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낯선
어쩌다 보니 한 해를 여는 첫날이 자아 찾기 브런치북의 마지막 발행일이 되었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니까 타이밍이 잘 맞는 것일지도.
애초에 내가 생각했던 것은 질문책을 열심히 읽고, 그 질문에 답을 하면서 나를 찾아가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게 나에게 특화된 개인 인터뷰가 아니고 보편적인 질문이 담긴 책을 구입해서 답을 쓰는 형식이라 진행을 하다 보니 잘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해봐야 안다지만, ㅎㅎ 빠른 실패)
그래서 선택한 다음 방식은, 여행을 많이 다닐 것. 혼자서 다닐 것. 가끔은 여행지에서 만난 이들과의 교류도 즐길 것. 여행을 하되 목적은 없이 그저 쉬고,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갈 것. 이런 방식을 택했다. 이 두 번째 방식이 오히려 효과적이었다. 멍하니 바다랑 구름만 바라보고, 날아가는 새들을 좇아 시선을 이동하는 일을 언제 이렇게 오래 해봤는지 모르겠다. 아마 처음이었던 것 같다.
바쁜 일상에 숨 가쁘게 살던 어느 날 오후, 한가롭게 공원의 평상에 누워 하늘을 보면서 구름이 흘러가는 걸 본 적이 있었다. 짧은 휴식시간이었지만 그날 오후 그런 생각을 했다. 아, 이렇게 별다른 걱정 없이 한낮 볕 좋은 곳에서 구름이 흘러가는 하늘을 보며 쉴 수 있는 삶이라면 참 좋겠다는. 그 참 좋겠다를 실행에 옮겼던 여행이라 정말 잘 다녀왔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일상에 변화가 생겼다. 복직하기로 한 회사에 복직하지 않고 퇴사하게 된 것. 퇴사를 하며 이직을 할 기회가 있었으나 이직하지 않게 된 것 등. 그러는 사이에 나는 다시 불안에 내던져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몇 달의 쉼과, 글쓰기를 통해 기른 마음의 근육이 제법 단단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서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읽고, 댓글을 달기도 하면서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은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그저 내 글을 쓰기 위해 노력했고, 감사하게도 하트를 눌러주시거나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께 답방을 가는 것 이외에는 하지 못했고 그마저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브런치 작가님들 글을 먼저 읽기도 한다. 먼저 하트도 누르고 서툴고 수줍게 댓글을 남겨두고 오기도 한다. 내가 어떤 글에 마음이 움직이는지 알게 되고, 어떤 때 댓글까지 남기는지를 보면 이 또한 나에 대해 알아가는 소중한 과정이라는 것을 브런치에서 새롭게 깨달았다.
인스타그램의 사진 위주, 짧고 간략한 글, 스토리(24시간 뒤 사라짐) 등의 성격이 점점 나랑 맞지 않아 예전처럼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긴 글을 쓸 수 있는 브런치에 오래 머물게 되었다. 그리고 몇몇 독서모임을 하며 그분들과 교류하면서 책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관심사가 비슷한 분들과의 소통도 즐기게 되었다. 짧은 호흡, 휘발되는 것, 보이는 이미지에서는 멀어지고 긴 호흡, 오래도록 남는 것, 읽히는 텍스트로 돌아왔다.
이직을 할 뻔하면서 8년 만에 간단한 이력서 및 경력기술서를 쓰면서 깨달은 바가 있다. 20여 년 간 나의 업력이 상당히 꼬였다는 사실을. 하나의 직업, 직종을 오래 판 것이 아니고 중간에 갈아타기를 하면서 얻은 부분도 컸지만 잃은 부분도 많았다. 돌아보니 그 둘을 이어주는 무언가가 빠져 있었고 그것이 계속 내적 갈등을 일으켰음을 알 수 있었다.
인터넷 서점 MD, 출판사 편집자, 잡지사 에디터, 이커머스 콘텐츠 기획/운영자, 웹툰 플랫폼 운영/관리자, 프리랜서 편집자, 1인 출판사 대표, 스토리텔링 강사.
돌아보니 참 많은 일을 하면서 때론 자신을 갈아 넣고, 상하관계와 사내 정치질에 질려 진저리를 치기도 했고, 자발적으로 불타올라 열정적으로 일하기도 했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글을 생산하고 기획하는 직무에서 글과는 상관없는 직무로 이동하며 삶도 많은 부분 영향을 받았고 관리자로 일하면서는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관리자로서의 기쁨과 성취도 충분히 누렸다.
일과 나를 분리한다지만, 하루 24시간 중 수면과 식사 및 기타 반드시 보내야 하는 일상 관련 시간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시간을 일하며 보내게 된다.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사람들을 상대하고, 함께 일하는 가는 분명 중요한 선택의 대상이다. 직업을 선택하는 기준과 만족도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을 너무 안일하게 하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예 그런 걸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구멍 난 통장을 메꾸느라 여기에서 저기로 점프하기에 바빴던 것 같기도 했다. 20년이 지나서 이걸 깨닫다니! >.<
물론 각각의 선택에는 고민도 있었고 선택의 이유도 있었다. 무지성으로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업력을 세울 수 있는 커리어를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못했)고, 물리적인 시간에 비해 한 줄로 꿰어지는 뭔가를 찾기가 어려워 아쉽게 느껴졌다. 이후로 어떤 길을 갈지는 아직 생각 중이고 정해진 것은 없지만 가능하면 흩어지는 시간이 아니라 모여서 단단해지는 시간이 될 수 있는 길을 생각하고 있다.
완전히 새로운 길에 도전할 수도 있고, 이전부터 꿈꿔왔던 일에 올인하기 위해 새로운 계획을 짜서 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할 수도 있다. 자아를 찾는다는 게 막막하기만 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상황도 변화하게 되니 오히려 그게 도움이 되었다.
자아를 찾는다는 건 여전히 낯선 내가 새록새록 나타나도 당황하지 않고 반갑게 인사할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이후의 글은 브런치 북에 연재 형식으로 다시 글을 올릴지, 매거진으로 올린 후 브런치 북으로 다시 묶을지는 고민 중인데 아마 후자가 될 것 같다. 나와의 약속이긴 하지만 매주 1회 연재가 너무 힘들었다.(2, 3, 4일 연재하시고 일정 지키시는 작가님들 정말 대단!!)
*그동안 부족하지만 브런치북 연재 글 함께 읽어주시고 시간 내주셔서 하트랑 댓글도 달아주신 독자님들 정말 감사했습니다!! 새로운 글로 또 찾아뵙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