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해집시다

달리 방법이 없으니

by 보라구름

미리 잡아놓은 제목이 하필 솔직해집시다라니. 어째 청개구리처럼 더 솔직해지기 싫어진다. 이럴 걸 알고 미리 제목을 그렇게 잡아놨나? 과거의 내가? 그래도 내가 잡아 둔 제목이니 일단 가야지.


솔직히 말해서 연재를 그만두고 싶을 지경이다. 자아는 식은 죽 먹기처럼 쉽게 찾아지는 게 아닌 건 알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과정이 괴롭다. 연재를 시작한 과거의 나를 찾아가 멱살잡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자아를 찾는다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긍정하는 것, 즉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여전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의 실행은 아득하기만 하다.


자아를 대면하니 보자마자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단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얄팍한 실속 없는 갑옷 속에 감춰진 자아는 자존감이 낮고, 가스라이팅을 오래도록 당해왔으면서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 대상이 가족이기도 하고,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회적 인연이기도 했다. 이토록 가스라이팅에 취약했다니 충격이 컸다.


평가에 예민하고, 상대가 죄책감을 심어주거나 책임감을 유도하면 여지없이 낚여서 파닥거리다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물론, 전적으로 내가 피해자이기만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가해자 역할을 하면서 지내왔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당해왔던 오랜 시간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좋아요와 댓글에 목말라하는 것 역시 인정욕구가 높아서이기도 하지만 타인의 평가에 나 자신의 평가를 맡기기를 자처해서 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의 반응과 평가는 하나의 의견으로만 받아들이면 되는데, 알면서도 그게 되지 않았다. 요즘 글 올리기를 지속적으로 하다 보니 브런치의 좋아요 알람이 울릴 때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도파민이 솟는 나를 어찌하랴.


자존감이 높다고 해서 다 행복한 것도 아니고, 자존감이 낮다고 다 우울한 것은 아니다. 언젠가부터 너도나도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애를 쓰는 모양새가 된 것 같지만 애써 자신의 상태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부터가 스트레스다. 쉽지는 않지만 일단 내가 자존감이 낮고, 평가에 예민하며, 타인의 시선을 상당히 신경 쓰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한다. 느닷없이 내 자존감이 높아질 가능성은 낮다. 일단은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부터. 그리고 삶에 불편함이 없을 정도까지만 조금씩 천천히 올려볼 수 있다면 좋겠다.


web-4642668_1280.jpg


최근에는 인스타그램에 여행 포스팅을 할 때 회사 동료들의 눈치가 보였다.(그 어떤 동료도 나에게 눈치를 주는 행동을 한 적이 없음에도) 휴직 기간에 여행을 다니며 휴식을 누리는 동안 회사 동료들이 바쁜 업무에 치인 상태에서 내 포스팅을 보고 감정이 상할까 봐 공개대상을 제한해서 올렸다.


좋게 말하면 배려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내가 올린 포스팅을 보고 회사 동료들이 어떤 생각과 반응을 보일지는 내가 알 수 없는 영역이다. 미리 지레짐작해서 불편할 것이라고 가정하고 행동할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이왕 휴직한 거 온전하게 푹 쉬고 회복해서 복귀 시점에 맞춰 건강하게 복귀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클 수도 있지 않을까? 왜 그런 생각 전에 부정적인 전제부터 한 걸까. 부정적 안경을 착용한 덕분이겠지;


솔직해지는 데 엄청난 에너지와 용기가 필요한 사람, 그래도 힘을 내서 솔직해주려고 용을 쓰는 중인 사람, 이게 현재의 나다. 이게 나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단계에 있다. 솔직한 것 그다음 단계인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겠다. 우선은 이것도 버거우니 다음은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야지.


헛헛한 마음, 착잡한 기분에 사로잡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힘들어했던 나를 다정하게 위로한다. 일어난 일을 바꿀 수는 없지만, 머물러 있는 시간은 줄일 수 있다. 힘에 부치면 얼마든지 더 주저앉아 있어도 된다고 말해본다. 내가 나의 든든한 아군, 지원자, 단짝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힘주어 말해본다. 스스로를 탓하고 비판만 하던 나는 이제 굿바이!


(그나저나 브런치 예약 포스팅은 언제쯤 되는 걸까? 세이브 원고도 없으면서 예약 포스팅 타령이라 민망하긴 하지만 예약을 할 수 있으면 여러모로 편할 거 같은데...)








keyword
보라구름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팔로워 294
이전 03화낯선 사람들 속 자아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