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언젠가는 온전히 생일이기를
12월 하순에 태어나 크리스마스와 연말 분위기에 묻어가는 시기에 생일이 껴 있어서 어릴 때는 왠지 손해 보는 기분이 들곤 했다. 생일선물과 크리스마스 선물을 따로 받고 싶었지만 대부분 합쳐지곤 했기 때문이다. 방학을 하고 나서 생일인 경우는 더 그랬다. 겨울방학은 해마다 시작하는 날이 달라서 수업 마치는 날이 생일인 경우도, 이미 방학을 하고 난 뒤인 경우도 있었다. 더 많은 친구들과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은 초중고 시절 생일의 추억이다.
스무 살이 되고, 대학생이 된 이후부터는 생일이 다른 의미로 특별해졌다. 그즈음 인생의 굴곡을 나타내는 그래프가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기에 이십 대 중반까지의 내 생일은 생존 축하 기념일 같은 느낌이 되어 있었다. 집은 더 이상 나에게 안전한 곳이 아닌 목숨의 위협이 언제 닥칠지 모르는 곳이 되어 있었다. 너무 지쳐서 이제 그만 쉬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당시의 나에게 쉰다는 건 사치였으므로 정말 쉬고 싶다면 여기서 모든 걸 끝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도망치기 위해 절박하게 선택한 도피처가 더 끔찍한 지옥이었고, 간신히 지옥에서 나왔을 때는 삶에 대한 환멸이 가득했다.
가족 중 한 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난 뒤에는 더욱 그러했다. 아, 올해도 나는 안 죽고 살아 있구나. 어쨌든 살아냈구나 하는 그런 마음이기도 했고, 비장하기도 했다. 딱 그 시절까지만 비장했으면 좋으련만, 삶은 그 후로도 나를 이리저리 돌리고 올렸다가 내리꽂기를 반복했다. 그중 일부는 내가 스스로를 몰아세운 결과이기도 했다.
그 결과 여전히 생존기념일의 의미가 더 큰 채로 40대를 보내고 있다. 남은 가족 한 명은 병으로 떠나보내고, 마지막 남은 가족마저 연을 끊어 이제는 정말 문자 그대로 혼자가 되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불안과 우울이라는 끝도 보이지 않는 터널 같은 곳에서 기어서든, 뒹굴어서든 수없이 밖으로 끝끝내 나왔다. 과연 앞으로 몇 번의 생일을 더 보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미래의 나에게 미리 생존을 축하한다고 말해보고 싶다. 다음 생일까지의 무탈한 생존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 같은 길을 넘어지고 깨지면서도 언제나 일어났던 나에게, 그럼에도 이를 악물고 20여 년 동안 사회생활을 쉼 없이 해왔던 나에게, 그동안 너무 애썼다고. 정말 고맙다고 처음으로 말하고 싶다.
진심으로 스스로를 칭찬하거나 응원해 본 적 없던, 늘 모질게 몰아붙이기만 했던 시간들을 사과한다. 사력을 다해 깊고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와 마침내 한 해의 생일을 또 맞이하는 것인지 누구보다 나 자신이 잘 알고 있으니 애써 괜찮은 척 소리 높여 웃지 않아도 된다고 하고 싶다.
이번 글을 쓰면서, 아니나 다를까 많이 울고 말았다. 대신 울면 안 된다는 마음의 소리는 한껏 밀어서 치워버렸다. 괜찮다고, 울어도 괜찮다고 다독이면서 울고 싶을 만큼 울었다. 생일까지는 아직 많이 남았지만 이번 12월은 중요한 선택을 앞에 두고 있어서인지 12월이 되자마자 감정이 북받친다.
미래의 어느 생일에는 더 이상 생존기념일로서의 생일이 아니라 생일 그 자체로 보낼 수 있는 날이 꼭 오기를 바라는 마음, 비장함 대신 기쁨이 더 크기를 바란다. 성인이 된 후 한 번도 그냥 기뻤던 적 없던 생일이 평범한 생일날이 되기를! 어제보다 아주 조금 더 강해진 자아가 나의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