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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ranger Jun 21. 2020

The Moment of Lift

편견을 넘어서

누구도 멈출 수 없다

멜린다 게이츠 저 / 강혜정 역


내 맘대로 서평

저자를 '빌 게이츠의 아내'로 막대한 부를 가진 운 좋은 사람으로 오해해서 미안해요. 저자는 우주선을 보면서 자라난 수학을 사랑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고, 현재는 막대한 개인적 부와 에너지를 정치인도 국제기구도 손대고 싶지 않아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쏟아 부으며 나아가는 멋진 사람입니다.

덧붙여, 이 책은 요즘 이슈가 되는 일반적인 페미니즘에 관한 도서는 아니었습니다. 주된 내용은 독자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기본적인 생명권을 위협받는 여성에 관한 내용입니다. 한국 책 커버나 추천사가 페미니즘 도서인 것처럼 오해하게 포장 했다고 생각합니다.


추천   

자선사업 혹은 NGO가 '어떻게' 현지의 빈곤, 위생, 폭력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지 알고 싶은 사람

복잡하고 해결될 것 같지 않은 문제에 접근하고 해결하는 방법의 예시를 보고 싶은 사람

'자선사업은 돈이 많으면 그냥 다 성공하는 거 아닐까?'라고 생각해 본 사람

극심히 어려운 처지의 실상을 팩트로 알아두고 싶은 사람

게이츠 재단이 왜 하필 여성을 돕는지, 불공평한 처사는 아닌지 궁금한 사람


비추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 조금은 버거운 사람

밝은 내용의 도서를 찾고 있는 사람

빌 게이츠나 멜린다 게이츠의 부를 축적하는 과정이 책에 나와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


경고. 이제부터 책 내용이 스포일러 될 수 있습니다.


베스트셀러 평대에 이 책이 놓여 있었다. 제목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기 계발 도서라고 느껴졌다. 마이크로소프트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빌 게이츠의 아내라니.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없지만, 남편이 유명한 사람이고 빌 게이츠니까 책을 낸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 '대체 왜 이런 책이 왜 베스트셀러야.' 하면서 후루룩 책 구성을 확인했다. 휙 본 것이지만 내가 예상했던 내용을 많이 빗나가 있었다. 대학교 때 많이 관심을 가졌던 NGO재단이 실제로 어떻게 사업을 하는지 아주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만약 누군가 단순히 선한 마음으로 NGO 혹은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실제로 직원으로서 하게 되는 일의 실상은 이런 것이라고 추천해 줄 수 있을 만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책이었다.


저자는 여학생이 컴퓨터 교육을 받는 것을 신경조차 써 주지 않는 시대에 살았지만, 용기 있는 선생님 덕분에, 일찍 컴퓨터를 배웠다. 그녀는 마이크로소프트 초창기부터 절대다수의 남자 직원들과 일했고, 학창 시절부터 내향적이었던 성격에 회사에서 만난 공격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동료들로 인해 당황하고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리고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갔는지도 차분히 설명해 놓았다. 아무래도 내가 그녀와 같은 직업으로 일하고 있고, 같은 성별이라서 공감이 가는 부분이 꽤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매우 지혜롭게 회사에서의 일들을 헤쳐나갔고,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멜린다는 게이츠 재단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미국에 있는 사무실에 앉아서 통계자료나 현지 직원의 보고서를 받아보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출장으로 문제가 극심한 곳으로 찾아간다. 자선사업을 하는 데에도, 마이크로소프트에서나 통할 법한 일하는 법칙을 적용한다. 문제가 있는 현장으로 직접 가서, 문제를 관찰하고, 원인을 진단하고, 원인을 해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영상으로 나온다면 절대로 보지 않을 것이다.

멜린다가 출장으로 찾아간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마주하는 장면, 그들의 사연은 너무나 처참하다. 나는 평소에 너무 슬프거나 잔혹한 다큐멘터리나 영화는 보지 않는다. 마음이 너무 어렵고, 참담한 그 광경을 내가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읽기 전에 몰랐지만,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참담한 광경과 사연의 나열이다.


저자가 현장에 나가서 그들의 일상을 관찰해 보면, 참혹함을 당하고 있는 최종 루트에는 여성이 있었다. 어린 여성들은 조혼을 강요당함, 조혼으로 인한 최소한의 교육기회 박탈, 가족계획 선택권 없음, 의료진 없이 출산하는 과정에서 최소한의 의료지원을 받지 못해 죽고, 운 좋게 산모가 살고 자녀가 태어나도 자녀가 너무 많아서 제대로 돌볼 수 없음, 따라서 영아 사망률 높음, 많은 자녀양육으로 경제활동이 어려워서 더 가난해짐, 너무 가난해서 자녀 양육을 위해 성매매 산업에서 종사하다가 에이즈에 걸림... 최대한 덜 충격적인 단어들로 한번 더 포장해서 나열한 이 책의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폭력과 성폭행의 피해 사연들은 매 장에 걸쳐서 등장한다. 진심으로 이런 내용인 줄 알았다면, 책을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다...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괴롭다.


골치가 아픈 정도를 지나 정서적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의 연속일 텐데, 그녀와 자선단체 현지 직원들은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자선단체에서 그간 계속 경제적 지원을 해도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했던 이유가 결혼, 출산 등을 선택할 권리가 없는 여성들이 존재함에서 시작되는 것을 인식하고, 문제의 시발점을 차단하기 위해 애쓴다. 사회적 최약체인 소녀를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에게 (여기에 소녀의 가족이 포함된다는 사실이 절망스럽다......) 여성이나 약자라서 보호하려고 하는 일이 아니라, 지긋지긋한 빈곤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포기하지 않고 설득하며, 교육하고 돌본다. 교육할 때는 현지 직원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현지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으로 긴 시간 설득해 나간다.


나는 프로그래밍을 처음 배우고나서, 에러의 root cause를 찾아야 제대로 디버깅 할 수 있다는 개념을 배웠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삶에서 적용하기 어려운 원칙이고, 프로그래밍에서도 당장의 오류를 우회하는 방식으로 에러를 해결해버리는 경우도 있을 만큼 늘 원칙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멜린다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던 자신의 원칙을 자선사업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현상의 해결이 아닌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외에도 자선사업을 하면서 자신이 이전에 MS에서 일했던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신기했다. 엔지니어가 다른 문제를 풀자고 마음먹으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구나 싶었다.


나는 읽는 것만으로도 고통을 느끼는 일을 직업으로 해나가는 저자에게 존경을 표하고 싶다. 그리고 더 존경스러운 부분은 이 일을 하면서 본인의 사적인 고민과 스스로 느낀 한계 점을 솔직하게 공유해서, '이 사람조차도 이런 문제를 겪었고, 이런 감정을 느꼈단 말이야?'라는 생각이 들게 해 준 것이다. 본인의 사생활이고, 약점처럼 느껴져서 공개하고 싶지 않았을 수 있는데 독자를 위해서, 본인이 풀려고 마음먹은 문제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공개했다는 점에서 용기 있고 단단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조그마한 나라에서  부유함을 누리는 행운에도 삶이 휘청이고, 스스로지켜내지 못해 사건,사고로 마감하는 유명인들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리고 현재 지구 상에서 부유하기로 손꼽히는 부부가 단단한 내면을 갖고 있고, 이렇게나 괴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그들의 부와 재능을 사용하고 있다는   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행운이며 기적적인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도 돈이 많으면, 좋은 일하지.'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 앞에  던져 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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