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허스토리>
* 이 글은 브런치 무비패스 영화초청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영화 <허스토리>는 영화 속에서 누구보다 주체적이고 핵심이 되는 인물인 문정숙(김희애 역)의 얼굴부터 시작한다. 주목할 점은, 카메라가 인물을 직접 담는 것이 아니라 거울에 비친 문정숙의 얼굴을 잡는 다는 것이다. 이때 문정숙은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자신의 소신을 설파하는데, 이내 카메라는 서서히 거울에서 빠져나와 인물을 직접 잡는다. 이것이 이 영화의 첫 장면이다.
거울 속에 비친 나는 나 자신이면서 내가 아니다. 진짜 나는 거울 앞에 서 있는 나이지, 거울 속에 있는 내가 아니다. 그렇다고 거울 속에 있는 내가, 내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다. 나의 생김새를 지녔고, 내 행동에 따라 움직이니. 결국 거울에 비친 나는 타자로 착각될 여지가 있는 나다. 우리가 사회에 대체하는 자세가 꼭 거울에 비친 나와 같다. 사회에서 발생한 일들은 결국 우리의 일이지만, 우리는 그것이 우리의 것이 아닌 듯 착각한다. 그 대표적인 게 바로 위안부에 관한 것일 테다. 그리고 이것은 이 영화의 소재이다.
영화는 위안부와 정신대 피해자들이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간 우리 정부 도움 없이 일본 정부의 사죄를 요구하며 손해배상을 청구, 일부 승소로 이끌었던 ‘관부재판’ 실화를 다룬 다. ‘관부’는 이들이 오고갔던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의미한다. 영화는 이질적이면서도 친숙한 한국과 일본의 두 도시를 오고가며 이들의 치열한 분투를 그려낸다. 이 분투는 대한민국의 역사이자, 곧 우리의 이야기이다. 마치 거울 속에 나처럼.
영화에도 그려지듯, 역사와 집단에 희생된 이들은 우리가 아닌 타자로 취급되어져 왔다. 이들은 거울에 비친 나였지만, 우린 거울 속에 나는 내가 아니라고 떼를 썼다. 오히려 이들의 상처를 후비고 매도했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상처를 숨기고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외면하는 일이었다. 이중에 용기 있는 자가 거울을 부수고 나왔다. 상처를 드러냈다. 이를 본 몇몇은 그 상처가 이들만의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들도 거울을 부수고 나왔다.
거울을 부수고 나와, 거울 속에 비친 나도 나였음을 깨달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로 이 영화이다. 여행사 사장이자 싱글맘인 문정숙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돈을 들인다. 거울 속에 비친 문정숙을 비추다 서서히 그녀를 직접 담아내는 첫 장면은, 결국 이 영화 전반의 주제를 드러내는 메시지였던 셈이다. 문정숙을 중심으로 결집된 여성들의 이해와 연대는 마침내 사회 전반의 이해와 연대로 뻗어나간다. 거울 속에 비친 나를 외면하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 <허스토리>는 사회에 울림을 주지만, 영화적으로는 아쉬운 지점들이 있다. 특히 실화를 다룬 영화들이 범하는 실수가 이 영화에서도 보인다. 실화를 다룬 영화들은 종종 영화 내에서 사건의 인과를 친절히 설명하지 않는다. 어쩌면 현실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아서 벌어지는 일일 수도 있겠으나, 관객은 설명되지 않은 갑작스런 인물의 변화나 사건에 당황해 할 수 있다. 영화는 문정숙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희생하게 되는 인과를 설명하려고 하지만, 관객에 입장에서는 개운하지 않다. 이문에 밝은 사업가가 어떻게 저리도 자신의 모든 걸 포기하고 저 일에 매달릴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여전하다. 그 외에도 인과가 튀는 부분이 종종 보여 영화에 이입하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울림을 전하는 것은, 민규동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연기자들의 호연 덕분이다. 쉽게 찍을 수 있었던 첫 장면의 테이블 씬을 앞서 말한 것처럼 찍는 섬세함. 연기자들의 진실된 표현 등등.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먼저 거울 속에 비친 무리가 그들이 아닌 우리임을 자각하고 영화에 임했기 때문일 테다. 덕분에 관객들 역시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일임을 깨닫고, 그 깊은 상처를 함께 치유하고자 할 것이다. 마치 문정숙이 거울 속을 튀쳐 나왔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