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구멍에 걸린 생선가시 같은 날들

by 보라구름

어린 시절 밥을 먹다가 생선가시를 제대로 발라내고 먹지 못해 작은 가시가 목에 걸려서 괴로워했던 경험이 있다. 두어 번 정도였고 한 번은 운 좋게 금방 내려갔고 다른 한 번은 꽤 고생을 해서 병원에 가야 하나 걱정할 즈음 한참을 애먹이다 결국 내려갔다. 뭔가 치명적으로 불편한 건 아니지만 목에 생선가시가 걸린 채로 있으면 침을 삼킬 때마다 불편하고, 그걸 어쩌지 못해서 또 불편하다. 이렇게 저렇게 해도 가시가 안 빠지면 어쩌나, 병원에 가서 가시를 빼야 하나 불안감이 밀려들면 짜증은 공포로 변해 목을 죄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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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상황이 대략 이러하다. 푸로작은 먹지 않은 지 한참이고 상담도 한 주 미뤄서 다음 상담까지 치면 4주에 1회 받는 게 된다. 무기력증과 우울감은 그렇게 높지 않지만 그렇다고 꽤 안정적인 상태도 아니다. 미세한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걸 알고 있고 그 증상은 조금씩 드러난다. 딱 목에 걸린 가시만큼 불편하게, 그 정도로 티를 내면서. 불편하지만 참고 견디면 조만간 내려갈 생선가시처럼.


언제부터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난 내 감정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고 숨기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다. 터질 듯 요란하게 돌아가는 압력밥솥의 증기 배출기처럼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내며 이제 곧 밥이 다 뒬거라는 신호를 확실하게 주는 타입 하고는 정말 거리가 먼 것이다.


수없이 망설이다가 가까스로(솔직히 말하면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속내를 조금 꺼내서 보였다. 오만가지 걱정(대체로 타인에게 평가받기, 평가당하기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을 뒤로한 채 애써 덤덤한 척하며 툭 감정을 던졌다. 너무도 당연하게도 별다른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내가 말하지 않았으므로 상대방은 내 고충에 대해 잘 몰랐고(혹은 전혀 몰랐고), 이야기를 꺼내니 귀를 기울여 들어줬고, 나를 판단하거나 평가하는 태도로 나를 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들어줬다.


더 어둡고, 깊은 땅굴을 찾아 다시 발길을 돌리려는 나에게 상대는 환한 목소리로 말했다.


땅굴로 들어가지 않아도 괜찮아. 당장 모든 일이 다 해결될 수는 없지만 하나씩 천천히 같이 해결해보자.


신기하게도, 저 말만 들었을 뿐인데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문제 해결을 위한 고민을 같이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도 아닌데도 마치 고민이 천천히 하나씩 해결될 것 같은 기대를 벌써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정신과 의사가 아닌 가까운 사람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것은 위험요소를 많이 갖고 있긴 하지만 그 반대로 좋은 효과를 누릴 수도 있다는 걸 몸소 체험하게 된 셈이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생선가시가 병원에 갈 정도로 심각해 보이지는 않는다. 조금 참고 지내면 내려갈 것처럼 느껴지는 정도. 그런데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당연히 병원에 가서 가시를 빼는 것이 좋은 것처럼, 4주 만에 한 번 가는 상담일지라도 저번처럼 스킵하지 말고 돌아오는 상담은 꼭 가봐야겠다. 그리고 슬슬 상담 종결에 대해 말을 꺼내봐야겠다. 상담을 시작한 뒤로 6개월이 흘렀으니 말이다. 언제까지고 상담을 받아야만 하는 건가, 하는 불안도 조금씩 커지고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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