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구하라

질병무급휴직

by 보라구름

디스크로 한 달 동안 휴직을 한 적이 있었다. 오래전 일이라 무급이었는지 유급이었는지, 유급이었다면 액수는 어느 정도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한 달의 휴직이지만 남은 연차를 끌어모아서 어떻게든 맞춰서 날짜를 넣고 부족한 부분만 휴직으로 한 것 같다는 희미한 기억만 남을 뿐.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 이로 인해 처음 겪어보는 수치심과 모멸감 때문에 우울증과 불안, 공황장애 등이 한꺼번에 몰아닥쳤고 마음만 다친 게 아니라 몸도 곳곳에 문제가 생겨나서 4군데 병원을 다니며 약을 먹다가 선택한 휴직이었다.


별다른 기대를 하지도 않았지만 당연하게도 완전 무급 휴직자가 되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주치의가 써준 진단서를 제출했다. 휴직원에 사인을 하려고 보니 한 문항이 작게 추가되어 있었다. 인사규정에 의거하여 휴직 기간은 근로기간에 산정하지 않는다.(퇴직금 산정 기간에 포함 못 시켜준다는 이야기)


표준취업규칙에는 대부분 무급 휴직도 근로기간에 산정된다던데, 무슨 처벌받아서 휴직하거나 그런 게 아닌 이상은. 그런데 나는 처음 보는 인사규정이 그 새 새로 생긴 것인지 무급 휴직에 플러스로 퇴직금 정산 할 때 그 기간은 제외하겠다고 되어 있었다. 선택의 여지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이미 나는 하루도 버티기 힘든 상태라 사인을 하고 휴직원을 제출했고, 그렇게 소득 제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pexels-darya-sannikova-3953387.jpg 소득제로인데 사진이나마 이런 걸 선택해보고 싶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모아둔 돈이 있었다면 좋겠지만, 모아둔 돈은커녕 매달 갚아나갈 대출상환금액과 각종 보험료, 렌탈료(정수기, 비데, 침대)가 있을 뿐이었다. 돈을 모아두면 참 공교롭게도 그 액수와 거의 딱 맞아떨어지게 갑자기 지출이 생기고, 이런 경험을 여러 차례 겪으면서 트라우마/징크스가 생겨서 저축과는 담을 쌓고 지내왔기 때문에 재정상태가 이러하다. 심지어 그 지출은 대부분 직접적으로 나와 상관이 있는 일이 아닌 경우라서 돈을 모으면 빼앗긴다는 공식처럼 머리에 심어져 버렸다.


예전에 비해서는 그 징크스가 강렬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남아 있고, 아직 극복하는 과정인데 여하간 소득 제로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즉흥적으로 결정한 건 아니지만, 막상 닥쳐보니 아찔하기만 하다. 마이너스 통장으로 버티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적어도, 매일 수도 없이 감정 기복을 겪으며 분노와 울분과 무력감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죽는 생각만 수차례 하는 상황에서 나를 구해야 했기에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예전에는 나도 그랬다. 회사에서 스트레스(상사의 갑질, 과로, 왕따 등등)로 자살하는 사람의 소식을 접하면 안타까워하면서 아니 그 회사를 나오지 회사가 뭐라고 퇴사 대신 죽음을 선택하나. 그런 생각을 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 자리에 놓여보니, 너무나도 이해가 되는 거였다. 죽기 싫으면 퇴사를 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고민 끝에 나는 질병휴직을 선택했다. 퇴사를 선택하기에는 내 판단을 믿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