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람들 속 자아 찾기

잊고 있던 내 모습

by 보라구름

지난 연재 글 말미에 질문책으로 돌아가 현재 챕터 부분을 완성하고 글을 올리겠다고 했는데, 결과는 실패다. 그것도 대실패.


질문책을 비롯해 한두 권의 책을 싸들고 4박 5일 여행을 떠났다. 브런치 연재 글을 쓰는 것은 물론 생각도 정리하고, 다른 책도 읽으며 여유롭게 쉬다가 오려고 했다. 지난번에도 혼자 여행을 다녀왔는데, 다 괜찮았지만 식사가 문제라면 문제였다. 혼자 먹을 수 있는 음식만 먹을 수 있었다. 생선조림이나, 가리비, 관자 조림, 회, 삼겹살 같은 여럿이 먹는 음식을 아예 먹을 수 없었고, 식사 때마다 혼자서 먹다 보니 점점 외로움이 짙어졌다. 물론 혼자 먹기 레벨로 따지자면 고깃집에 가서 대창도 혼자 구워 먹고 낮술도 마실 수 있는 탑티어급이지만 그건 어쩌다 한번일 경우고 여행 내내 그렇게 지내보니 별로였다.


개인 시간도 보내고 사람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때로는 같이 식사를 하는 프로그램을 곁들이면 딱 좋을 것 같았다. 마침 그럼 프로그램을 내가 원하는 시기에 운영하는 곳이 있었고, 별다른 고민 없이 프로그램과 숙박이 포함된 여행을 떠났다. 운 좋게도 트윈룸인데 신청자 숫자의 성별이 홀수라서 혼자 트윈룸을 쓰는 호사까지 누리게 되자 더 잘된 것 같았다. 첫날 오리엔테이션 모임에서 각자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여기까지도 예상대로였고 딱 좋은 상태였다.


오랜만에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왁자지껄 수다도 떨면서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으니 기분이 좋아지고 컨디션도 회복되는 것 같았다. 여행 전날까지 입술이 헐어 터지는 피곤한 상태였기에 여행의 컨디션이 걱정되던 중이었는데 첫날 즐겁게 저녁을 보내고 나니 피곤이 싹 가시고 마음도 편해졌다.


둘째 날 아침, 바다낚시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새로운 취미로 바다낚시를 선택하게 될 정도로 재미있게 배를 타고 낚시를 즐긴 것도 너무 좋았다. 처음 해본 배낚시는 상상 이상으로 짜릿했고 몰입의 순간과 기쁨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 배 위에서 보낸 짧았던 1시간 30분은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엄청난 경험이었다. 잡은 물고기를 회로 떠서 먹고, 점심에는 먹고 싶었던 맛집의 생선조림을 먹고, 공용주방과 워크스테이션에 마주치는 멤버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여행지에서 으레 가졌던 혼자만의 흐름은 어느새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었다.


셋째 날은 트레킹 프로그램 참여 하지 않아서 개인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했으나 같이 멤버들과 점심 먹고, 서점과 카페를 다녀오고 나니 오후가 거의 다 지나버렸다. 세탁기 돌리기, 건조기 돌리기, 조금 잡다구리 한 일과 독서 조금 하고 나니 금방 저녁시간이었고, 어제처럼 다 같이 식사하고 2차로 술 한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11시가 넘어 있었다. 혼자만의 시간은 거의 다 사라져 가고 사람들과의 시간이 하루의 대부분을 채워놓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넷째 날, 이날도 프로그램(서핑) 참여를 하지 않아서 개인 시간을 좀 보내볼까 했으나 서핑하는 곳 인근에서 서핑에 참여하지 않은 멤버들과 같이 점심 먹고 근처 이름난 카페 두세 군데 들리고 나니 이미 오후의 대부분이 지났다. 멤버 중 한 분이 해변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했고 그렇게 즐거운 경험을 나누고 나니 어느새 일몰 시간이었다.(다섯 시 반이면 어두워짐) 아, 뭔가 예상과 다른 시간의 흐름인데 제어가 안 되는 상황. 마지막 날 저녁은 그동안 먹으려고 마음먹었던 맛집에서 모둠회를 먹었다. 인생 회 베스트 3안에 들 정도로 눈물 나게 맛있는 회를 먹고, 멤버들과 2차로 위스키 잔을 기울이니 또 어느새 날이 바뀔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었다. 맙소사. 그동안 브런치 글 포스팅은 연재 글 외에 딱 한편 밖에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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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하며 술 마시는 것을 즐겨했지만 근 2~3년 동안은 한 달에 한두 번 술을 마실까 말까이고 그나마도 여러 사람들과 마시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내가 3일 동안 연달아 술을 마셨고, 너무 즐거워서 목소리를 높여 크게 웃기도 했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연재 글은 대체 어쩔 셈인지, 질문책에 적어야 할 대답은 고작 서너 개 정도 적고, 쓴 글이라고는 간단한 일기와 기록만 남긴 상태인데 대책이 있는 거냐고 채근하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못 들은 척하고 위스키잔을 들어 코를 대고 냄새를 맡고 미소를 지었다.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과 짧은 기간 동안 어울렸고, 업무와 연관되지 않은 사람들과 이렇게 오래 함께 있어본 적이 거의 처음이라 낯설고 신기하면서 그 분위기에 흠뻑 젖어들었던 것 같다. 물론 모든 것이 매끄럽고 완벽하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어떤 다양성은 내가 포용하기에는 벅차기도 했다. 그러면 그런대로 할 수 있는 선에서 물러났다가 가까워졌다가를 반복했다.


그렇게 일정을 마치고 멤버들과 헤어져 숙소를 다른 곳으로 옮겨 하루 더 머물면서 비로소 개인 시간을 갖게 되니 지난 4박 5일 동안의 내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 시간 속 나는 이런 사람이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에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
직업, 나이, 국적이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릴 때 더 흥이 나는 사람
혼자서도 잘 지내고, 둘이서도 잘 지내지만 내내 그렇게만 지내면 시들어 버리는 사람
따뜻하고 포근한 곁을 내어 줄 수 있는 사람
여러 사람들과 있을 떼 다수의 의견에 동조할 때도 있지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게 더 편한 사람
가능하면 말하기를 조금 줄이고 듣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4박 5일 동안 8명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내가 찾은 내 모습, 사람들이 피드백해 준 내 모습을 정리하면 대략 위와 같다. 새롭게 안 내 모습이라기보다는 잊혀서 기억조차 못했던 내 모습들을 다시 찾고 기억하게 되어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질문책을 통해 스스로 답하면서 회고를 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이렇게 사람들과 어울리고 경험하면서 생생하게 진행한 자아탐구(의도한 건 아니었지만)여서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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