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 발버둥

몸부림치는 자아

by 보라구름

최근 들어 발이 땅에 붙어 있지 않은 채로 사는 것 같은 기분이다. 기분이 좋아서 붕 뜬 건가? 그러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아니다. 땅 어디쯤에 발을 대야 할지 몰라서 어정쩡하게 댄 건지 안 댄 건지 모를 정도로 아주 조금 뜬 상태인데 그 조그만 틈이 생겼다는 것만으로 불안해서 미칠 것 같다. 이 쪽에 발을 대려니 물웅덩이가 있고, 그걸 피해 저쪽에 발을 대려니 진흙이 가득이다. 꽃길 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그냥 마른땅 어디라도 닿고 싶은 마음인데 현재로서는 불가능해 보인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있을 것 같지는 않으니 다시 발이 땅에 닿을 때까지 기다려도 될 것 같긴 한데 내가 자신 없어하고 잘 못하는 일 리스트의 상단에 기다림이 있으니 참 고역이다. 될 대로 되라고 아무 데나 발을 내려놓을 용기도 없고, 어차피 조금 뜬 채로 있는 거 이대로 허공에 발길질 좀 하면 어떠랴 하고 이 상황을 즐길 배짱도 없으니 어깨가 축 처져서 한숨을 내쉰다.


힘들어하는 나를 보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몸부림과 짜증으로 힘듦을 표현하는 스스로를 보고 있자니 울며불며 드러눕는 아이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부모라면 아이에게 그런 방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도 있지만 다른 방식도 있고, 그 방식이 더 낫지 않겠냐고 달라며 가르쳐야 옳을 것이다. 다만 나는 오랜만에 내가 그렇게 원색적으로 발버둥에 가깝게 힘겨움을 드러내는 게 오히려 다행이라 여겼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 준 것 없고 오로지 내면에서만 일어난 일이라 나만 알면 그만. 몸부림치는 자아라니, 스스로도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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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 붕 떠 있다 보니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읽을 수가 없고, 글은 말할 것도 없이 써지지 않았다. 비공개로 쓰는 일기 이외에는. 어떤 순간에는 내가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단 하나의 생각도 떠오르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땐 공포에 압도되다가 정신을 잃을 것 같은 충격에 휩싸인다. 글을 한 줄도 쓸 수 없어지는 상태를 생각만 해도 너무 끔찍하다.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들을 쫓아내거나 내버려 두거나 거두어들이는데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느라 지쳐있다. 그래도 쉬는 동안에 한 가지 이전과는 달라진 점이 있으니 이 모든 것의 상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전과는 다르게 시도하고 있다는 것.


흔들리고 있는 건지, 부러지기 직전인 건지, 다 내려놔버리고 싶은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마음일 때도 늘 일상을 붙잡고 놓지 않았었다. 해야 할 일로 스케줄을 가득 채워두었고, 조금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으며 바쁜 게 최선의 방어라고 생각했다. 일상에 매몰되더라도 그 방법을 택했다. 생각 없이 살다가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대도 그러는 쪽을 택했고,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을 두려워했다. 한번 들여다보면 다시는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았다. 그 두 개를 이어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요즘의 일상은 거의 대부분 내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기에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과 일상을 잡고 살아가는 일 사이의 간극은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생각이 너무 많아질 때 잠시 생각을 끌 수 있는 스위치도 생겼다. 참 신기한 일이다. 일상에 매몰되어 있었다면 절대 찾지 못했을 스위치다. 생각을 끄는 스위치를 누르고 생각 밖으로 나와서 숨을 쉰다. 그리고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이 글을 쓴다.


불편한 일, 하기 싫은 일, 내키지 않는 일은 가능한 하지 않으며 살 수 있는 소중한 시기를 살고 있다. 그 반대가 하고 싶은 일, 편한 일을 가능한 다 할 수 있다는 건 아니라 해도 충분히 감사한 일이다. 발을 땅에 붙이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언제까지 이렇게 보낼 수 있을지 모를 일이지만 불안이 나를 놔주지 않더라도 이 자유만은 놓고 싶지 않다. 상태값의 기간을 알 수 없음이 불안을 야기하지만, 어차피 인생의 대부분이 그런 시간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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