 받았건, 그게 우리 지역과 무슨 상관입니까? 왜 당신들은 당신의 미래를 홍보치 않고, 과거만 치장하는 겁니까?    


명함들을 꾸겨 버릴까 하다가, 가방 앞주머니에 넣었다. 집에 돌아와 공약집을 봤다. 주섬주섬 공약집 사이에 명함들을 넣고 다 같이 꾸겨 버릴까 하다, 다른 식구들도 봐야하니 참았다. 저들이 자신들의 과거만 알리니, 유권자가 직접 미래를 알고자 했던 행위가 처참히도 배반당하는 순간이었다. ‘~활성화’, ‘~개선’.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공약은 없었다. 허공에 울리다 사라질 메아리들만이 있었다. 인터넷을 뒤지고, 캠프에 전화를 해서 일일이 물어봐야 할 일인가 보다. 저들은 확실히 민주주의가 자신들의 것이 아닌 우리의 것임을 알려주려고 그러나 보다.     


공사장 소음을 방불케 하는 소음공해가 지역 곳곳에 있다. 그 소음 속에는 시장이니 시의원이니 교육감이니 하는 어떤 대단한 직책들이 가득하다. 불법 현수막이 지역 곳곳에 있다. 그 안에는 이 지역의 미래를 담당하겠다고 나선 이들의 이름과 얼굴이 있다. 불법 주정차된 트럭들이 도로 곳곳에 있다. 그 위에선 이 지역의 미래를 담당하겠다고 나선 이들이 자기 한 번 믿어보라고 외친다. 그 뒤로 귀를 막고 길을 돌아서는 우리는, 그 뒤로 위태롭게 차선을 바꾸는 우리는 보이지 않는 걸까. 명백히 불법으로 정한 행위들을 보란 듯이 하는 이들은 과연 우리 지역 행정을 올바르게 수행할 수나 있는 걸까. 어딘가에서 자신의 과거보다 지역의 미래를 외치고, 사소한 불법 행위라도 경계하고 금하며, 지역 주민을 우선하는 그런 인물은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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