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악, 위 쪽의 사랑니를 발치한 건 꽤 오래전 일이다. 치과포비아인 나에게 사랑니 발치는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했고, 우여곡절 끝에 상악 사랑니 두 개를 발치했다. 한 번에 한 건 아니고 한참의 시간차를 두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하악의 사랑니는 짝을 잃고 말았다. 발치를 했던 의사가 말했다. 이렇게 위아래가 맞물리지 않게 되면 저작에 문제가 생겨 결국 하악의 사랑니도 썩게 될 테니 당장은 아니지만 그러기 전에 발치를 하는 게 좋을 거라고 했다.
사랑니를 뺄 때의 그 느낌, 치아가 바스러지는 소리, 드릴이 돌아가는 소리, 단단한 뿌리를 잡아 뽑히는 그 순간이 끔찍한 공포였다. 상악보다 발치가 훨씬 더 힘들다는 하악의 사랑니 발치는 상상만으로도 너무 두려웠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러 의사의 말대로 짝을 잃은 사랑니는 썩어갔고, 이따금 통증을 유발하며 자신의 존재를 잊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그때만 잠시 생각하다 잊어버렸다.
몇 달 전 다른 치아가 아파 용기를 내어 치과를 찾아갔을 때, 치료해야 할 치아의 치료와 스케일링을 마친 뒤 역시나 그 치과에서도 하악의 사랑니 발치가 필요하다고 했고 치료 일정에 넣고 예약을 잡았다. 그럼에도 나는 예약을 펑크 내고 결국 치과에 가지 않았다. 물론, 그때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가 있었다. 그렇게 나는 현실도피(피해봤자 썩은 사랑니는 그대로 내 입 안에서 더 썩어갈뿐)라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말았다.
시간은 차곡차곡 쌓였고 그 사이에 짝을 잃은 사랑니는 칫솔질과 치실질에도 불구하고 차곡차곡 음식물을 쌓아갔다. 음식을 먹거나, 찬 물을 마시지 않아도 욱신거리며 아플 정도가 될 때까지 미련하게 굴다가 결국 오늘 치과를 찾아갔다. 이런 날이 오기 전에, 이미 한참 전에 몇 번이나 사랑니를 뺄 기회가 있었지만 외면해 버린 결과라서 어찌할 도리도 없었다. 심지어, 진료 전까지 나는 아픈 곳이 아래쪽이 아니라 위쪽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픈 쪽이 어딘지도 모르다니. 의사는 진료를 시작하자마자 여기 하악 사랑니 아닌가요 하고 이에 바람을 쐬어주었고, 나는 비명을 삼키며 가까스로 대답했다. 으으.. 네에, 그.. 그러네요.
사랑니랑 자아가 대체 무슨 상관인가 싶었는데, 자아 찾기 글감이 마땅찮다고 파트너에게 털어놓았더니 사랑니 이야기를 써. 그거면 딱 되겠네. 사랑니는 네 몸의 일부인데 그건 자아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순간 아,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니가 자아라는 게 손가락이나 발가락, 눈코입이 자아라는 그런 의미는 아니라는 걸 이해했다. 내 안의 자아임에는 확실하지만 이제는 그만 내 안에서 기필코 박살을 내고, 뿌리째 뽑아서라도 내 안에서 들어내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두렵고, 외면하고 싶어도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이 고통스러울 뿐이라는 것을.
나의 취약함은 어떻게든 감추고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생존을 위해 당연한 것이라 여기며 취약함을 극복하려 하기보다는 방치하거나 더 나빠지게 만들어 결국 취약함이 다른 좋은 부분들까지 갉아먹게 만들어버리곤 하는 그 과정이 어쩐지 짝을 잃고 썩을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방치해 결국 뿌리까지 썩어버려 엄청난 고통을 유발하는 사랑니랑 다를 게 무어냐는 생각이 들었다.
아픈 곳이 어딘지 제대로 알지 못할뿐더러 아파도 미련하게 참기만 했다가 참을 수 없을 지경이 되어서야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진작에 치료했어야 할 치료를 최후에 하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이게 사랑니, 치과 치료만 국한된 게 아님을 안다. 몸의 다른 아픔은 물론 마음의 아픔도 마찬가지로 다뤘다는 것을 잘 안다. 그렇게 쌓아둔 상처가 곪고 썩어서 자아를 갉아먹고 무너뜨리는 걸 알면서도 못 본 체 외면해 왔다는 것도.
사랑니를 뽑는다고 해서 평생 치아에 문제가 생길일이 없을 리는 없다. 당연히 남은 다른 치아도 소중하게 잘 관리하지 않으면 제 수명보다 짧게 기능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매일 규칙적으로 제대로 된 칫솔질, 치실 사용으로 관리하듯 자아도 그렇게 공들여 관리하지 않으면 무너지고, 썩고, 흔들리고, 바스러질 것이다.
사랑니처럼 아예 뽑아서 없애야만 하는 자아건, 치료가 필요한 자아 건 간에 더 이상 방치하지 말고 소중하게 대할 수 있는 용기를 내기 위해 이제 전 단계인 현재의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생각에 조금은 뿌듯하다. 그걸 알려주는 사랑니가 아직도 있어줘서 고맙다. 이번에 발치하게 되면 하나 남은 사랑니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더 아파지기 전에 뽑을 수 있기를. 아직도 사랑, 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