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에 의해
다음 발을 내딛던 날과의 이별

by 보라구름

1주일에 한번 갔던 병원 진료는 2주에 한 번에서 3주에 한 번으로, 이제는 4주에 한 번으로 변경되었다. 더는 불면에 시달리며 수면유도제를 먹어야만 잠들지도 않는다. 우울증 약도 먹지 않은지 꽤 되었다. 불안을 덜어주는 약을 필요할 때마다 먹기는 한다. 스트레스의 주된 원인이었던 회사생활이 삶에서 사라지자 자연스럽게 증상이 줄어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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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진료시간은 15분 내외인데 나는 20분을 자주 넘기고 가끔은 30분 가까이 이야기를 하다가 나와서 뒤에 기다리던 환자분에게 미안해지곤 한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걸 그만큼 좋아하거나 혹은 잘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지난주 병원 진료 때 상담 시간에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한참 주의 깊게 들으시더니, 강연해도 잘하실 것 같아요, 라며 환하게 웃으셨다. 하하하하;; 책도 몇 권 내셨고, 방송출연이나 강연도 많이 하고 계시는 주치의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기에 정말 큰 응원을 받은 것처럼 느껴져서 뭉클했다.


상담 치료 시간에 하는 이야기는 가벼운 근황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간단한 브리핑(일신상 변동이 있거나 특별한 이슈가 있을 경우 요약하여 전달)을 하면서 그 사이에 그런 일들을 겪으며 내가 느낀 점들을 정리해서 이야기한다. 간략하게나마 자아 성찰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고, 자기 객관화를 최대한 해보려 노력해서 이야기하곤 한다.


휴직 중이던 회사에 돌아가지 않게 된 것, 그 사이에 타이밍 좋게 다른 곳에서 이직 제안이 온 것, 하지만 꽤 오래 기다렸건만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이직이 성사되지 않았던 것. 그 과정에서 7년 만에 이력서와 경력기술서를 정리하고 난 뒤 느낀 감정을 이야기했다. 25년 정도의 사회생활 경력 중 기간이 짧거나 애매했던 것들을 쳐내도 20년 정도인데 그 시작과 끝, 다시 새로운 곳으로 이어지던 일련의 과정을 큰 축으로 정리하여 보게 되었다.


딱 두어 번을 제외하고는 그 과정에는 동일한 패턴이 보였다. 불에 타 죽느니 물에 뛰어들어 일단 살아보겠다는 마음이거나 이대로 굶어 죽느니 무슨 짓이든 해서 허기를 면하겠다는 각오 같은 것이 본질적으로 깔려 있었다. 한 발을 떼어 바로 다음 발을 어딘가에 딛어야 하는 처지라 어디에 딛을지 여유 있게 고민할 수 없었던 셈이다. 경제적으로 서바이벌을 해야만 하는 상황인데 그게 나 자신만을 위한 서바이벌이 아닌 상황이 더 많아서였다는 것도 뒤늦게 깨달았다. 만약 내가 그런 상황이 아니었대도 이런 선택을 했고 이런 커리어가 쌓였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소득이 두 배가 된다고 해서 행복도 두 배가 되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스스로 욕망하는 것이라 여겼던 것이 진짜 그런 게 맞는 건지 의심조차 하지 않고 지내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만하면 잘 사는 것이라는 기준의 대부분이 외적인 기준(남들에게 보이는 것)이라는 것도 소스라치게 놀랄 일이었다.


뻔한 잣대와 보여주기식 행복의 기준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했고(전혀 아니면서), 스스로의 행복에 대한 기준은 내가 정해서 생겼다고 믿었다.(이 역시 전혀 아니었음) 직장인으로서의 커리어가 아니라 직업인으로서의 커리어가 사라져 버린 것도 최근에야 돌아보았다. 거기서 나의 불행의 씨앗이 싹을 틔웠다는 것도.


앞으로의 계획은 현재로서는 무계획이다. 계획형인 나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계획임에 틀림없고, 그걸 수용하고도 밤에 잠을 잘 자는 내가 된 것이 신기하다. 앞서 보냈던 휴직기간과 이제 더해지는 휴식의 기간까지 하면 아마 사회에 발을 들였던 시간 이후 최대로 갖게 되는 자유의 시간일 것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12월이 순삭 되어서 소스라치게 놀랐고, 하루하루 흘러가는 게 아까울 정도로 소중한 자유의 시간을 갖고 있는 중이다.


무언가 하려는 강박에서 스스로를 쉬게 해주는 일은 여전히 어색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무계획의 시기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이 시기를 건너고 있는 내가 기특하다. 살아온 대로 살아가지 않기 위해서 관성에 의해 다음 발을 내딛던 날과 이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휴식이 필요하다.


50살이 다가오니 덜컥 두려운 마음도 생긴다. 30살, 40살을 앞뒀던 때랑 다른 점은 살 날이 줄어든다는 느낌이 보다 더 확실하게 와닿는다는 것. 아, 내가 이렇게 생에 대한 의지가 강하고, 멋지게 늙고 싶은 로망이 있는 사람이었구나 싶어 새삼 놀랐다. 건강하게, 과거의 나보다 조금은 더 나은 나로 살고 싶은 그런 나라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늘 그래왔는데 보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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