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어떻게 해도 약에 의지하는 것 이외에는 크게 달라지는 게 없어서 거의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늘 밤을 맞이했다. 그러다 어젯밤에는 이 불면이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즐기기까지는 힘들더라도 우선 받아들여야 하는 게 아닐까, 혹은 그 비슷한 노력이라도 해봐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은 그렇다 치더라도 비염까지 보태져서 두통이 심한 것은 일단 두통약이나 비염 약을 먹어서 가라앉혀봐야겠다고 생각했고 약국에 들러 필요한 약을 챙겨 구입했다. 코에 뿌리는 약도 집에 오래된 것뿐이라 새로 구입. 예상보다 약값이 꽤 나왔지만 그래도 편하게 잘 수만 있다면 이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일하면서도 머리가 띵했기 때문에 자기 전이 아니라 일과 중에 약을 먹었다.
잠 못 이루고 뒤척이는 밤에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가 있을까. 드라마 몰아보기(이를테면 왕좌의 게임 같은), 영화보기, 책 읽기 정도? 글을 쓰거나 기타 좀 더 창작, 생산적인 일을 하기에는 머리가 그렇게 말짱하게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점이 있어서 무리가 있다. 그래서 한동안 꾹 눌러놨던 인터넷 서점의 책 바구니를 오래간만에 좀 채우고 주문 버튼을 눌렀다. 박스에서 책을 꺼내 책꽂이에 넣고 정리하다 보니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책을 사기만 해놓고 마치 다 읽은 것 같은 착각이 또 발동;)
그리고, 잠아 네가 오지 않겠다면 네가 올 때까지 나는 책을 읽어볼게. 이런 마음으로 침대에 앉아 읽다 만 책을 펴 들고 열심히 읽어나갔다. 그런데 내용이 재미없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10~15분 정도 지나자 슬슬 하품이 나왔다. 불면으로 피로가 누적돼서 그런 것도 있다. 현재 입안이 헐고 입천장이 까진 상태.
책장을 덮고 누워서 살짝 스트레칭을 하고 오랜만에 제법 빨리 찾아온 잠을 반기며 잠들었다. 비염약은 낮에 먹은 이후로 밤에는 따로 먹지 않은 상태. 결과적으로 약에 의지하지 않고 며칠 만에 기적적으로 제대로 수면을 취할 수 있었다. 7시간가량 논스톱으로 잠을 잤다. 비록 꿈에서도 일하느라 힘들긴 했지만.
순조롭게 잠이 든 이유는 뭘까. 피로가 누적되어 더는 몸이 버티지 못해 기절하듯 잠이 든 것인지, 아니면 마음을 좀 편하게 가지고 불면을 친구 삼아 지내려 여유를 부려서인지 둘 다인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무엇이건 간에 마음이라도 편한 게 어디인가. 이렇게 불면에 시달리다가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두려워하고 불안에 떠는 것보다는 어차피 안 오는 잠, 책을 읽자!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렇게 하는 편이 훨씬 편하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