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한 치료, 그 후의 이야기

병원을 바꿨고, 1년 반이 지났다

by 보라구름

2020년 3월의 끝자락.

생각보다 훌쩍 시간이 지나갔다.


그간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못했지만 치료를 꾸준히 받아왔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병원을 바꾸었고 운도 따라주고 부단히 노력한 덕에 새로운 선생님과 우여곡절 끝에 라포도 형성하고 길게 상담을 이어갔다. 투약을 중단한지는 3~4개월가량 되어 가고 현재는 월 1회 상담을 지속하고 있다.


업무나 개인적인 일로 스트레스가 극심한 날에는 여전히 불면에 시달리지만,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은 그런대로 잠도 잘 자고 있다. 술을 마시는 횟수, 과도하게 마시는 횟수도 현격하게 줄어들었고 짜증이나 불안도 이전과 비교하자면 양호한 상태를 제법 오래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불안한 심리 상태와, 부정적 사고의 패턴, 충동적인 소비 등은 간헐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약물의 도움 없이 마인드 컨트롤로 통제가 가능한 수준이 되었다는 것이 매우 고무적인 효과인 것 같다.


돌이켜보며 이렇게 써서 그렇지 치료의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상담 치료를 처음 받는 것도 아닌데 진료 예약한 날만 되면 항상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까지 갈등이 계속되었다. 오지 말까? 오늘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약을 1년 정도 먹고 있는데 이러다가 의존하게 되어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건 아닐까? 아니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약을 1년 먹어도 안 나아지고 있는 거면 어떡하지? 대체 언제까지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거지? 등등...


스스로를 어르고 달래며 어떻게든 병원 문을 열고 진료실에 들어가 의자에 앉았고, 어느 순간부터 의사에게 이러한 내면의 갈등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오늘도 오기 싫었고, 이런저런 걱정이 있고.. 한번 말 꺼내기가 어려웠지 그다음부터는 진료 시간에 늦게 와서도 스스로를 타박하거나 의사에게 미안해하는 기색 없이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다. 차가 막혔다, 버스를 잘못 탔다.. 는 핑계를 대는 대신에, 오기 싫다는 마음이 있어서 꾸물대며 준비를 했다가 지각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누가 보면 저런 말을 하는 게 왜 어렵지? 하는 생각이 들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저 정도로 솔직하게(웃음..) 말하는 게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만큼 힘들었지만 있는 그대로 터 놓고 말하기를 함으로써 맛보는 자유는 엄청났다. 상담실을 나오면서 언제나 아, 오늘 너무 이상한 이야기만 했어. 원래 하려던 이야기가 이게 아닌데.. 하고 스스로만 죽어라 괴롭히던 것도 이제는 상담실 안에서 이야기했다.


오늘 사실 이런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못했다. 아직 이야기할 준비가 안된 것 같다. 너무 일상 이야기만 하고 가는 거 같아 마음이 별로 좋지 않다. 이런 이야기를 상담 끝나고 혼자 중얼거리는 게 아니라 상담 시간 내에 마지막 마무리 멘트에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물론, 아직 모든 게 끝난 건 아니다. 아직도(그렇다 아직도..) 하고 싶은 데 미처 꺼내지 못한 이야기가 존재하고 그걸 건드리는 게 여전히 겁이 나서 꾸물거리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걸 제대로 인지하고, 인정하고, 공개할 수 있는 데까지는 도달했다는 점이 전과 달라진 부분이랄까.

한 달에 1회 상담을 하면서 이제 슬슬 종결을 해야 하나 싶다가도 아직도 못다 한 이야기가 있다는 걸 상기하며 언제든 월 2회 상담으로 변경해도 무방하다는 걸 스스로에게 이해시키고 있다. 유연성이 생겼다는 것은 정신적인 숨통이 트이는 일임을 알기에.


약물 치료도 마찬가지다. 괜찮은 것 같아서 3~4개월 중지했지만 만약 불면이 다시 심해지면 수면유도제만 소량 처방받을 수 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약물 치료를 다시 시작한다고 해서 그간 받은 모든 치료가 다 망한 것도 아니고,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니 지레 그렇게 단정 지어선 안된다고 생각의 고삐를 틀어준다. 극단적으로 만약 약물 치료를 지속해야 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그건 혈압약이나 당뇨약 등 지병이 있어 늘 약을 먹어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두려움과 경계심, 부정적인 사고의 고리를 끊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분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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